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퇴물’·‘거품’은 표현의 자유, ‘국민호텔녀’는 모욕 맞다”
무죄 2심 뒤집어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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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네이버는 연예·스포츠 기사의 댓글 서비스를 종료했다. 일명 ‘악플’로 불리는 악성 댓글로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유명인이 늘어나는 등 댓글에 의한 인격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나 개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정 댓글 등을 통해 악플은 계속 생성되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매번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히지만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배우 겸 가수인 여성 연예인 A 씨에 대한 댓글이었다.

40대 남성 B 씨는 2015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게시된 A 씨 관련 뉴스에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 ‘영화 폭망 퇴물 A를 왜 OOO한테 붙임?’이라는 댓글을 달아 기소됐다. 불쾌감을 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며 큰 논란이 일었지만 최근 대법원이 이를 모욕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을 바로잡았다.

‘열애설’ 보도돼서…2심 “악플도 표현의 자유”

모욕죄의 유죄 인정이 어려운 것은 지난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대법원은 과거 모욕적인 표현이 담긴 글이라도 사회 통념에 비춰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모욕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남긴 적이 있다.

이에 B 씨는 이와 같은 표현들이 “연예 기획사의 상업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의 표현이자 연예인에 대한 관심 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 중 쟁점이 된 표현은 ‘거품’, ‘국민호텔녀’, ‘퇴물’ 등과 같은 표현들이었다. 1심은 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B 씨가 댓글에서 사용한 ‘거품’, ‘국민호텔녀’, ‘퇴물’ 등의 표현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라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피해자인 A 씨가 연예인인 점, 인터넷 댓글이라는 특수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건전한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모든 댓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해당 댓글들을 표현의 자유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퇴물’, ‘영화 폭망’ 등의 표현은 A 씨가 출연했던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사실을 거칠게 표현한 것에 불과해 모욕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은 과거 A 씨에 관한 열애설 내지 스캔들이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어 B 씨가 이를 기초로 ‘국민여동생’이라는 연예업계의 홍보 문구 사용을 비꼰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또한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더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판단도 내렸다. 재판부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연예인 등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 대한 모욕죄 성부를 판단함에 있어 비연예인에 대한 표현과 언제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비판과 패러디 등에는 모욕적인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며 “모호한 기준으로 형사 처분할 경우 국민에게 위축 효과를 일으키고 자기 검열을 강제하는 해악을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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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적 대상화…모멸적인 표현”

대법원은 2022년 12월 28일 이와 같은 원심 판단을 다시 한 번 뒤집었다.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이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표현은 피해자인 A 씨의 사생활을 들춰 피해자가 종전에 대중에게 호소하던 청순한 이미지와 반대의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하는 것”이라며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멸적인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고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정당 행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최근 사회적으로 인종·성별·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한 혐오 표현이 문제가 되는데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경우 모욕죄가 혐오 표현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영화 폭망’, ‘거품’ 등과 같은 표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소속된 연예 기획사의 홍보 방식과 피해자 출연 영화의 실적 등 피해자의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으로 다소 거칠게 표현했더라도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공적 사안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최근 판례의 흐름을 재확인하는 한편 사적 사안과 관련한 표현이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의 경우에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조화롭게 해석해 양자 사이의 균형을 도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경쟁 업체 향한 ‘악플’은 징역형도 가능

경쟁 업체에 조직적인 악성 댓글을 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아 매트 업체 대표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3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단독19부 이원중 부장판사는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 훼손 및 업무 방해 혐의로 기소된 A 업체 대표 한 모 씨에게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한 씨는 맘카페 사이트 등에 경쟁사인 크림하우스프렌즈 제품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글을 단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씨가 운영하는 유아 매트 업체는 크림하우스와 함께 유아용 실내 매트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경쟁 관계다.

크림하우스 제품은 2017년 7월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았지만 A 업체는 “크림하우스 제품에서 디메틸아세트아미드(DMAc)가 검출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기술원은 친환경 인증 취소를 내렸다.

이에 한 씨와 A 업체 직원은 카카오톡을 통해 ‘이번 주는 넘기고 다음 주에 공격할까’라며 직접 악성 댓글 작성 등을 지시했다. 이들은 대포 계정으로 ‘암 유발 성분이 검출돼 A 사의 제품으로 바꾸려고 한다’, ‘크림 사려다가 주문 취소하고 A 사 제품으로 주문했다’며 마치 직접 매트를 구매한 소비자인 것처럼 수백 건의 악성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실제 크림하우스 매트에서 검출된 DMAc는 100~200mg 정도로,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니었다. A 업체 관계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나 후기를 전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소비자를 가장해 허위 사실을 경험적인 내용으로 달아 소비자가 경쟁 업체 제품에 대해 오인하게 하고 경쟁 업체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대부분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유아 매트는 고가의 제품으로 한 번 구매하면 교체가 어려워 소비자 후기가 중요한 제품 선택의 조건”이라며 “A 업체는 크림하우스 제품의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기 전부터 안전성과 관련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거짓 후기를 다수 게재했다”고 설명했다.

한 씨와 함께 일을 꾸민 직원 임 모 씨에게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홍보 대행사 등 그 외 관계자 4명은 모두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