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 인기 모델도 정가 이하로 떨어져
주춤해진 명품 인기에 리셀 열풍도 시들

[스페셜 리포트]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오픈런을 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오픈런을 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샤넬의 인기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사이즈는 6월 8일 1299만원에 거래됐다. 이 가방은 샤넬이 5월부터 가격을 인상함에 따라 현재 매장에서 1450만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리셀 시장에서 정가보다 약 150만원 낮게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가격 인상 직전(1367만원)보다 오히려 리셀가가 더 떨어졌다. 클래식 플랩백 스몰 사이즈 리셀가도 많이 떨어졌다. 현재 1290만원대로 정가(1390만원)보다 100만원 정도 낮은 수준이다.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수백만원씩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던 샤넬 제품들의 리셀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리셀 시장에서 ‘명품 대접’을 받던 나이키의 한정판 운동화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표적인 제품이 일명 ‘범고래’라고 불리는 나이키 덩크 운동화다. 이 운동화의 정가는 12만9000원이다. 하지만 인기가 워낙 많다 보니 발매되는 족족 팔려 나갔다. 소비자들은 이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자연히 리셀가도 치솟았다. 정가의 두 배가 넘는 30만원을 줘야 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점점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해 현재는 거의 정가 수준으로 리셀가가 떨어졌다.

주춤해진 명품의 인기는 지난해까지 뜨거운 열풍이 불었던 리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샤넬 등 주요 명품들의 리셀가가 정가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속속 등장하면서 더 이상 열기가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최근 백화점 등에서 과거와 같은 오픈런이 잠잠해지는 이유도 이 같은 리셀 시장의 침체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수백만원 프리미엄은 옛말
수많은 사람들이 오픈런을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구매한 제품을 실제로 착용하려는 이들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열심히 노력해 구매한 제품을 리셀 시장에서 되팔아 수익을 내려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샤넬백만 하더라도 인기 제품을 줄을 서 구매에 성공하면 당장 수백만원이 넘는 웃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현재는 정가 이하에 살 수 있는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사이즈를 보면 2022년 1월엔 리셀가가 무려 1400만원대를 형성했다. 당시 이 가방의 매장 정가는 1180만원이었다. 제품을 구하기만 하면 당장 200만원이 넘는 웃돈을 붙여 리셀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했다.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도 마찬가지였다.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추첨을 통해 구매 기회를 제공했는데 여기에 당첨돼 제품을 구매하기만 하면 단숨에 수십만원의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리셀은 작은 노력으로 큰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짭짤한 재테크 수단으로 떠올랐다. 오픈런을 넘어 백화점 앞에서 돗자리나 텐트를 쳐 놓고 밤을 지새우는 ‘노숙런’, ‘거지런’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리셀 열풍이 일게 된 배경이다. 심지어 대신 밤을 새워 줄을 서주는 오픈런 대행 아르바이트가 유행처럼 번졌고 오픈런을 대행해 주는 회사도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리셀 시장의 거품이 점차 사라지면서 웃돈을 줘야 했던 제품들의 리셀가가 정가 이하로 떨어지게 된 것. 이에 따라 예전과 같은 오픈런은 최근 보기 힘들어졌다. 오픈런이 간혹 있어도 시들하다. 한때 부르는 게 값이었던 오픈런 알바 가격도 현재는 시간당 1만원대 수준까지 내려왔다.

명품업계에서는 이처럼 리셀 시장의 열기가 급격하게 꺾인 주된 배경으로 불확실한 경제 전망과 해외여행 확대를 꼽는다. 온갖 경제 지표들이 나빠짐에 따라 기업들은 긴축 경영에 나서고 있다. 자영업자 위기설은 나온 지 오래고 부동산 시장도 좋지 않다. 미래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명품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을 못 가게 된 젊은 세대들이 최근 명품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엔데믹(주기적 유행)으로 여행을 다시 나가게 된 것도 명품업계에는 악재다. 그동안 명품은 여행의 대체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명품을 사려는 사람들도 해외 현지에서도 구매할 수 있어 가시적인 명품 수요는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희소성에 따라 리셀가 갈릴 것”명품 희소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영향도 있다.
“과거 값비싼 명품은 큰 경제력을 가진 소수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플렉스’ 소비가 유행되면서 너도나도 명품을 들고다니는 시대가 됐다. 이렇다 보니 더는 웃돈을 주고 굳이 명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안착되고 있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리셀 시장의 열기가 꺾인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현재 명품 시장이 처한 상황이 자동차업계와 비슷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가령 예전에는 벤츠·BMW·아우디 등 ‘독일 3사’의 차량을 타면 차량에서 내릴 때 으쓱하는 기분이 드는 ‘하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또 다른 명품업계 관계자는 “독일 3사의 차량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최근에는 포르쉐·벤틀리 정도는 타야 어디 가서 ‘나 수입차 탄다’고 자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명품 시장도 마찬가지다. 샤넬·루이비통·롤렉스 등의 브랜드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흔해지면서 에르메스·파텍필립·오데마피게 같은 더 가격이 비싸고 희소성이 큰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수많은 명품 가격이 리셀 시장에서 하락하는 추세지만 소위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의 가격은 여전히 부르는 게 값이다.

현재 리셀 시장에서 입문용 에르메스 가방으로 불리는 ‘가든 파티 30 백’의 매장가는 450만원대이지만 리셀가는 이보다 훨씬 높은 600만원대에 거래 중이다. 출시가가 1억원이 넘는 파텍필립도 리셀 시장에서 3억원 이상을 줘야 구매할 수 있다.

소비 심리 위축이 리셀 시장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하다. 구매 여력이 낮아지면서 웃돈을 주고 리셀 제품을 사지 않게 됐고 이런 추세가 결국 리셀 시장의 침체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앞으로 리셀 시장의 전망은 어떨까. 업계에서는 결국 희소성 여부에 따라 가격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에르메스·오데마피게 등과 같이 소량의 물량을 생산하는 제품은 계속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더욱 높은 리셀가를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면 요즘의 샤넬과 같이 브랜드가 대중화되며 가치가 떨어진 명품은 오히려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리셀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웃돈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창구로 리셀 플랫폼이 각광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