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요인에서 출발한 ‘인플레’를 수요 대책인 ‘금리 인상’으로 풀며 신뢰 잃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린 지 어느덧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금리 인상 과정은 숨 가쁘고 거칠고 변화무쌍했다. 첫 금리 인상 이후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빅 스텝(0.5%포인트),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으로 회의 때마다 금리 인상 폭이 높아지다가 지난해 12월 회의를 계기로 빅 스텝으로 낮아지면서 올해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나올 만큼 피벗(pivot), 즉 방향 전환됐다.

세계 중앙은행 격인 Fed의 통화 정책은 곧바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도 Fed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20년 이상 동안 ‘저물가·저금리’ 국면에 몸에 익었던 경제 주체뿐만 아니라 주식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도 혼선을 겪었다. ‘대(大‧great)’자가 붙을 만큼 격변과 혼선을 치를 만큼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연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이 잡혔는가’ 하는 점이다.지난 1년, 의도한 효과 거두지 못해올해 경제 실상이 반영되는 통계가 지난 2월부터 속속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인플레 3대 지표인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생산자물가(PPI) 상승률, 개인 소비 지출(PCE) 가격 상승률이 모두 예상을 웃돌았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계기로 우려해 왔던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즉 거시적으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미시적으로 디폴트가 발생하고 있다.
<그림 1> 주요국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 (자료 :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 2023년 3월)
<그림 1> 주요국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 (자료 :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 2023년 3월)
모든 경제 정책 가운데 통화 정책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통화 정책은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잘 지켜야 한다. 통화 정책 목표가 다수일 때는 ‘틴버겐 정리(Tinbergen theorem)’에 따라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가져가야 한다. 정치적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지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1년 동안 1980년대 초에 이어 둘째로 강력한 금리 인상을 추진했음에도 의도했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 데는 이 모든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플레 초기 진단 실패로 선제성을 잃었다. 공급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 인플레를 수요측 대책인 금리 인상에 매달렸다.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압력에도 끊임없이 시달렸다.

앞으로 Fed는 어떤 길을 갈까. 1930년대 대공황 때는 ‘뉴딜 정책’,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는 세율 인하 등을 통한 ‘공급 중시 경제학’으로 구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신뉴딜 정책을 표방한 바이든 정부의 재정 지출 계획은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고 세율 면에서는 ‘K’자형 양극화와 국가 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세·법인세 등을 대상으로 세율을 대폭 올리는 초부유세를 도입할 방침이다.

Fed의 통화 정책 여건도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변하고 있다. 성장과 물가 간에는 종전의 ‘고성장·저물가’에서 ‘저성장·고물가’로, 고용과 성장 간에는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jobless recovery)’에서 ‘고용이 풍부한 저성장(jobfull downturn)’으로 바뀌었다.

Fed가 금리를 처음 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플레 마케팅 상향 조정 논쟁이 벌어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성장·고용·물가 간 트렐레마 속에 인플레 타기팅을 2%로 고수한다면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함에 따라 경기 침체가 우려된 반면 4%로 상향 조정되면 두 부담이 완화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완화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볼커 모멘텀 고수하면 제2의 SVB 사태 가능성도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여전히 볼커 모멘템을 고수할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의 대응 방식으로 트릴레마 난제를 풀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지고 있다. 오히려 이를 고집하면 제2의 SVB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통화 정책의 여건이 변한 만큼 전통적인 인플레 대책을 고집하기보다 제3의 대안을 모색해야 되지 않느냐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발 통화 정책의 후유증을 처리하기 위한 출구 전략은 한은이 가장 빨리 추진했다. 금리를 가장 많이 내리고 돈을 가장 많이 풀었던 Fed보다 7개월 앞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첫 금리 인상 당시 성장률이 0.3%(2021년 3분기)로 워낙 낮아 경기·금리·물가 간 트릴레마 국면에 처할 것이라는 비판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그림 2> 한국의 기준금리 추이 (자료 :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 2023년 3월)
<그림 2> 한국의 기준금리 추이 (자료 :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 2023년 3월)
심스-그랜저 인과 관계 검정을 통한 한국의 통화 정책 시차가 1년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시기적으로 2021년 8월 이후 추진해 온 금리 인상 효과를 평가해 볼 수 있는 충분한 때가 됐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금리를 올릴 때 내걸었던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미흡했다. Fed와 마찬가지로 한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화 국면에 몰리고 있다.

Fed처럼 양대 목표를 설정하는 논쟁 속에 한은이 고집했던 인플레 안정 목적도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대표적 인플레 지표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4%대로 다소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한은이 묵시적으로 내걸고 있는 인플레 타기팅 선인 2%를 여전히 2배 이상 웃돌고 있다.

가계 부채를 줄여 금융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목적도 기대만큼 달성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 이후 가계 부채 증가 속도는 줄어들었지만 절대 규모는 늘어났다. 질적으로도 젊은 세대와 소상공인 등 취약 계층을 비제도권으로 내몰아내 극단적 선택 등 사회 병리 현상이 늘어났다. 지니계수, 10분위 계수 등으로 본 계층 간 소득 불균형도 더 심화했다.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방지하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 이후 한‧미 간 금리 역전과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 간 관계도 ‘유의미’하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처럼 외환 위기 경험국은 무역 수지, 외환 보유, 성장률 등과 같은 펀더멘털 요인이 외국인 자금 유출입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의 내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Fed를 따라간다는 인상을 주는 식의 통화 정책을 계속해서는 곤란하다. 한은처럼 통화 정책 추진 여건이 어려울수록 더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금융통화위원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현시점에서 ‘인플레 안정’과 ‘경기 부양’만 놓고 따진다면 한국은 후자에 무게를 둬야 한다. 통화 정책의 여건이 변한 만큼 Fed처럼 한은도 제3의 통화 정책 수단을 고안해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