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제조사 등에 시장 지배력 남용
공급·특허권 연계한 ‘갑질’…역대급 철퇴 맞아

[법알못 판례 읽기]
퀄컴 로고. 사진=AFP·연합뉴스
퀄컴 로고. 사진=AFP·연합뉴스
글로벌 ‘특허 공룡’ 퀄컴과 공정거래위원회가 6년 2개월간 벌인 소송전에서 공정위가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공정위가 단일 사건 기준 사상 최대 규모로 부과한 과징금 1조311억원도 그대로 확정됐다.

기술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술 기업이 표준 필수 특허(SEP)를 악용해 ‘갑질’한 행위에 철퇴가 내려졌다는 평가다.

6년간 분쟁 끝에 공정위 ‘완승’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23년 4월 13일 퀄컴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및 시정 명령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공정위 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로 퀄컴이 내야 할 과징금은 2016년 말 공정위가 부과한 1조311억원으로 확정됐다. 공정위가 지금까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중 최대 규모다.

대법원은 “퀄컴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 모뎀 칩셋 제조사에 자사 특허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모뎀 칩셋을 필요로 하는 휴대전화 제조사에는 자사 계열사의 다른 특허권을 연계해 판매하려고 했다”며 “경쟁 모뎀 칩셋과 휴대전화 제조사의 사업 활동을 어렵게 함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유지, 강화했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반도체·통신 장비 업체 퀄컴의 본사인 퀄컴인코퍼레이티드는 이동통신용 모뎀 칩셋에 필수적인 SEP를 바탕으로 이 특허 기술의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사용료를 받는 특허권 사업을 하고 있다.

계열사인 퀄컴테크놀로지인코퍼레이티드와 퀄컴CDMA테크놀로지아시아퍼시픽은 이동통신용 모뎀 칩셋을 제조하고 있다. 퀄컴은 2022년 3분기 기준 글로벌 통신 칩 시장점유율이 62.3%에 달하는 절대 강자다.

공정위는 2016년 12월 이들 3개 기업에 총 1조311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과 시정 명령을 내렸다. 퀄컴이 경쟁사인 칩셋 제조사와의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거절하고 삼성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사와는 특허권 계약을 일방적인 조건으로 체결하는 등 ‘특허 갑질’을 했다는 판단에서다.

퀄컴은 특허 이용을 원하는 사업자에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한다는 자발적 확약을 통해 SEP 보유자 지위를 인정받았는데 이 확약을 위반해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논리다.

공정위는 퀄컴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2009년부터 7년간 경쟁 모뎀 칩셋 제조사에 자신이 독점한 이동통신 SEP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거절하거나 제한한 점을 문제 삼았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에 특허 라이선스 계약과 모뎀 칩셋 공급 계약을 연계해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한 것도 위법이라고 봤다. 또 휴대전화 제조사와 체결하는 라이선스 계약에 휴대전화 판매 가격의 일정 비율을 ‘실시료(로열티)’ 명목으로 받는 조건 역시 불공정 거래로 판단했다. 퀄컴이 이 같은 처분에 반발해 2017년 2월 행정 소송을 제기하면서 긴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2016년 7월 20일 열린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등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 퀄컴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6년 7월 20일 열린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등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 퀄컴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퀄컴식 특허 갑질에 ‘철퇴’

퀄컴은 세종‧화우‧율촌 등 한국의 대형 로펌 3곳을 선임해 반격에 나섰다. 서울고등법원에서 2년 10개월간 17차례 진행된 변론에서 쌓인 사건 기록만 7만3000여 쪽에 달했을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2019년 12월 “공정위 시정 명령 10건 중 4건을 취소해야 하지만 1조311억원의 과징금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실시료 등을 받은 부분은 위법 행위가 아니라고 봤지만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인 특허 라이선스 계약과 관련한 내용에 관해선 공정위의 판단이 옳다고 본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퀄컴이 경쟁사에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거절·제한한 행위는 ‘타당성 없는 조건 제시 행위’로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허 라이선스 계약과 모뎀 칩셋 공급 계약을 연계한 행위도 ‘불이익 강제 행위’라고 봤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공정위는 대법원 판결 직후 성명문을 내고 “과징금 처분은 ‘퀄컴을 배타적 수혜자로 하는 폐쇄적인 생태계’를 ‘산업 참여자가 누구든 자신이 이룬 혁신의 인센티브를 누리는 개방적인 생태계’로 돌려 놓기 위한 조치였다”며 “이동통신업계의 공정한 경쟁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퀄컴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한국 및 한국 파트너사들과의 장기적인 협업 관계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에서 기업 간 특허 분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휴대전화 제조사뿐만 아니라 애플·인텔·화웨이 등 주요 IT 공룡들도 깊게 엮여 있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서 공정위를 대리한 서혜숙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특허를 표준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특허를 가진 쪽이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겠다는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퀄컴과 같은 방식으로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하려는 데 제동을 걸었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돋보기]
퀄컴, 공정위 역대 과징금 중 압도적 1위

이번 대법원 판결로 퀄컴이 내야 할 과징금은 1조311억원으로 확정됐다. 지금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단일 사건 기준으로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중 최대 규모다.

공정위 내부에선 이 사건을 최근 10년간 가장 우수한 심결 사례로 꼽고 있다. 지금까지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 내역을 고려하면 한동안 깨지기 힘든 기록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액 10순위’에 따르면 퀄컴 다음으로 많은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은 E1·SK가스·에쓰오일 등 7개 액화석유가스(LPG) 회사들이다. 이들은 6년간 총 72회에 걸쳐 LPG 판매 가격을 짜 맞추는 담합을 했다는 혐의로 669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등 5개 정유사가 그 뒤를 이어 3위(4326억원)를 차지했다. 4위는 교보생명과 삼성생명 등 16개 생명보험사가 부과받은 3630억원이다. 두 사례 모두 담합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2011년 내린 처분이다. 다만 이들 사례 모두 기업들이 그 후 소송전에서 승소하면서 실제 과징금 납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5~6위도 담합 행위다. 약 8년간 한국가스공사 발주 액화천연가스(LNG) 저장 탱크 건설 공사 입찰 과정에서 입찰 가격을 사전 협의해 일감을 나눠 받았던 대림산업·현대건설·GS건설 등 13개 건설사들에 2016년 부과된 3505억원이 5위를 차지했다.

호남고속철도 제2-1공구 공사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삼성물산 등 28개 건설사에 2014년 내려진 과징금 3479억원이 6위에 올랐다.

7위는 철 스크랩(고철) 구매가격을 담합하다 적발돼 2021년 과징금 3001억원을 물게 된 현대제철‧동국제강‧한국제강 등 11개 제강사 사례다. 철강업계는 2022년 14개 업체가 조달청이 발주한 철근 입찰에서 담합한 사건으로도 과징금 2565억원(9위) 부과 처분을 받았다.

퀄컴은 또 다른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도 공정위의 제재를 받아 과징금(2565억원) 규모 8위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당시 공정위는 퀄컴이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한국의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자사 CDMA 기술을 사용하도록 요구하면서 경쟁사 모뎀 칩을 쓸 경우 로열티를 더 받는 것은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10위는 삼성그룹에 2021년 부과된 2349억원이다. 공정위는 삼성그룹이 삼성웰스토리에 계열사 급식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