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마니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푸바오 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 푸바오의 예비 신랑감 후보 판다가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귀국했다는 소식, 푸바오가 생일 날 대나무 케이크를 선물받았다는 소식 등 판다 관련 이야기가 미디어를 도배하고 있다.
강력한 팬덤도 소셜 미디어를 주무른다. 푸바오의 팬들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워 5만~10만 명이 기본이다. ‘오늘자 푸바오’, ‘푸바오 먹방’이 커뮤니티의 인기 글에 오른다. 이들은 서점가부터 다양한 판다 굿즈까지 휩쓸며 구매력을 과시한다.
푸바오의 인기는 단순히 ‘귀여워서’일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푸바오의 인기 요인과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살펴봤다. ① 콘텐츠의 힘 : 인위적일 수 없는 장면들3년 전인 2020년 7월 20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이언트 판다가 태어났다. 이름은 푸바오,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뜻이다. 푸바오의 부모는 2012년생 러바오(수컷)와 2013년생 아이바오(암컷)로, 이들 모두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 2016년 에버랜드 ‘개장 4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 들어왔다.
4년 만의 아기 탄생. 세계적인 멸종 취약종의 탄생은 날 때부터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시기, 슈퍼스타는 팬들을 만날 수 없었다. ‘흥행 보증 수표’를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에버랜드는 비책을 세웠다.
푸바오의 성장기를 담은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낯설던 사육사도 점차 판다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진심을 다했다. 출생부터 100일, 생일, 1000일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저 대나무만 먹고 잠만 자는 날도 있었다. 사육사들은 아기 판다 푸바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촬영했다. 행동 풍부화를 진행하기 위해 만든 화관, 대나무 아이스크림, 대나무로 만든 장난감, 대나무로 만든 해먹도 공개했다. 아기 판다 푸바오가 왜 작게 태어나는지, 어떨 때 구르는지, 왜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지 사육사들은 판다 지식을 낱낱이 공유했다. 일종의 ‘판다 할부지’들의 브이로그다.
푸바오의 영상은 판다 마니아, 동물 마니아들에 의해 서서히 퍼져 나갔다. 시작은 소소했다. 오히려 2021년에는 반중 정서가 고조되면서 ‘판다 반환’, ‘판다 비용’ 등이 화제가 됐다. 판다를 좋아한다고 하면 ‘친중파’란 비웃음이 들릴 때였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에버랜드 동물원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 채널에서 아기 판다가 사육사의 팔짱을 끼는 장면, 아기 판다가 사육사 다리에 매달리는 장면이 크게 화제를 모았다. 특히 아기 판다가 100일 때 몸무게를 재러 들어간 사육사의 다리를 잡고 매달리는 영상이 조회 수 1500만 뷰를 넘겼다.
‘역주행’,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에버랜드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7월 25일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강철원 사육사의 판다 사육 스토리를 담은 ‘전지적 할아부지 시점’을 연재하는 에버랜드 동물 전문 채널 ‘뿌빠TV’는 10만 구독자를 달성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최근 40만 구독자 달성을 앞둘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송영관 사육사의 ‘판다왔숑’ 또한 인기 콘텐츠다. 푸바오와 사육사의 모습이 꼭 손자와 할아버지 같다고 해 ‘할부지’란 별명도 붙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단순 캐릭터보다 스토리가 있는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이 더 큰 인기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인위적으로 만든 만화 캐릭터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의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가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② 강력한 팬덤 : 입소문을 타다 푸바오의 콘텐츠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고 팬들을 통해 재생산됐다. 푸바오 덕후 ‘푸덕이’로 불리는 이들은 매일 같이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푸바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푸바오 영상 중 사람들이 빠져들 만한 ‘입덕 포인트’를 발췌해 소셜 미디어에 올리며 다른 이들의 ‘입덕’을 도왔다. 유명 푸덕이들의 팔로워 수만 5만~10만 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베트남·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팬이 있다. 특히 중국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중국 SNS 채널인 틱톡에서 사육사와 아기 판다의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내 자체 설문 조사에 따르면 푸바오는 중국 내 수많은 판다들을 제치고 인기 순위 톱3다. 중국 팬들이 부르는 푸바오의 별명은 ‘재벌집 공주 판다’다.
푸바오의 귀여움에 빠진 팬들이 차츰 늘어날 무렵 갑작스러운 뉴스가 터졌다. ‘푸바오, 내년 중국 반환.’ 워싱턴 조약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의 모든 판다를 자국 소유로 하고 해외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푸바오 역시 한국 출생이지만 소유권은 중국 정부에 있어 만 4세가 되는 성체가 되면 중국에 돌아가야 한다. 생후 만 4년이 되면 성 성숙이 이뤄져 가족 이외의 성별이 다른 판다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약속이지만 푸바오의 팬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지난 5월 화제의 인물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는 판다 사육사 강철원 씨가 나와 푸바오와의 이별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내비쳤다. “할부지에게 너는 영원한 나의 아기 판다야.”
푸바오와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은 팬들을 더 결집시켰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푸바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에버랜드를 찾는 행렬이 늘었다. 에버랜드에 따르면 판다월드의 누적 방문객은 1400만 명으로, 최근 푸바오의 인기가 급증한 이후 방문객이 약 두 배 증가했다. CCTV·인민일보·신화통신 등 중국의 대표 언론사들도 푸바오를 만나기 위해 판다월드를 찾았다. 푸바오의 셋째 생일 파티에는 고위급 인사인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방문해 생일을 축하할 만큼 국내외의 관심이 커져 갔다.
에버랜드의 판다 관련 상품 판매량도 푸바오의 역주행 인기에 올라탔다. 푸바오의 인기가 급증한 이후인 5월 이후 판다 관련 굿즈 판매량이 이전보다 60% 이상 증가했고 온라인 판매량이 지난 봄 같은 기간 대비 약 4배까지 증가했다. 특히 푸바오의 탄생 50일과 100일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보들 인형은 빠른 재고 소진으로 입고 시기를 앞당길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푸바오 돌을 맞아 2021년 7월 출간된 포토 에세이 ‘아기 판다 푸바오’ 도서 또한 최근 두 달간 1만5000부 이상이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약 2만4000부로, 역주행의 성과다. ③ 애니멀 테라피 : 자극적 콘텐츠 속 ‘쉼’‘푸덕이’들의 절대 다수는 2030대 여성이다. 도서 플랫폼 예스24에 따르면 ‘아기 판다 푸바오’의 예약 판매자 중 여성 비율이 87.6%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령별로는 20대(28.9%)와 30대(47.4%) 구매자 비율이 76.3%를 차지했다.
에버랜드 동물 전문 유튜브 채널인 ‘뿌빠TV’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말만 들어도 어린이들을 웃게 만드는 ‘똥’을 형상화한 ‘뿌지직빠지직’의 준말로, 어린이 시청자를 겨냥했지만 지금은 2030대 여성 비율이 더 높다.
이들의 공통점은 구매력을 가지고 있고 콘텐츠 재생산이 가능하고 팬덤을 집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푸바오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푸바오는 한 가지를 더 보탰다. 바로 ‘관계성’이다. 관계성은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주요 키다. ‘관계’에 접미사 ‘성’을 붙인 이른바 ‘관계성’은 주로 K팝 문화에서 쓰이는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만들어 내는 케미스트리를 일컫는다. 이들의 ‘성장 서사’는 전문가들이 뽑는 K팝 산업 전체의 성공 요인이자 팬덤을 집결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푸바오의 성장 서사에도 판다 외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푸바오를 돌보는 사육사다. 푸덕이들은 아기 판다가 사육사의 팔짱을 끼고 사육사 다리에 매달리는 모습에 열광했다. ‘바오’ 가족이란 관계성 때문에 사육사의 성을 따 ‘강바오(강철원 사육사)’, ‘송바오(송영관 사육사)’란 별칭도 붙었다. 이들이 만드는 ‘가족애’는 가족애가 무너진 요즘 사회에 뭉클함을 안겼다. 정동희 에버랜드 주토피아 팀장(동물원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 가족과 관련한 부정적인 뉴스들이 쏟아지면서 어미 판다의 모성애, 사육사들의 교감 등이 ‘가족애’의 모습으로 긍정적으로 비쳐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트레스에 허덕이는 현대인의 ‘힐링 콘텐츠’로도 활약하고 있다. 푸바오 채널에는 푸바오를 만나 달라진 인생을 고백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판다 가족들을 보면서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몰라요.”(@yuriseo****)
“정신과에 다녔는데 푸바오 덕분에 약도 끊었어요.”(@pooh****)
“시간 남으면 보고 밥 먹을 때 보고 자기 전에 보고 바쁘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보다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네요.”(@ssookb****)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접했던 푸바오의 탄생이 이모의 삶을 180도 바꿔 놨어. 정말 고마워.”(@prettygirl****) 동물과의 상호 교감을 통해 사람의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애니피(animal therapy)’는 이미 우울증·간질환·시청각 장애·당뇨병 등에 이르기까지 치유의 한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직접 동물을 만지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내려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사실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요즘, 푸바오의 영상이 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성장·고물가 시대에 해결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에 부닥친 현대인들에게 푸바오는 빠르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④ 외모 : 진화학자가 말하는 귀여움하지만 이러쿵저러쿵 해 봐도 푸바오의 인기 요인은 ‘귀여움’이다. 멸종 위기종이었지만 귀여워 살아남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 큰 판다도 귀여울 지경인데 아기 판다는 더할 나위 없다.
진화학자들은 인간이 모든 종의 아기를 귀엽게 여기는 데는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아기의 영유아적 특성이 우리가 그 대상을 ‘귀엽다’고 여기고 정성껏 보살피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유아적 특성은 몸통에 비해 큰 머리, 짧은 팔다리, 토실토실한 뺨, 작은 코와 입, 크고 둥근 두 귀, 서툰 움직임 등이다. 1943년 오스트리아의 동물 행동학자이자 동물학자인 콘라드 로렌츠는 이를 ‘베이비 스키마’라고 주장했다. 로렌츠의 베이비 스키마 이론은 그간 많은 연구를 통해 뒷받침됐다. 한 연구에서는 122명의 대학생에게 어느 얼굴의 사진이 가장 귀엽다고 여겨지는지 묻자 베이비 스키마의 속성을 더 많이 지닐수록 더 귀엽게 여긴다고 평가했다.
이 이론은 영유아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캐릭터에도 스키마 이론이 쓰인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인기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를 50년 간 조사한 결과 미키마우스가 처음 등장할 당시인 1928년과 지금의 미키마우스는 눈이 더 커지고 코는 더 짧아졌다. 사람들이 귀여운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에 미키마우스의 외양도 변화한 것이다. 한때 한국을 강타했던 캐릭터 ‘뽀로로’, ‘라이언’ 등도 스키마 이론이 적용되는 사례다.
판다 역시 스키마 이론이 통하는 대표 주자다. 몸통에 비해 큰 머리, 짧은 팔다리, 토실토실한 뺨, 작은 코와 입, 크고 둥근 두 귀, 서툰 움직임…. 여기에 까만 안경까지 썼다. 우리가 판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판다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더 있다. 다시 영유아로 돌아가자. 핏덩이가 마침내 어른이 되기까지는 부모의 돌봄이 필수적이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새끼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보살핌의 본능이 특히 강하다.
예컨대 말·소·기린은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걸을 수 있고 고양이와 개는 몇 달 안에 성장한다. 반면 인간의 아기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 수년간 부모에게 의존한다. 아기는 부모에게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리는 감각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는 부모에게 상냥함이라는 정서를 촉발해 부모가 아기를 ‘귀엽다’고 여기고 정성껏 보살피게 만든다. 영장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는 아기가 부모에게 ‘귀엽다’고 여겨지는 시각적·후각적·청각적 신호를 통해 부모의 보살핌을 얻어내는 것을 ‘감각적 덫(sensory trap)’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판다와 인간의 공통점이 나온다. 성체는 100kg이 넘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판다지만 갓 태어난 판다의 몸무게는 100~200g, 몸길이는 15~17cm에 불과하다. 어미의 약 900분의 1로 태어나 곧장 어미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높은 확률로 죽음을 맞이한다. 새끼가 걸어다니게 될 때까지는 약 3개월 정도 걸리고 어미 판다는 새끼를 품에서 한시도 놓치 않는다. 에버랜드 측은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어미 판다 아이바오의 임신·출산·육아를 가감없이 보여줬고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푸바오의 어미 아이바오가 한 달 내내 같은 자세로 새끼를 돌보다 등에 욕창이 난 모습까지 보게 됐다. 다른 포유류들과 달리 미성숙한 존재를 품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푸바오가 던진 감각적 덫에 빠져든 것은 아닐까.
[스페셜 리포트 : 푸바오 신드롬-판다의 정치경제학]
①한국은 ‘푸바오’ 앓이 중…꾸밈없는 콘텐츠의 힘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64963b
②“푸바오 유지비 15억원?” 사실은…판다효과 상상초월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75662b
③판다 외교에서 전랑 외교로…‘밉상’ 된 중국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75645b
④“쥐 아니야?” 푸바오 동생 왜 작을까?…판다에 대한 6가지 질문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64896b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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