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은 힘들고 월급은 안 오르고, 허리띠 바짝 졸라매기만”

[스페셜 리포트]위태로운 청년의 미래
그래픽=박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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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1캔(350mL) 2000원, 제주삼다수(500mL) 1100원, 소주 1병(음식점) 5000원, 서울 택시 기본 요금 4800원.’

살인적인 물가가 대한민국을 할퀴고 있다. 고금리에 휘청이던 한국의 서민들은 날아든 관리비 고지서에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전기·가스요금 등이 1년 사이 30% 넘게 급등하면서 체감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느껴진다.

부모님 카드를 쓰지 않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홀로 애쓰는 청년들은 다른 세대보다 고물가에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실제 1020대 청년들이 체감하는 생활고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심각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1020대 청년(15∼29세)들의 경제고통지수(지난해 상반기 기준)는 25.1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30대는 14.4로 60대(16.1) 다음으로 높았다.

5명의 청년 사례를 통해 끝 모르고 오르는 생활 물가와 치솟는 월셋값, 취업 한파 등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명해 봤다.
적금 깨고, 주택청약저축도 포기…뛰는 물가에 미래를 포기하는 청년들[메가 인플레이션①]
◆난방비·전기료 줄인상…점심값도 걱정
경기도 구리에서 사는 직장인 차 모(31·여) 씨는 월급의 30∼40%를 식비와 교통비 등으로 써 왔다. 올해부터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관리비 등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관리비가 18만원 나왔다. 생활 패턴은 비슷한데 1년 전에 비해 3만원 정도 더 부과됐다”고 했다. 차 씨는 요새 도시락을 싸 간다. “회사에서 점심값으로 7000원이 나오는데 웬만한 국밥집은 1만원이 넘어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노 모(34‧남) 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 도봉구에서 원룸 전세를 살고 있는 노 씨는 가스비가 올랐다는 소식에 올겨울 내내 두꺼운 옷을 껴입고 전기장판 위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현재 그의 월급은 300만원이다. 사회 초년생 때는 160만원을 받았다. 10년간 1년에 14만원, 한 달에 1만원꼴로 수입이 늘어난 셈이다. 노 씨는 “뉴스에서 직장인 평균 연봉이 4000만원을 돌파했다고 하는데 어느 나라 얘기인지 모르겠다. 연봉이 인상돼도 생활 물가 올라가는 속도보다 느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늘어난 고민거리는 인상된 택시비다. “회사 일로 저녁 술자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할증 요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 강남에서 한남대교 건너는데 벌써 1만원을 넘기더라. 곧 버스‧지하철 요금도 오르고 따릉이 이용료도 오른다고 하니 그냥 걸어다니는 게 답 같다.”
자료 : 통계청 ※전년 동월 대비
자료 : 통계청 ※전년 동월 대비
그래픽=박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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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청년들이 겪는 체감 경기는 더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대중교통비 등 체감도가 높은 공공 요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우선 물가 상승률. 올해 1월 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5.2%로 직전 달인 지난해 12월(5.0%)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전기요금이 29.5% 급등한 영향이 컸다. 도시가스와 지역 난방비도 1년 전보다 각각 36.2%, 34.0% 올랐다. 그야말로 폭등이다.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동안 공공 요금 인상의 파급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분석하며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5%로 올려 잡았다.

다음은 외식 물가. 맥도날드·롯데리아·KFC·노브랜드 버거(신세계) 등이 햄버거 값을 줄줄이 올렸다. 빅맥 단품을 먹기 위해선 5200원을 내야 한다. KFC에선 치킨 한 조각을 3000원에 살 수 있다. 탄산음료까지 포함하면 가격은 더 오른다.

김밥·김치찌개·자장면·칼국수·비빔밥 등 대표 ‘점심 메뉴’의 가격도 오름세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전국에서 물가 수준이 가장 높은 서울에선 올해 1월 비빔밥 한 그릇이 1만원을 돌파했다. 삼겹살(200g‧1인분) 가격(1만9031원)은 전년 대비 12.1% 올랐다. 최저시급(9620원)을 받는 알바생들은 4시간 이상 일해야 점심에 비빔밥을 먹고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해먹는 게 싸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장바구니 물가도 폭등했다. 필수 재료인 양파 값과 파 값은 올해 1월 전년 대비 각각 33%, 22.8% 급등했다. 닭고기(18.5%), 고등어(12.8), 오징어(15.6%), 귤(14.3%) 등도 인상됐다.

TV를 보며 간식을 먹거나 홈술(집에서 먹는 술)하는 것도 사치가 됐다. 아이스크림·과자·탄산음료·소주 등이 모두 올랐다. 이제 편의점에서 코카콜라(캔)를 사먹기 위해선 2000원을 내야 한다. 소주 한 병은 1950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엥겔지수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이었던 2019년 11.4%에서 2021년 12.8%로 1.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주요 5개국(G5,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평균(0.9%포인트)보다 가파르게 올랐다. 엥겔지수는 소득 대비 식료품 값의 비율이다. 후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택시와 버스·지하철 등 교통비 인상도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서울시는 최근 중형 택시의 기본 요금을 3800원에서 48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기본 거리도 2km에서 1.6km로 줄었다. 밤 11시 넘어 서울에서 수도권까지 택시를 타면 4만~5만원 정도는 나온다. 야근이나 회사 회식 등으로 늦은 시간 집에 돌아갈 때 할증이 잔뜩 붙은 택시비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이다.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 지하철·버스 요금을 300~400원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출퇴근 시 하루 두 번, 주5일 근무를 가정할 때 한 달 교통비가 1만2000~1만6000원 더 올라가는 셈이다.

청년의 ‘발’인 서울 공공 자전거 따릉이의 요금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이용 요금(1000원→2000원)을 올리고 30일권 등을 없애 이용권 종류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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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에 ‘휘청’…적금도 사치
학원 강사 박 모(32‧남) 씨는 이자 걱정에 한숨이 깊다. 박 씨는 지난해 8월 노량진에 26㎡(8평)짜리 원룸(빌라)을 전세 대출과 신용 대출로 얻었다. 그는 “4.29%였던 전세 대출 금리가 5.99%로 올랐고 신용 대출은 4.29%에서 6.49%로 뛰었다”며 “정규직이 되고 독립하면 경제적 자유가 생길 것 같았는데 오히려 수입이 줄어든 것 같아 막막하다. 적금을 붓는 것도 사치”라고 토로했다.

2022년 한 해는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인상했다. 한국의 기준금리도 3.50%로 1년 전과 비교해 2.25%포인트 올랐다. 이달 하락세로 전환됐지만 올 초만 해도 주요 시중 은행의 주택 담보 대출 변동 금리는 연 8%를 넘어서고 신용 대출 금리는 연 7%를 웃돌았다.

이는 청년들을 짓누르는 부채로 연결된다. 이미 청년들이 짊어지는 부채가 상당한 데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청년층(29세 이하 가구주)이 29.2%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지난 4년간(2017∼2021년) 청년층의 부채 증가율은 48.3%로 전체 부채 증가율(24.0%)의 2배에 달했다.

특히 20대 자영업자의 문제는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29세 이하 자영업자의 평균 대출액은 전년 대비 640만원 늘어난 6047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세(11.8%)다. 대출 잔액 기준 연체율도 0.50%로 전체 평균(0.32%)을 크게 웃돌았다. 취업이 힘들자 어떻게든 먹고살겠다고 나선 창업의 길에서 청년들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고물가·고금리 시대가 지속되며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청년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청년에겐 매달 나가는 적금도 부담이다. 이들은 만기 2년의 고금리(최대 연 10%대) 상품인 청년희망적금까지 중도 해지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이자를 받기 위해 최대 납입액(50만원)을 부어 온 청년들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지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청년희망적금 가입자는 286만8000명인데 반년간 30만 명 이상이 적금을 깼다. 3분기 기준 가입자는 256만7000명이다. 4분기 해지 현황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치솟는 물가를 고려하면 해지율은 3분기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 집 마련’의 중요한 수단인 ‘주택청약저축’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주택청약통장 가입자는 지난해 6월 2859만 명에서 12월 2789만 명으로 감소했다.
◆‘높은 월세’에 외곽으로 밀려난 청년들
고공 행진하는 월셋값도 청년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고금리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전세 사기’로 목돈이 있어도 월세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늘었고 임대인들은 전세 대신 ‘높은 월세’를 내놓고 있다. 실제 소형 빌라 월셋값이 100만원을 넘는 곳이 늘었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소형 빌라(전용면적 60㎡ 이하) 월세 거래량 4만3917건 중 3018건이 월세 100만원 이상 거래로 파악됐다.

강남역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전세가 줄고 월셋값은 평균 10% 정도 올랐다”며 “33㎡(10평)짜리 원룸(빌라‧다가구)이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0만~120만원인데 보증금을 5000만원으로 올리면 월세가 60만원 선이다. 하지만 5000/60 매물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높아진 월셋값을 감당하기 힘든 직장인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다. 7년째 서울살이 중인 사회 초년생 주 모(27‧여) 씨는 2월 말 서울 자양동에서 신길동으로 이사를 간다.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임대인이 월세를 15만원 추가로 올리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주 씨는 “월세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집주인들이 월세를 훌쩍 올리고 있다”며 “반지하와 옥탑을 피해 보증금 2000만원, 월세 80만원의 집을 겨우 계약했다. 그나마 싼 곳이 신림 등 대학가 근처다. 직장과 가까운 마포와 공덕은 이 가격으로 아예 집을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가의 원룸 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고려대와 연세대 인근 원룸(전용 면적 33㎡ 이하) 월세는 1년 전보다 7만원 이상 올랐다. 서울대 주변도 6만6000원 인상됐다. 보통 월세가 50만원 선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60만원 돌파가 코앞인 셈이다.

올해 대학교 3학년인 한 모(24‧여) 씨는 “1학기에는 비대면 수업이 많아 학교를 자주 가지 않았는데 2학기부터는 대면 수업이 많아 학교 인근에 원룸을 얻었다. 개학을 앞두고 같은 곳을 다시 알아봤는데 5만원이 올라 포기했다”며 “수원에서 학교(서울 돈암동)까지 통학하는 데 3시간 걸린다. 분당과 수원에 사는 친구들 대부분이 통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월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월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취업 한파에 더 추운 청년들,
각종 자격증 비용도 상승

한 씨의 걱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영어는 물론 각종 자격증을 따 보지만 인턴 지원이 쉽지 않다. 그는 “경력 없는 ‘생 신입’이 한 번에 입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지만 ‘경력’을 만드는 것조차 어렵다”며 “기업에선 인턴 대신 사무직 알바생만 뽑는다. 그나마 뽑히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취업 빙하기’다. 대학교 게시판에는 취업 일정표가 텅 비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5.2%로 전체 실업률(3.0%)을 크게 웃돌았다. 청년들이 실제로 느끼는 체감 실업률은 17%에 달했다.

취업의 질 역시 열악하다. 불황으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 대신 조정이 쉬운 비정규직을 뽑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기준 1020대 청년의 비정규직 비율은 41.4%로 조사됐다. 30대(21.9%), 40대(26.5%)와 비교해 2배 정도 차이 난다.

각종 자격증 비용 인상도 경제적 부담을 더하고 있다. 사실상 선택 아닌 필수가 된 토익 스피킹 응시료는 지난해 7월 올라 8만원대에 달한다. 중국어 능력 시험인 HSK IBT는 스펙으로 인정되는 5급 시험 응시료가 9만5000원에서 11만원으로 15.7% 올랐다.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우선 지출부터 줄이고 있다. 이는 ‘소비제로’, ‘무지출 챌린지(하루 동안 소비 0원 달성하기)’ 등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가까운 일본도 청년 고용 문제가 심각했다”며 “일단 고용의 미스 매치 억제에 주력했다. 취업 알선 지원, 기업 수요에 대응한 대학 강좌 설정, 기업과 정부의 근로자 리스킬링(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 강화 등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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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