월스트리트 투자 전문가들의 필독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전 협정 하반기 돌입할 것"

[글로벌 현장]
1월 3일 미국 뉴욕거래소의 새해 첫 거래일,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월 3일 미국 뉴욕거래소의 새해 첫 거래일,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문가들이 연초마다 꼭 찾아 읽는다는 필독서가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바이런 위언(89) 부회장이 내놓는 ‘연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리스트’다. 제목은 ‘놀랄거리’이지만 실제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전망하는 이벤트로 채워져 있다.

위언 부회장이 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모간스탠리에서 투자 전략가로 일했던 1986년부터다. 상당히 높은 확률로 미래의 일을 맞히면서 유명 인사가 됐다. 요즘엔 블랙스톤의 조 지들 수석투자전략가와 같이 작성하고 있다.

위언 부회장은 최근 내놓은 ‘올해의 예언’에서 “미 중앙은행(Fed)의 강력한 긴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하반기에 급반등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직 바닥 오지 않았지만 하반기엔 급반등”

위언 부회장은 “올해 증시는 하반기부터 2009년에 필적할 만한 반등 장세를 연출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작년 약 20%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던 2008년 이후 가장 많이 떨어진 수치다. S&P지수는 2008년 37% 급락했지만 이듬해 26.5%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증시 상승 폭 역시 30%에 가까울 것이란 게 위언 부회장의 예상이다.

다만 하반기 반등이 오기 전 ‘바닥’이 먼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가가 상반기 어느 시점까지 꾸준히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작년 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4.25%포인트나 올린 Fed가 상반기에도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점에서다.

위언 부회장은 “Fed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효과를 내고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제한적 영역에 머무를 것이란 게 문제”라며 “기업 이익이 위축되고 있고 결국 완만한 수준의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3월 연 0~0.25%였던 Fed 기준금리는 12월 연 4.5%까지 뛴 상태다. Fed 위원 19명의 금리 전망치를 보여주는 점도표는 올해 말 5.25%까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5% 안팎에 달하는 높은 기준금리는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제한적 영역’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6월 9.1%(전년 동기 대비)로 고점을 찍었다가 같은 해 11월 7.1%로, 빠른 속도로 둔화했다.

위언 부회장은 “Fed의 강한 긴축 기조가 개인 소비 지출(PCE) 기준 물가보다 오히려 기준금리를 더 높아지도록 만들 것”이라며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물가지수는 노동부가 집계하는 CPI와 상무부가 내놓는 PCE가 대표적이다. PCE 물가는 작년 11월 기준 5.5%였다. Fed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고 PCE 물가가 둔화하면 실질 금리가 다시 플러스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위언 부회장은 “미국 달러는 엔과 유로 등 주요 통화에 비해 강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국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Fed만큼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인 곳을 찾기 어려워서다.

이런 기조가 또 다른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게 위언 부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달러 기반 투자자라면 일본과 유럽 자산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 시점”이라며 “한 세대에 한 번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정전 협상이 연내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협상이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며 “두 나라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분할 협상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작년 2월 말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침공에 나섰지만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이렇다 할 협상도 없이 1년 가까이 교착 상태다. 정전 협상이 시작되면 글로벌 증시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원자재 공급난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언 부회장은 “중국은 현재의 시장 예상보다 더 좋은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의 성장률 목표인 5.5%에 다시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서구와의 무역 관계 복원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증시엔 긍정적인 요인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이 원유 공급을 크게 확대하면서 유가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 침체와 수요 둔화까지 겹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까지 밀릴 것이라고 봤다.

개인 자산으로 트위터를 인수한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위언 부회장은 “머스크 CEO가 올해 말까지 (재정난을 겪고 있는) 트위터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 구루의 2023 예언…“하반기 증시 활황·암호화폐 반등” [글로벌 현장]

윌커스, “암호화폐 추운 겨울 끝난다”

월스트리트에서 귀담아 듣는 또 다른 분석가로는 스톰월투자자문의 마이클 윌커슨 창업자가 꼽힌다. 30여 년간 투자 조언을 해주며 저술 작업을 병행해 온 그는 ‘2023년 일어날 12가지’를 공개했다.

올해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다시 뛸 위험이 있다는 게 윌커슨 창업자의 첫째 전망이다. 빠른 속도로 둔화해 온 인플레이션이 재상승에 시동을 걸 것이란 경고다. 경기가 활황일 때 물가를 끌어올리는 배경으로 지적되는 수요 견인(demand pull) 대신 원자재 값·물류비·인건비 등 상승에 따른 비용 인상(cost push)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미국 경제는 본격적으로 침체에 진입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윌커슨 창업자는 “경제와 증시가 나란히 침체에 진입하겠지만 올 하반기엔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유럽에선 에너지 위기가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 차질까지 심화할 것이란 예고다. 가격 상승과 함께 에너지 종목 투자가 올해도 큰 관심을 끌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1년간 60% 넘게 급락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은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암호화폐의 추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수많은 알트코인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 자금이 유입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암호화폐처럼 인플레이션 시대의 대체 투자 자산으로 관심을 끌어 온 금은 올해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윌커슨 창업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자원 민족주의가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 부국들이 자국 우선주의를 고수하면서 글로벌 원자재 공급난을 부추길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위언 부회장과 달리 “올해 강달러 시대는 저물 것”이라고 단언했다. 달러를 대체할 수단들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란 예상이다. 이런 현상을 부추길 대표적인 화폐가 러시아 루블과 중국 위안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원유를 자국 화폐로 거래(페트로루블·페트로위안)하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윌커슨 창업자는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하라는 서방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며 휴전 또는 정전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구에서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가 누적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과 관련해 “올해는 침공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중국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단언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