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에코프로의 시간]

올해 한국 주식 시장은 에코프로가 지배했다. 연초만 해도 이 회사의 주가는 10만원대에 불과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2007년부터 10여 년간은 1만원 박스권을 넘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황제주에 등극하기까지 에코프로의 26년사는 성장주의 치열한 생존 일기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논란과 숙제도 남겼다. <한경비즈니스>는 5회에 걸쳐 ‘에코프로의 시간’을 연재한다.
2010년 7월 당시 에코프로 이동채 대표(왼쪽 두번째)가 직원들과 함께 이차전지 재료인 Ni계 양극 소재 생산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신경훈 기자
2010년 7월 당시 에코프로 이동채 대표(왼쪽 두번째)가 직원들과 함께 이차전지 재료인 Ni계 양극 소재 생산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신경훈 기자
사업은 쉽지 않았다. 3년간의 연구에도 가시적 성과가 나지 않자 제일모직은 사업 철수를 준비했다. 2000년대 중반 전기차 시대가 빠르게 다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차전지 내수 시장은 일본 업체가 독점하고 있었고 2차전지를 사용하는 일은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불과했다. 대기업이 영위하기에 시장이 작았다. 제일모직은 2차전지와 반도체 소재 중 후자를 택했다.

수년간 전구체에 매달린 에코프로는 사면초가였다. 이 전 회장은 즉각 제일모직을 찾아가 “어차피 버릴 거면 (사업권을) 에코프로에 팔라”고 제안했다. 2007년 4월, 에코프로는 제일모직에서 양극 활물질 생산 설비를 매입, 사업권 일체를 인수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에 기초한 베팅이었다.

이때부터는 투자 또 투자였다. 제일모직 생산 라인을 가동하는 동시에 충북 오창에 신규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07년 10월 코스닥시장에 입성했다. 공모가 9000원에서 시작된 주가는 가격 제한 폭까지 오른 1만8400원에 첫 거래를 마쳤다. 핫한 데뷔였다. 이후 2008년 1월 니켈계 양극 소재 40톤과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준공됐고 3월 양극 소재 제1공장이 문을 열었다.

2차전지 소재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수익성은 마이너스에 가까웠다. ‘남들이 미래에 돈이 될지 안 될지 머뭇거릴 때 도전하는 것만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 이 전 회장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2006년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전기차 상용화가 늦어지면서 2차전지 사업은 매년 적자만 기록했다. 당시 권우석 에코프로비엠 전 대표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투자만 해야 했던 10년여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K-배터리 양극재의 신화를 이끈 이동채 전 회장은 이공계열이 아니다. 영남대 경영학과를 야간대학으로 졸업했다. 은행에 근무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회사를 다니면서 공인회계사에 합격했다. 기업 경영을 하고 싶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직전이던 1996년 모피 수출입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2년 만에 좌절을 맛봤다. 자신을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신의 약점은 끈기로 해결했다. 무작정 대덕연구단지로 찾아가 연구원들을 만나 수년간 밥을 사 주고 술을 사 주면서 기술을 공부했다.)
2021년 9월 8일 당시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왼쪽)과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가 서울 SK서린빌딩에서 대규모 양극재 조달 계약을 맺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2021년 9월 8일 당시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왼쪽)과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가 서울 SK서린빌딩에서 대규모 양극재 조달 계약을 맺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길고 지루한 투자와 기다림. 잭팟은 14년 만에야 터졌다. 2007년 제일모직에서 관련 사업을 인수받은 지 14년이 지난 2021년 9월 9일 에코프로 전지재료 사업부문이 물적 분할돼 설립된 에코프로비엠은 SK이노베이션과 10조1102억원 규모의 전기차용 하이니켈 양극재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기간은 2024년부터 2026년 말까지 3년이다. 에코프로그룹에서 양극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에코프로와 손잡음으로써 소재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SK이노베이션의 전략이었다.

10조원대 수주에 시장은 환호했다. 계약금은 지난해 에코프로비엠 매출의 1182.19% 규모였다. 한국의 배터리 3사 중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의 양극재 공급을 사실상 에코프로비엠이 쥐고 있었다. 증권가는 에코프로비엠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상향 조정했다. 물적 분할 된 에코프로비엠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지 2년 반만에 공모가(4만8000원)보다 10배 높은 수준의 목표 주가가 제시됐다. 공시 직후 회사의 주가는 장중 18.80%가 뛰었다. 황제주, 에코프로의 서막이었다.

<에코프로의 시간>

① ‘황제주’ 에코프로, 우연한 합작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09526b
② ‘황제주’ 잭팟의 서막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5b
③ ‘성장주’ 후보와 배터리 아저씨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6b
④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충돌…위기의 순간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7b
⑤ ‘개미 대 공매도’ 왕관의 무게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8b
⑥ ‘황제주’ 에코프로, 주가 결정 지을 3가지 키워드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09702b
‘황제주’ 잭팟의 서막 [에코프로의 시간②]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