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실외 보다 실내 선호 현상 뚜렷해
거리는 '한적', 백화점은 '북새통'

[스페셜 리포트: 글로벌 경제 지도가 바뀐다, 기후경제학 ]

<도비라>
해가 저문 8월 6일 저녁 8시께 찾은 서울 성수동 카페 골목. 최근 서울에서 가장 ‘핫 플레이스’로 이름난 상권이다. 하지만 이날 성수동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스마트폰을 보니 저녁 시간에도 불구하고 성수동의 온도는 섭씨 영상 30도가 넘었다. 조금 걸었는 데도 등 뒤에 땀이 흥건해졌다. 더위 때문에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적한 성수동의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날인 8월 7일 오전 11시께 방문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분위기는 전날 갔던 성수동과 사뭇 달랐다. 월요일 오전 시간임에도 점포 안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쇼핑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적이 드문 밖과 달리 쾌적한 점포 내부는 생기가 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이곳을 찾아 점포 안을 뛰노는 어린아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8월 7일 한적한 명동 거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폭염 경보가 내려진 8월 7일 한적한 명동 거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국이 밤낮 가리지 않는 무더위와 폭우로 몸살을 앓으면서 사람들의 먹고 쓰는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실외가 아닌 백화점이나 대형 몰·마트 등 쾌적한 실내를 찾아 소비하는 현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여름 시원한 백화점이나 대형 몰에 자리한 식당가는 가장 핫한 ‘외식 상권’으로 떠올랐다. 유통 채널에서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반대로 야외 날씨에 고스란히 노출된 주요 상권의 식당가와 편의점 그리고 전통 시장 등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젔다.
줄 서서 가는 맛집도 한적해무더위와 폭우가 야기한 가장 큰 소비 패턴의 변화는 외식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찌는 더위와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크게 줄었다. 아무리 핫한 상권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더위의 직격탄을 맞으며 썰렁하기만 하다. 자연히 유명 상권에 있는 식당가들도 최근 매출 부진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8월 6일과 7일 각각 찾은 성수동과 롯데월드타워의 식당들은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성수동 식당가는 주말인 데도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평소 저녁 시간 같았으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맛집들도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더위가 절정인 한낮에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한 인근 식당 관계자는 “낮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인적 자체가 드물다 보니 장사가 더욱 안 된다”고 말했다.

평일 상황도 비슷하다는 설명. 인근에 사무실이 많지만 직장인들의 발길이 뜸하다. 실제로 요즘 직장인들은 무더위로 인해 점심 식사를 밖에서 하는 것을 꺼린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A 씨는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도시락을 싸 가는 이들, 혹은 배달 음식을 시켜 사무실에서 먹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다”며 “너무 덥다 보니 점심시간에도 사무실 밖으로 나가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백화점 내 식당들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밤낮으로 붐빈다. 8월 7일 찾은 롯데월드몰에서는 내부에서 운영 중인 식당은 입장하기도 쉽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한 식당을 찾았는데 오픈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자 역시 줄을 서서 대기 안내를 받았다. 20분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었다.

다른 식당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바로 옆 식당에서도 30분 정도 기다려야 식사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무더위가 외식 상권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며 “길거리에 있는 유명 상권 식당보다 백화점 상권의 식당가로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말처럼 무더위는 백화점으로 인근의 손님들을 그러모으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식당에서 줄을 기다리다 만난 롯데월드타워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 김동민(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 여름에는 점심시간만 되면 걸어서 유명 맛집들이 많은 인근 ‘송리단길’을 종종 가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무더위 때문에 거의 점심을 백화점 식당가에서 먹는다.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걸어서 가기도 어렵고 막상 가더라도 햇빛 아래에서 입장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백화점도 대기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에어컨을 쐬며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자연히 백화점 식당가의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기 어렵지만 올여름 롯데월드몰의 식당가 매출이 작년 여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신세계백화점 식당가도 밀려드는 손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무더위로 인해 특히 물냉면·냉소바 등 여름 계절 메뉴가 잘나간다. 이 메뉴들을 중심으로 올해 7월 식당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1% 늘었다”고 밝혔다.

다만 예외는 있다. 냉면집이다. 한국의 유명 냉면집들은 올여름 엄청난 특수를 누렸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여느 해와 달리 냉면 수요는 넘쳐났다. 무더위에 냉면을 찾는 사람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맛집 투어 코스로 유명 냉면집이 부상한 결과다.

8월 초 최고 기온 섭씨 영상 35도에 이른 평일과 주말 을지로의 유명 평양냉면집은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시 30분 이후에도 평일은 100팀, 주말에는 200팀을 기다려야 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는 후기는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남녀 불문 필수 템 된 ‘양산’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물품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여름 최고의 히트 상품은 ‘양산’이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본격화한 7월 25∼31일 양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역시 양산 매출 7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양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따가운 햇빛을 막기 위해, 때로는 예측할 수 없이 내리는 비를 막기 위한 용도로 양산이 각광받으며 판매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양산은 여성들만 쓰는 것이란 인식도 깨지고 있다. 7월 한 달간 G마켓의 양산 판매 추이를 보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남성의 구매 증가율이 12%로 여성(5%)을 앞질렀다.

최근 대형마트에서 잘나가는 제품들을 추려봐도 무더위와 폭우가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이마트에서 올여름(7월 기준) 매출 신장률이 가장 가팔랐던 상품은 ‘의류 건조기’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140% 매출이 늘었다.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됐지만 그렇다고 매일 빨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냄새를 제거하고 쾌적하게 옷을 관리해 주는 의류 관리기가 올여름 ‘판매 대박’을 치고 있는 배경이다.

게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45% 판매가 늘어났다. 이마트 관계자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관련 제품의 매출도 상승했다”고 진단했다.

반대로 골프(-10%), 등산 용품(-13%), 캠핑 용품(–20%) 등 야외 활동과 관련된 카테고리의 매출은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롯데마트에서는 7월 기준 선크림의 매출 신장률이 200%로 가장 높았고 탄산음료(100%), 아이스크림(100%), 얼음(80%), 방충 용품(50%) 등이 뒤를 이은 것으로 집계됐다.

눈에 띄는 것은 방충 용품이다. 무더위에 모기·파리 등의 등장 시기가 빨라지고 개체 수도 늘어나면서 방충 용품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엔데믹(주기적 유행) 이후 주춤했던 배달 시장도 다시 호황을 맞았다. 한 배달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더운 여름만 되면 배달 수요가 급증했는데 올여름은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로 배달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더욱 많이 늘어났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귀띔했다.
전통 시장·편의점은 ‘울상’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주요 상권의 식당가도 식당가지만 무더위의 직격탄을 맞은 유통 채널은 또 있다. 대표적인 게 야외에서 에어컨 없이 장사하는 전통 시장이다.

여름 전까지만 해도 전통 시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젊은층 사이에서 레트로한 감성이 유행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무더위와 폭우가 좋았던 흐름을 완전히 깼다.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다시 생기면서 냉방 시설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전통 시장을 찾는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8월 8일은 가을의 길목이라는 ‘입추’였지만 여전히 한낮 온도는 섭씨 영상 34도에 육박했다. 이날 점심시간에 찾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금남시장 일대도 무더운 날씨 때문에 거리엔 사람들이 드물었다.

이곳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한 상인에게 “장사가 잘되느냐”고 묻자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누가 시장에 오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원래 여름만 되면 시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드는 데 올해는 무더위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 있는 생선가게는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대형마트 매출을 뛰어넘을 만큼 잘나가던 편의점도 무더위의 악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성수동 길가에 있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A 씨는 “한여름이 되면서 방문객 수가 평소 대비 30% 정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편의점은 주로 주요 상권에 들어서 있다. 무더위와 폭우로 유동 인구가 크게 줄면서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도 급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돋보기
“식당만 장사 잘돼요”…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의 ‘딜레마’
“사람이 많으면 뭐해요. 매출은 그대로인데….”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 중인 이민규(가명) 씨는 최근 대형 몰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지난해까지 코로나19 사태의 악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매출이 급감했다. 약 30% 떨어졌다. 팬데믹으로 인해 몰 안에 사람이 없다 보니 매출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몰을 찾는 사람이 크게 많아졌지만 그에 따른 ‘낙수 효과’를 피부로 체감하지는 못한다는 게 그의 설명.

이 씨는 “여전히 매출은 오르지 않고 있다”며 “인근의 식당들만 밤낮으로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요즘 경제가 어렵다 보니 소비자들이 먹는 것 외에 카테고리로 지갑을 열지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백화점업계도 실적을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겉모습만 보면 사람이 많아 실적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속살을 뜯어보면 내실이 부족한 상황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통적으로 식당가만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특히 백화점 매출을 좌우하는 명품의 판매 부진이 최근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이 다시 본격화되면서 명품 소비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며 “많은 손님 수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