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에너지 전환 마을 르포

[ESG 리뷰]
동작신협에서 바라본 전경. 곳곳에 다양한 규모의 태양광이 자리하고 있다.사진=이승재 기자
동작신협에서 바라본 전경. 곳곳에 다양한 규모의 태양광이 자리하고 있다.사진=이승재 기자
가장자리에서 빛나는 도로 표시등부터 그 옆에 세워진 전봇대의 가로등까지…. 그야말로 눈만 돌리면 태양광이다. 낮 동안 햇빛을 받아 발전하고 밤에는 이를 통해 불을 밝히는 식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3·4동에 자리한 성대골 에너지 전환 마을의 풍경이다. 동작신용협동조합 옥상에는 조합원의 수익을 담당하는 태양광 발전소가 있다. 대형 태양광 집광판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인근 건물 옥상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 성대골에 태양광과 더불어 사는 삶이 자리 잡기까지는 약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중심에 마을 주민이 뜻을 모아 만든 에너지협동조합이 있다.

성대골에서 활동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은 총 4곳이다. 2013년 11월 설립된 마을 기업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이 그 시작이다. 이후 학교협동조합인 국사봉중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성대시장 상인을 중심으로 만든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 에너지 성능 개선을 위해 설립한 우리집그린케어협동조합 등이 생겼다.

성대골에서 활발한 에너지 전환 운동이 일어난 직접적 계기는 2011년에 터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이후 안전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느낀 주민들이 관련 행사와 교육을 조직하면서 소규모 절전 운동이 시작됐다. 성대골 내 마을 운동은 에너지 전환이 처음은 아니다. 상도3동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부족하고 안전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나서 민간 시설인 어린이 도서관을 건설하는 등 주민 간 연대 활동을 펼친 경험이 있었다.

에너지 과소비 줄이는 에너지 살림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대표는 “성대골 지역에 있는 학교, 상인, 어린이집, 상가, 종교 시설, 마을 기술자 등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인과 만나 ‘에너지 전환은 주민인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공감대를 먼저 형성했다”며 “정부가 지원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은 대부분 일몰제로 운영되는데 지원 사업 종료 후에도 성대골이 건재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너지협동조합이지만 재생에너지 전환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닐봉지 일몰제, 탄소 중립 교육, 차 없는 거리 등 시민 참여형 캠페인을 통해 지역 사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에너지 전환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최근 일부 에너지 전환 마을은 전기·가스요금 상승 대란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과연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느냐는 회의론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많은 논의와 검토를 거친 성대골은 흔들림이 없다. 성대골에서는 옥상이나 베란다에 설치하는 가정용 미니 태양광이 몇 년째 돌아가고 있고 에너지 소비에 대한 시민 의식도 높은 편이다.

김 대표의 집에도 600W 규모의 미니 태양광이 설치돼 있다. 600W 태양광은 한 달간 약 81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후 4인 가족 기준 여름·겨울에는 최대 4만~5만원 선, 봄·가을에는 1만5000~1만7000원 정도의 전기요금이 나온다. 3kWh 이하의 소규모 태양광 패널이기에 한전에 별도로 신고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발전량만큼 요금이 빠진다.

김 대표는 “에너지 전환은 직접적 비용으로 연결되는 만큼 주민들의 사고 전환이 중요하다”며 “에너지 자립 마을, 에너지 전환 마을은 하나의 실험과도 같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가 사용 전력을 모두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태양광 발전으로 사용 전력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 지금의 난방 시스템을 어떻게 전력화해 가스요금을 절약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진단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인데 에너지 과소비에 익숙한 국민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주민이 직접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전환 운동에 참여하는 ‘에너지 살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참여를 확대하려면 이익 공유 모델도 필요하다. 시민에서 출발해 시민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이익 공유형 모델은 재생에너지 전환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꼽힌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수용성 문제를 자연스럽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대골 에너지 전환 마을의 에너지 발전소는 여러 곳의 건물 옥상을 임대해 소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여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력 시장에 판매한다. 국사봉중학교 옥상과 동작 신협에 위치한 햇빛발전소가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 발전용으로 설치한 것은 총 80kWh다. 김 대표는 “대규모 발전을 통해 경제적 수익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적은 공간에 효율적인 태양광을 설치하는 실험을 하는 것이 에너지 전환 마을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기업의 역할, 시민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며 “시민들의 변화가 느리고 더디더라도 시민을 배제한 에너지 전환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발 에너지 전환 가능성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소규모 발전의 한계를 넘어선 대표적 사례다. 안산은 곳곳을 채운 41곳의 발전소와 메가급 발전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중 가장 큰 규모는 안산시민햇빛 4호 발전소로, 단원구에 자리한 ‘와스타디움’ 주차장에 있다. 넓게 펼쳐진 태양광 패널 아래 주차된 차들을 위한 그늘은 덤이다. 2015년에 지은 이 발전소는 약 2000㎡ 규모로 주차장 옥상에 자리한다. 총설비 용량은 393.060kWp. 4인 가구 기준 연간 110가구의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이다. 4호 발전소의 발전 수익은 지난해에만 1억1588만원을 기록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한국 최대·최다 태양광 발전소를 세운 협동조합이다. 지난 2월 기준 조합원은 1496명이고 시민 출자금은 49억원에 육박한다. 공공 부지를 임대해 설립한 발전소는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발전 사업용이다. 한전에 전력을 판매한 수익은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조항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본부장은 조합 출범의 배경으로 ‘에너지 자립’을 꼽았다. 2012년 재생에너지 인프라 조성을 통한 에너지 자립에 뜻을 모은 환경재단·안산YWCA·안산환경운동연합·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 8개 단체가 조합을 결성했다. 2013년 안산중앙도서관 옥상에 설치한 1호 발전소는 최대 전력량 30kWp로 호수동 주민들이 출자한 한국 최초의 시민햇빛발전소다.

조합이 발전소 건설을 위해 임대한 부지도 각양각색이다. 도서관·주차장·체육관은 물론 재활용선별센터·배수지·자전거도로 등도 활용한다. 부지에 따라 패널 설치 방식에도 변화를 줘 공간에서 햇빛 양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한다. 도로 사면은 경사를 고려해 2칸으로 태양광을 배치하고 일부 주차장은 곡선 면을 활용해 햇빛을 확보한다.

조합의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출자 한도는 1인당 1계좌 10만원에서 1000계좌 1억원까지다. 배당은 수익에 따라 매년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하며 2018년부터 5%씩 수익을 배당했다. 2022년은 발전량이 증가해 6%로 배당률이 올랐다. 조합원과 출자금 모두 매년 10% 정도 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41개 발전소는 모두 조합 사무실에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다. 발전소 건립 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함께 구비해 원격으로도 관리할 수 있다. 이상이 발생하면 시공팀이 직접 나가 점검한다. 태양광 특성상 외부에 설치하기에 오염 물질은 대부분 비에 씻겨 나가 큰 관리가 필요없다.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 형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 본부장은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최종 목표는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이다. 몬드라곤은 협동 경제를 기반으로 한 성공적 상생 모델”이라며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협동 경제 모델을 한국에서도 구현하려고 했다. 조합의 수익을 시민 출자자에게 배당해 시민 소득 증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더 나아가 기후 위기에 대응에 기여하는 협동조합 형태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기에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훨씬 수월하다. 조합 측은 “발전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직접 만나 설득하고 설명해 해소했다. 이후 추가적 민원이 발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합원 모집 과정에서 태양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민원을 제기한 시민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조합은 시민 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의 운영 사례, 기후 위기 및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필요성 등을 소개하는 부스를 마련하고 홍보에 나서는 등 수용성 개선 노력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추가 발전소 건설을 위한 공공 부지 확보는 여전히 큰 과제다. 조 본부장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 기관은 협동조합보다 대기업과 하는 사업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한 이익을 시민들이 나누는 것이 그린뉴딜의 핵심인데도 조합이 참여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며 “관련 사업 입찰 시 일정 비율을 컨소시엄에 포함된 협동조합에 할당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협조도 필수적

특히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다음 목표인 대규모 발전소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터널과 톨게이트 등 사면이나 유휴 부지를 활용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기후 위기 대응에 관한 교육과 비전 공유를 기반으로 한 관련 공무원의 인식 개선과 정부·지자체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 또 대부분의 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이 일몰제이기 때문에 지원 기간 동안 자립성을 갖추는 것이 협동조합의 중요한 과제다.

올해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예상 매출은 100억원이다. 전기 판매 수익 13억원과 태양광 설치 수입 80억원, 전기 공사 수입 등이 매출을 구성한다. 올해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한 탄소 배출 감축량은 연 2만 톤으로, 조합원 1인당 12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성대골 에너지 전환 마을과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역 밀착형 재생에너지 사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부지를 확보하는 데 제한적인 도시형 에너지 전환·자립 마을은 소규모 태양광 발전이 재생에너지 전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2곳은 10년에 걸친 안정적 태양광 발전 사업을 통해 시민 참여형 에너지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스페인·독일 등 해외의 에너지 전환 모델을 한국 상황에 맞춰 성공적으로 적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2의 성대골, 시민햇빛발전소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26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