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침체로 지방 정부 재정난 빠져…중국 정부, ‘부채는 통제 가능한 수준’

[글로벌 현장]
중국 자금성을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 자금성을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촉발한 중국 지방 정부의 재정난이 심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부동산이 이제는 최대 리스크가 된 상황이다. 중국 당국은 지방 정부 재정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선 중앙 정부가 지방의 부채를 인수하는 등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18년 연속 재정 적자 기록한 중국 도시는

지방 정부의 재정난이 드러난 것은 최근 남서부 구이저우성에서였다. 구이저우성은 마오타이로 대표되는 바이주(백주)와 담배 외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빈곤한 지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기준 2만164위안(약 370만원)으로 중국 31개 성·시 중 28위다.

구이저우성 산하 발전연구센터는 지난 4월 주요 도시 부채 특별 조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구이저우성 스스로 부채를 해결할 수 없고 중앙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발전연구센터가 하루 만에 삭제했지만 이미 웨이보 등을 통해 널리 퍼진 뒤였다.

구이저우성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는 1조2470억 위안. 작년 전체 재정 수입 3192억 위안의 네 배 규모다. 구이저우성의 작년 지출은 5849억 위안으로 적자가 2657억 위안에 달했다. 이런 적자는 구이저우성이 연간 회계 자료를 공표하기 시작한 2005년부터만 따져도 18년 연속 이어졌다.

문제는 구이저우성이 부채를 줄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재정 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토지 사용권 수입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감소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공산 국가인 중국은 지방 정부가 관내 토지 소유권을 보유하며 경매 등을 통해 70년 연한의 토지 사용권을 매각한다. 구이저우성의 지난해 토지 사용권 매각 수입은 195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3.3% 감소했다. 코로나19 시국에도 늘어나던 토지 사용권 수입이 줄어든 것은 역대 처음이다.

토지 사용권 매각액이 줄었지만 재정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1년 59%에서 지난해 61%로 오히려 높아졌다. ‘제로 코로나’ 방역에 경기가 침체되면서 세수가 13%나 줄었기 때문이다.

토지 사용권 매각액이 감소한 곳은 구이저우만이 아니다. 중국 31개 성·시 가운데 상하이·하이난성·네이멍구자치구를 제외한 28곳의 토지 사용권 수입이 지난해 감소했다. 톈진·지린성·칭하이성은 감소율이 60%를 넘었다. 중국 전체 토지 사용권 수입은 6조6854억 위안으로 2021년보다 23.3% 감소했다.

토지 사용권 수입 감소는 부동산 개발 산업의 업황 부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중국의 부동산 산업은 부동산 개발 업체가 토지 사용권을 구매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게 전형적인 업태다. 지방 정부는 토지 사용권 수입으로 인프라 사업을 벌여 지역 경제 성장을 유도해 왔다. 부동산이 무너진다는 것은 부동산·인프라·수출 등 3대 축 가운데 두 개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지방 정부는 산하 은행을 압박해 부동산 업체에 저리 대출을 해주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부동산 업체가 토지 사용권을 많이 사야 정부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부동산 침체가 금융업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착화했다. 중국 은행의 자산에서 부동산 관련 채무의 비율은 25%에 달한다.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은 중국 GDP를 구성하는 11개 항목 중 하나다. 올 1분기 기준 GDP에서 부동산 개발업의 비율은 6.9%로 공업(33.3%), 유통업(9.7%), 금융업(9.3%)에 이어 4위였다. 하지만 건축·철강·전자·금융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더하면 부동산 개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육박한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과도한 집값 상승이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출생률까지 떨어뜨린다고 보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력한 규제에 착수했다. 과도한 부동산 의존도를 줄이고 시중 자금이 첨단 산업으로 흐르도록 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부채 비율 등을 기준으로 신규 대출을 제한하자 헝다처럼 빚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해 온 부동산 업체들이 줄줄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졌다.

자금력이 바닥난 업체들이 공사를 제때 마치지 못하고 인도 시기를 넘기자 주택 구매자들은 주택 담보 대출 상환 거부 운동을 벌였다. 이는 주택 구매 심리를 더 악화시켰다. 이는 월간 신규 주택 판매액이 2021년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19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말 부동산 관련 대출이나 신주 발행 등의 규제를 대부분 해제했다. 지난 2월부터 판매액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5월 판매액 4853억 위안은 시장 상황이 최악이었던 작년 5월(4546억 위안)에 비해 6.7% 늘었을 뿐 2021년 5월의 1조1192억 위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장기적 주택 수요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숨겨진 부채의 부상

부동산 침체에서 비롯된 지방 정부 재정난은 중국의 대표적 ‘숨겨진 부채’인 지방 정부 융자기구(LGFV)가 안고 있는 리스크도 증폭시킬 수 있다. LGFV는 지방 정부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은행에서 융자하거나 채권을 발행, 이 자금으로 인프라 사업을 하는, 지방 정부가 소유한 특수 목적 법인이다. LGFV의 부채는 정부가 아닌 기업에 잡히고 공식 통계는 없다. 60조 위안에 육박할 것이란 추정이 많다.

LGFV는 인프라 사업에서 번 돈으로 채무를 상환해야 하지만 상당수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 새로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돌려 막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 정부 재정이 악화하면 조달 비용이 올라가거나 신규 조달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최근 윈난성 쿤밍시 산하 LGFV 두 곳이 잇달아 채무 상환 시기를 넘기면서 LGFV 리스크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LGFV는 인프라 사업을 위해 지방 정부의 토지 사용권을 사들이는 주체이기도 하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는 주거용 토지의 사용권을 대부분 부동산 업체가 샀고 LGFV의 비율은 10% 안팎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기업들의 토지 사용권 구매가 대폭 위축되면서 지난해는 LGFV가 사들인 땅이 54%에 달한 것으로 중국 재정과학원은 추산했다. 재정과학원은 “지방 정부 재정 수입을 늘리기 위해 LGFV가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구매한 사례가 상당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LGFV는 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회사를 상대로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토지 사용권을 산다. LGFV 역시 금융권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학계에선 중앙 정부가 지방 재정 위기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리다오쿠이 칭화대 중국경제사상실천연구소 소장은 “중앙 정부가 지방의 부채를 상당 부분 인수하고 앞으로 지방의 채권 발행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방 자체 수입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은 한계에 왔다는 설명이다.

위융딩 중국사회과학원 학부위원(전 인민은행 고문)은 인프라 투자 지출에서 중앙은 0.1%만 담당하고 대부분 지방 정부가 떠맡는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부동산 대신 민간 소비를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숑웨이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이에 대해 “내수 시장이 커지려면 소비자가 자신감을 갖고 경제를 이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는 중국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지방 정부 부채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관영 통신사인 신화사는 재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부 지방 정부들이 부채 위험에 직면해 있고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의 재정 상태는 건전하고 안정적이며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작년 말 기준 지방 정부의 채무 잔액은 35조700억 위안(약 6439조원)으로, 이 역시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승인한 채무 한도 이내에서 통제되는 수준이라고 신화사는 분석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