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상권이 몰려있는 맨해튼 전경./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 상권이 몰려있는 맨해튼 전경./로이터=연합뉴스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수개월 내 헤드라인을장식할 것이다.”

지난 4월 미국의 전설적 투자가 하워드 막스가 날린 경고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찾아 읽는다는 그의 투자 메모는 적중했다. 미국·홍콩·독일·프랑스 등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이 휘청거리자 그 충격파가 한국 금융 시장에까지 밀려오고 있다.

저금리 시절 한국 증권사와 자산 운용사가 투자한 해외 부동산이 무더기 손실로 돌아오고 있다. 증권사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 투자자와 기관은 증권사가 펀드에 담아 온 해외 부동산에 돈을 태웠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인한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로 인한 손실까지 덮치며 악재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홍콩 갑부 망하자 미래에셋 2800억원 위기
최근에는 홍콩 부동산이 문제가 됐다. 미래에셋증권이 타격을 받았다. 4년 전 미래에셋증권이 주도해 홍콩 랜드마크 오피스 빌딩에 빌려준 2억4300만 달러(당시 환율 2800억원)가 사실상 ‘90% 손실’을 떠안았다.

문제가 된 건물은 홍콩 주요업무지구에 있는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다. 건물주였던 골딘파이낸셜홀딩스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선순위 대출자였던 싱가포르투자청과 도이체방크가 담보로 잡았던 건물을 매각했다. 이들은 매각 대금 7억1300만 달러를 챙겨 원금 회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래에셋증권에는 매각 금액이 돌아오지 않았다. 2019년 중순위(메자닌) 대출자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보증을 섰던 홍콩재벌도 파산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미래에셋증권은 왜 후순위 대출자로 돈을 댔을까. 당시 수익률과 안전성이 높다고 판단해서였다. 건물주인 골딘파이낸셜홀딩스뿐만 아니라 최대 주주인 판수퉁 회장까지 대출에 보증을 섰다. 개인 자산만 6조원으로 알려진 홍콩 부동산 재벌이 보증을 섰고 중순위 대출의 금리는 연 8%로 선순위보다 높았다. 미래에셋증권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한국 증권사 대부분이 이 같은 메자닌 구조의 후순위 대출자로 들어갔다.

박영준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해외 부동산 투자를 후순위 대출로 접근한 경우 투자 시점에는 안전하다는 판단이 있어 이자를 더 많이 주는 쪽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한 이익 상실(EOD) 이후 선순위 대출자가 부동산 담보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져갔다면 후순위는 투자목적회사 등 중간 단계 회사의 주식을 증권 잡아 유동화하거나 채권 자체를 매각하는 방법을 통해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파리·홍콩에 물렸다…국내 증권사 해외 부동산 투자 위기
‘큰손’들 10억원씩 투자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2800억원의 투자금 중 자체 투자금 300억원에 2500억원 펀드를 조성해 재매각(셀다운)했다. 펀드는 잘 팔렸다. 조건이 좋아 보였다. 만기가 10개월 수준으로 짧은 데다 연 5% 수준의 수익을 추구했다.

그러자 최소 가입 금액 10억원 이상인 초고액 자산가(VVIP)의 자금이 몰렸다. 우리은행·미래에셋증권 등에서 1600억원이 넘는 VVIP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보험사·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도 몰렸다. 한국투자증권 400억원, 유진투자증권 200억원 등 경쟁 증권사뿐만 아니라 한국은행 노동조합도 투쟁기금 20억원을 넣을 정도였다.

5% 수익을 원했던 투자자들은 원금을 조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관련 펀드를 이미 90% 안팎 상각, 피해 보상 절차에 나선다. 펀드를 조성한 미래에셋 계열사 멀티에셋자산운용도 펀드 자산을 90% 안팎 상각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지급 보증을 섰던 법인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최대한 원리금을 회복할 수 있게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90% 상각’에 대한 의미는 원리금을 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손실이 90%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앞서 한국 기관이 투자한 미국 워싱턴D.C. 소재 ‘1750K 스트리트빌딩’, 맨해튼 ‘20 타임스스퀘어’, 라스베이거스 ‘더드루호텔’ 등이 이미 손실을 보기도 했다. 독일·프랑스 곳곳에서 터지는 파열음독일 오피스 빌딩에 투자한 펀드도 손실 위기에 처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의 트리아논빌딩에 투자한 펀드다. 이 펀드는 2018년 출시 당시 기대 배당 수익률이 연 6.4~7.5%로 화제를 모았다. 해당 펀드의 규모는 총 3700억원으로 공모펀드(1865억원)와 사모펀드(1835억원)로 나눠 자금을 모았다.

사모펀드의 주요 투자자는 하나증권과 키움그룹 등이고 공모펀드는 KB국민은행·대신증권·한국투자증권 등을 통해 판매되며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7월 17일 이지스자산운용은 펀드 수익성 추가 악화를 막기 위해 해당 건물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트리아논빌딩의 주요 임차인이던 은행 ‘데카뱅크’가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부터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임대 가능 면적의 56%를 활용 중인 데카뱅크는 2024년 6월 계약이 만료된다.

전체 임대 가능 면적의 절반 이상이 공실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 건물은 지난해 말 기준 5억4400만 유로 규모로 펀드 설정 당시보다 1억 유로(1430억원) 정도 가격이 떨어졌다.

프랑스에서도 여러 기관이 물렸다. 프랑스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라데팡스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빌딩을 인수하기 위해 한국 증권사끼리 인수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 이 일대 빌딩 공실률이 대폭 높아져 현지 언론에서도 부실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라데팡스지구 평균 공실률은 2019년 4%대에서 올해 초 2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곳에 투자했던 7개 증권사 중 미래에셋증권(마중가타워), 대신증권(CBX타워), 한국투자증권(투어유럽), 메리츠·NH투자증권(투어에크호빌딩) 등 5개 증권사가 여전히 해당 부동산 지분을 상당수 보유 중이다. 펀드 수익률 곤두박질치는데 불꺼진 사무실은 늘어간다 오피스 빌딩을 비롯한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은 올해부터 줄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펀드에서도 자금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대비 약 7개월간 2276억원이 빠져나갔다(7월 18일 기준). 1년으로 기간을 넓히면 거의 4000억원에 가까운 돈(3953억원)이 증발했다.

펀드 수익률도 고전 중이다. 한국에 상장된 59개 해외부동산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년간 22%였다. 하지만 최근 1년 동안 수익을 거의 못 냈다(0.71%). 연초 이후 1.99%로 올라섰지만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올해 들어 꾸준히 하락하면서 최근 3개월간 수익률은 마이너스(-0.27%)로 돌아섰다.

2010년대 중반 저금리 국면에서 부동산 같은 대체 투자 상품이 각광 받았다. 증권사는 주식과 채권 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중위험·중수익을 내건 부동산 대체 투자 상품을 개발하며 투자자들을 모으고 수익을 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 도심의 오피스 빌딩이 텅 비어 가면서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공실률이 크게 늘었고 이 지역 직장인들로 돌아가던 상권도 직격탄을 맞았다. 공실률이 상승하면 임대 수익이 감소하고 이는 투자한 건물의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욕 사무실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26개를 합친 공간만큼 비어 있다. 뉴욕의 랜드마크인 ‘허드슨야드’는 문을 연 지 4년이 지났지만 92층 건물의 절반이 공실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요 도시의 오피스 공실률은 이미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 조사 업체 CBRE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세계 17개 주요 도시 중 뉴욕·홍콩·상하이·런던 등 10곳의 공실률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주요국들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자금 시장이 경색돼 상환과 차환에도 문제가 생겼다.
전 세계에서 불 꺼진 건물이 늘자 한국 증권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13일 기준 국내 금융 투자사들의 해외 부동산 펀드(공·사모 합산) 순자산 총액은 76조107억원이다. 10년 만에 14배 이상 불어났다.

대체 투자 비율을 공격적으로 높여 온 대형 증권사의 상황이 더 좋지 않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대형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비율(자기 자본 대비)은 24%, 중소형 증권사는 11%였다. 한신평은 “올해 하반기 증권사들의 우발 부채와 해외 대체 투자 부실화 위험에 따라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