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에코프로의 시간]
‘황제주’ 에코프로, 우연한 합작 [에코프로의 시간①]
올해 한국 주식 시장은 에코프로가 지배했다. 연초만 해도 이 회사의 주가는 10만원대에 불과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2007년부터 10여 년간은 1만원 박스권을 넘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황제주에 등극하기까지 에코프로의 26년사는 성장주의 치열한 생존 일기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논란과 숙제도 남겼다. <한경비즈니스>는 5회에 걸쳐 ‘에코프로의 시간’을 연재한다.


2021년 9월 9일 모두를 놀라게 한 계약 체결 건이 공개됐다. SK이노베이션이 반기 매출 5000억원밖에 안 되는 회사와 10조원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것. 대상 제품은 전기차용 하이니켈 양극재로, 계약 기간은 2024년부터 2026년 말까지 3년간이었다. 이날 공시가 나온 뒤 이 회사의 주가는 장중 18.8% 뛰었다. ‘코스닥 황제주’ 에코프로, 잭팟의 시작이다. 선제적 도전, 과감한 결단‘지구 온난화는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이들이 함께 공유할 문제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으니 관련 사업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높겠다.’ 1997년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은 뉴스에서 흘러나온 ‘교토의정서’ 체결 소식을 듣고 사업 아이디어를 포착한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수출입 사업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본 뒤였다.

(▶지구 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 방안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 발효는 한국 기업들에 커다란 위협이자 잠재적 사업 기회로 다가왔다. 2000년대 초·중반은 열병합 발전 사업에 뛰어들거나 에너지 절감형 생산 체제 구축, 해외 발전 사업을 통해 배출권을 취득하려는 기업이 늘어나는 시대였다. 체결 소식만으로 환경 사업에 뛰어든 무모한 결정이 황제주의 출발이었다.)

이 전 회장은 1년 뒤인 1998년 10월 22일 서울 서초동 골목 4층 건물 33㎡(10평)짜리 단칸 사무실에 ‘코리아제우륨’이란 간판을 달았다. 직원은 단 두 명. 대기 오염 방지용 화학 흡착제, 악취 및 특정 유해가스를 없애는 기능성 흡착제를 개발하는 환경 기업이었다. 2001년엔 에코프로로 사명을 바꾸고 촉매·흡착제, 케미컬필터 등의 개발에 연이어 성공하며 친환경 분야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는 반도체 제조 공정 시 클린 룸에 유입되는 유해 화학 성분을 흡착해 제거하는 ‘케미컬필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이 사업 부문이 지금의 에코프로에이치엔). 하지만 그뿐이었다. 미래 산업이라 다른 제품은 매출이 늘지 않았다. 20명 남짓한 직원의 월급을 주지 못한 그는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2000년대 초반, 이 전 회장은 솔깃한 제안을 받게 된다. 제일모직이 전해액 용기 유매(유기 물질로 이뤄진 다른 물질을 녹이는 물질) 사업을 함께 해 보자고 타진해 온 것.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향후 전기차 시대에 대응해 초고용량·초고출력 2차전지 개발을 국책 과제로 내걸었는데 이를 시작한 기업이 제일모직이었다. 이 전 회장은 제일모직의 손을 잡았다. 에코프로가 양극재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이렇게 우연히 찾아왔다.
2010년 7월 당시 에코프로 이동채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직원들과 함께 이차전지 재료인 Ni계 양극 소재 생산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경제 신경훈 기자
2010년 7월 당시 에코프로 이동채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직원들과 함께 이차전지 재료인 Ni계 양극 소재 생산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경제 신경훈 기자
당시 에코프로는 양극 활물질 소재인 전구체를 개발해 제일모직에 납품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이동채 회장은 양극재가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을 확신했다. 2004년에는 공정이 까다롭고 연구·개발(R&D)이 어려워 업체들이 꺼리던 니켈계 양극 활물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소재 전구체 R&D에 나서기로 했다. 미래 전기차 시장이 온다면 전구체에서 다른 기업들과 경쟁력 차이가 벌어질 것이란 생각에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양극 활물질’은 전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2차전지의 핵심 소재다. 양극 활물질은 ‘전구체’라는 금속성 원재료에 리튬을 섞어 만든다. 결국 전구체의 성능이 2차전지의 성능을 좌우한다. 당시에는 노트북·휴대전화 등 소형 2차전지에 쓰이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및 NCM 전구체가 대세였다. 여기에 주로 사용되던 양극재는 코발트계다. 에코프로가 선택한 고용량·고출력용 니켈계 양극 활물질 NCA는 보다 큰 용량과 출력을 필요로 하는 전동 공구, 산업 용구 등의 시장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 전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구 온난화, 온실가스 문제로 이산화탄소 감축이 의무화되면 언젠가 반드시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전기차 시대에는 역시 출력이 강하고 용량이 큰 양극재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며 “2차전지는 앞으로 전기자동차뿐만 아니라 항공 운수 산업을 포함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 ‘황제주’ 잭팟의 서막>에서 계속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5b


<에코프로의 시간>

① ‘황제주’ 에코프로, 우연한 합작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09526b
② ‘황제주’ 잭팟의 서막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5b
③ ‘성장주’ 후보와 배터리 아저씨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6b
④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충돌…위기의 순간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7b
⑤ ‘개미 대 공매도’ 왕관의 무게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8b
⑥ ‘황제주’ 에코프로, 주가 결정 지을 3가지 키워드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09702b

‘황제주’ 에코프로, 우연한 합작 [에코프로의 시간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