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미 ‘바닥’ 찍은 듯…2023년 1분기 원가 구조 개선으로 업황 반등 기대

[비즈니스 포커스]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사전 부스 투어에서 취재진들이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사전 부스 투어에서 취재진들이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3’이 1월 8일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3년 만에 완전 대면 형식으로 개최된 올해 CES는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로 활기가 남쳤다.

CES 2023의 주요 트렌드는 친환경 솔루션과 모빌리티·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술과 제품들이었다. 다만 매년 CES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던 ‘혁신적인 신제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모든 제품들을 연결할 수 있는 ‘연결성’에 집중했다. 화려한 신제품보다 소프트웨어에 공을 들인 것이다. 마치 다가올 불황을 예견한 듯 혁신적인 신기술보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문을 강조한 것에 눈에 띄었다.

‘가전 사업’ 부진 확실시된 삼성·LG

최근 수년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 근무 등으로 TV와 가전제품 시장은 성수기를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유럽과 미주 지역의 인플레이션과 전기요금 상승 등으로 수요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도 기대했던 만큼의 매출 확대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의 상승도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도 가전 수요 감소에 큰 몫을 했다. 대출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사 수요가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한꺼번에 다량의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수요가 확 줄었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은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이에 따라 가전 수출 역시 동반 침체를 겪고 있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 조사 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TV 출하량은 1억9900만 대로, 전년 대비 1.4%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13년 연간 출하량 집계 이후 최저치다.

당장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지난해 4분기 잠정 실적 역시 영향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70% 감소하는 ‘어닝쇼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월 6일 2022년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한 4조3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대로 쪼그라든 것은 무려 8년 만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잠정 실적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침체기에 돌입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반도체와 함께 삼성전자를 떠받치는 가전·TV 사업도 부진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선 지난해 4분기 가전(CE) 영업이익은 약 2000억~3000억원으로 손익 분기점을 겨우 넘긴 것으로 추정한다. 근본적으로 수요가 부진했고 물류비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가전 부문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LG전자에 가전 수요 침체는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LG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1조8597억원, 655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매출은 역대 분기 가운데 최대치이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1.2% 줄어들었다.

LG전자의 주력 사업부인 H&A(가전)와 HE(TV) 사업부는 영업 적자를 기록하거나 가까스로 적자를 면한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LG전자는 공시를 통해 “가전 사업은 가전 수요 감소와 해외 시장 경쟁 심화의 영향으로 매출이 소폭 감소했고 마케팅 비용 증가의 영향으로 흑자 규모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TV사업은 글로벌 TV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됨에 따라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4분기는 전통적으로 가전과 TV업계에서는 성수기로 분류된다. 하지만 프리미엄 TV 판매량이 크게 줄면서 매출이 뒷걸음질했다. LG전자 측은 “마케팅 비용 증가와 유통 재고 수준 정상화를 위한 판매 촉진 비용이 증가하면서 지난 분기 대비 적자 규모가 늘었다”고 밝혔다.

중견 가전업계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다. 대유위니아그룹의 전자 계열사인 위니아전자는 벌써 석 달째 임금을 못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퇴직한 직원들도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위니아전자는 1월 5일 비상회의를 열고 재고 자산을 조기에 현금화해 자금 경색을 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침체된 가전 소비 심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제품보다 연결성에 집중

위니아전자는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창출한다. 주력 시장은 중국과 멕시코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톈진공장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셧다운됐다. 그 결과 약 2000억원 이상 매출이 줄었다. 멕시코는 소비 심리 위축으로 매출이 감소했다. 특히 고부가 가치 제품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재고가 대량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위니아전자의 임금 체불의 원인을 무조건 가전 시장의 경기 침체로만 연결 지을 수는 없다.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대우’ 브랜드를 포기한 것, 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율이 상승하면서 악화된 현금 유동성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전 시장의 침체가 본격적으로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과 LG는 올해 CES에서 신제품보다 실적과 관련한 질문을 다수 받았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업의 근간인 고객에 집중해 기술 혁신으로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불황의 장기화에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사업 체질을 개선해 경쟁력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 시장에 대한 전략으로 한종희 부회장은 “‘비스포크’를 앞세워 세계 최초·최고 기술을 적용한 제품으로 가전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올해에도 TV 시장 1위를 달성해 18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출시한 ‘업(UP) 가전’을 북미를 시작으로 해외에 본격적으로 확대한다. 업 가전은 새로운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전을 말한다. 또 공간 인테리어 가전 ‘LG 오브제 컬렉션’의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넓혀 갈 예정이다.

한편 가전 시장이 이미 최하를 찍고 반등하는 일만 남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동주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가전·TV·PC 등의 전반적인 수요 약세는 올해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다만 지난해 4분기를 저점으로 최악의 국면은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V는 유통 재고가 건전한 수준인 6주까지 내려왔다.

또 가전 시장은 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프리미엄 시장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올해 1분기부터 물류비와 원자재의 가격 하락으로 원가 구조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