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로 무시받던 김…한국의 힘으로 ‘웰빙 간식’ 되며 세계인 입맛 사로잡아

[비즈니스 포커스]
전남 강진만에 위치한 김 양식장.  사진=연합뉴스
전남 강진만에 위치한 김 양식장. 사진=연합뉴스
3월 15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비재로 떠오른 한 해조류에 대한 특집 기사를 냈다. 뉴욕타임스가 이 해조류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곳은 전남 완도의 양식장이다.

사실 이 기사는 기후 위기 문제의 해결책으로 해조류를 이용한 대체 플라스틱 등의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하는 기사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김 양식장을 찾아 비중 있게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김 수출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은 한국인들의 밥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반찬이다. 최근에는 김이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는 김 수출액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김 수출액은 6억4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07년 6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김 수출 규모는 지난해까지 10배 넘게 성장했다. 2017년 5억 달러를 넘어선 이후 최근 3년 연속 6억 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다른 품목과 비교해 보면 김 수출액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참치. 김 수출액은 2019년을 기점으로 수산업에서 부동의 1위 수출 제품이었던 참치를 넘어서며 한국 수산물 수출 1위 품목이 됐다. 현재도 김 수출액은 계속 참치를 앞지르고 있다.
육지에 ‘반도체’ 있다면 바다에 ‘김’ 있다
다음은 라면. 2021년에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전 세계에서 ‘비상 식량’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라면 수출액(2021년 기준 약 6억7400만 달러)을 김이 넘어서기도 했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한국 김을 찾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수치들이다.

특히 김은 원양산인 참치 등과 달리 전량이 국내 연안에서 생산된다. 가공·유통 등 산업 전 과정 대부분이 한국에서 이뤄져 지역 어촌 경제에 많은 보탬이 되는 품목으로도 꼽힌다. 이런 특성 때문에 김은 ‘식품 산업의 반도체’로 불리며 수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장점유율 70%에 달해‘70%.’
업계에서 추산하는 한국 김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다. 전 세계에서 김을 생산하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 등 3개국 정도다. 그런데 각 나라가 생산하는 김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일본은 김이 두껍고 가격이 비싸 대부분 주먹밥이나 초밥 등 밥을 활용한 용도로 내수 시장에서 소비된다. 중국은 수프나 탕용으로 활용되는 김을 주로 만든다. 반면 한국은 기름과 소금으로 맛을 낸 조미김이 대표 상품이다. 소비자 니즈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가공 김을 선보이며 전 세계로 진출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 김은 이런 특성을 앞세워 전 세계 김 시장점유율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한국의 김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이제 막 도입기다. 실제로 미국·중국·동남아를 중심으로 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김은 매년 수출국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는 전 세계 114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 김이 가장 많이 수출되는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해 수출액은 약 1억4800만 달러. 전체 수출액의 22% 정도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이 밖에 태국·러시아 등에도 김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김이 이처럼 각광받는 것은 서양인들의 김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한 데 따른 것이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서양인들 사이에서 김을 먹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블랙 페이퍼(black paper : 검은 종이)’라고 불리며 바다의 잡초 취급을 받았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검은색 빛깔에 입속에 달라붙는 식감이 불쾌감을 안겨줘 김을 ‘혐오 식품’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랬던 김의 현재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와 같은 매체에서 꾸준히 김을 ‘슈퍼 푸드’라고 소개했던 것이 김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일조했다.

김이 간편하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기호 식품’으로 급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트렌드’ 열풍이 불면서 칼로리는 낮고 영양은 풍부한 김이 웰빙 간식을 소비하고자 하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에 따라 미국 등 해외 국가에선는 반찬 대신 스낵으로 김을 찾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K팝과 K-콘텐츠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도 김 수출 증가에 기여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한류 스타들이 김을 먹는 장면들이 종종 노출됐고 이를 본 서양인들도 자연히 한국 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코리안 시위드(Korean Seaweed)’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외국인들이 한국 김을 직접 맛보고 평가하는 영상들을 찾을 수 있다.
레드오션 벗어나 해외로 간 기업들기업들은 레드오션이 된 한국 시장을 벗어나 다양한 수출 루트를 뚫으며 김을 수출 품목에 올려놓았다. 글로벌 니즈에 부합하는 다양한 형태로 김을 생산하며 수출액을 끌어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대상이다. 대상은 자체적으로 ‘해조류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기준에 부합하는 엄격한 기준으로 물김·마른김의 품질 등급제 적용, 공정 표준화를 통한 차별적 품질 경쟁력을 확보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별 맞춤형 제품으로 부가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상품성 개선은 물론 다양한 김 스낵을 선보이며 김 수출 실적을 향상시켰다. 대상의 2022년 김 수출을 포함한 해외 판매액은 약 800억원으로 2021년 약 530억원에서 급증했다.

CJ제일제당은 건강과 지속 가능 트렌드에 부합하는 ‘K-김스낵’으로 글로벌 김 시장 공략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작년 10월 차별화된 외형과 식감의 김스낵을 유럽과 일본에서 처음 선보이며 글로벌 식품 사업을 확대했다.

국가별 식문화를 반영해 연구·개발(R&D)한 제품으로 현지화 전략을 펼치는 데 초점을 뒀다. 우선 웰빙 간식에 대한 수요가 높은 유럽과 김 소비가 활발한 일본을 전략 국가로 삼고 이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기존 도시락김 제품의 형태를 먹기 편한 크기와 식감의 스낵으로 진화시켜 영국 메인스트림 유통 채널 입점에 성공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한국 정부는 2017년부터 국산 김의 세계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제안한 ‘김 제품 규격안’이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아시아 규격으로 채택됐다.

코덱스 규격은 식품 분야의 유일한 국제 규격이다. 약 190개에 달하는 회원국이 국제 교역을 할 때 발생하는 분쟁 해결의 기준이 된다. 한국은 마른 김, 구운 김, 조미 김 등 3종류에 관해 김 제품 규격안을 아시아 기준으로 인정받았다.

2021년 12월부터는 김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세계화를 위한 ‘김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됐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올해 2월 김 산업 진흥 구역 공모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3개소를 지정하고 15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고 향후 5년간 20개소(1000억원)로 이를 늘릴 방침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