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정부,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론 못 내
여당 “한전공대 감사 은폐 의혹 제기…자구책부터 내라”
“뼈 깎는 구조조정, 20조 절감 추진” 정승일 사장 명의 입장문

서울 중구 명동 한국전력 서울본부.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명동 한국전력 서울본부. 사진=한국경제신문
2022년 33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규모 적자를 낸 한국전력공사가 고강도 자구책을 내놓겠다는 최고경영자(CEO) 명의의 ‘반성문’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전은 4월 21일 발표한 ‘최근 현안 관련 입장문’에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조직 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및 국민 편익 제고 방안이 포함된 추가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 마련·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전 및 발전 6사를 포함한 전력그룹사(10개)는 전기요금 조정에 앞서 국민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20조원 이상의 재정 건전화 계획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올해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이 지연되면서 불어나는 적자를 떠안게 된 한전은 임직원의 2023년 임금 인상분 반납을 검토하고 있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한전은 “전력 판매가격이 전력 구입가격에 현저히 미달하는 현 상황에서 요금 조정이 지연되면 추가 자구 노력에도 전력 안정 공급 차질과 한전채 발행 증가에 따름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며 “전기요금 적기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깊은 이해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3차례 인상에도 33조 적자

한전은 2022년 세 차례에 걸친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32조603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영업손실로 종전 연도별 최대치였던 2021년(5조 8465억원)의 5.5배를 웃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까지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려면 2023년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51.6원 인상해야 한다고 추산해 추가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급격히 치솟은 공공요금에 대한 서민 부담 최소화를 위해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언급해 2분기 전기요금 조정안에 관심이 쏠린다.

전기산업계와 학계는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최근 전기관련단체협의회 정책 간담회에서 “2022년 회사채 발행 규모 47조원 중 한전채 단일 발행 규모는 32조원대로, 비유하자면 연못에 고래 한 마리가 들어앉은 상황”이라며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못하면 (올해도) 한전채가 크게 증가해 수급 불안과 시장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2022년 한전·가스공사의 적자와 미수금에 대해 하루에 지급하는 이자가 매일 50억원을 넘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요금 인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은 2024년 총선을 의식해 한전의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4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설립된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감사 결과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한전과 한전공대의 도덕적 해이가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한전을 향해 자구책 마련도 압박했다. 이 총장은 “한전은 국민 고통은 나 몰라라 한 채 자신들 잇속 채우기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한전 스스로 자구 노력부터, 자정 노력부터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22년 10월 11일 전남 나주 한국전력 본사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22년 10월 11일 전남 나주 한국전력 본사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돈 되는 건 다 판다”…헐값 매각 우려도

한전의 대규모 적자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정부의 전기요금 동결 여파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의 연료비·전력 구매 비용 등 영업비용이 급증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받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구매비 상승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최근 5년간 26조원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완공된 원전의 가동을 미루면서 대체 발전 방식으로 가격이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하면서 늘어난 비용 부담이 한전의 적자 규모를 키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산업계에선 한전이 자산 구조조정 계획에 쫓겨 ‘알짜배기’ 자산을 헐값에 매각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전은 자본잠식 해결을 위해 수도권과 제주 지역의 알짜 부동산을 1700억원 이상 손해를 보면서 헐값에 매각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22년 9월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혁신계획안에 따르면 한전은 의정부 변전소 등 부동산 27개소를 매각해 약 50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서울 배전스테이션과 수색변전소, 경기북부본부 사옥, 제주 전력지사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한전이 산정한 매각 예정가가 모두 해당 지역 평균 토지거래 가격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서울배전 1·2·3 스테이션 부지의 매각 예정가를 한전이 75억원으로 산정했는데, 해당 부지가 약 173억원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헐값 매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