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임제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늘어난 미국채를 사 주는 건 누굴까 [머니 인사이트]
상향 조정되는 경기 전망과 함께 미국채 공급 물량 부담이 확대되면서 미국채 금리의 상방 압력이 유지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 긴축(QT)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 중심의 외국인 그리고 은행의 수요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늘어난 공급 물량을 받아줄 실질적인 수요처가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채 3년, 10년 입찰은 견조한 입찰 이후 30년 입찰 또한 평년 대비 양호한 실적을 보였음에도 장기채 금리의 변동성이 확대됐다. 추세적으로 낮아져 온 텀 프리미엄(투자자가 장기 채권 보유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하는 추가 수익률)의 정상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이 수급에 과도하게 민감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수요 줄고 미국 내 수요 늘고 우선 외국인부터 살펴보면 일본의 미국채 수요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글로벌 긴축 기조 속에서도 완화적인 정책을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가 크게 절하됐고 이로 인해 미국채 투자 과정에서의 환 헤지 비용이 급증했다. 지난 7월 수익률 곡선 제어(YCC) 정책의 조정으로 일본 장기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추가적인 이탈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또한 미국 은행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 Supplementary Leverage Ratio) 규제(초대형 은행의 자기 자본 및 자산 비율이 6%를 초과해야 하는 규제) 정상화에 이어 대출 수요가 반등하며 미국채 잔액이 감소했다.
늘어난 미국채를 사 주는 건 누굴까 [머니 인사이트]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인해 중소형 은행들의 뱅크런 사태가 불거지면서 추가적인 미국채 매수 여력이 위축되기도 했었다. 안정적인 투자자인 외국인과 은행의 수요가 약화가 Fed의 QT와 맞물리면서 지난해 미국채 시장의 유동성 여건이 악화 이슈가 부각됐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리스크는 채권 시장의 변동성이 축소되면서 완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외국인의 수요가 되살아나는 가운데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견조한 매수세가 지속된 영향이 컸다.

외국인들의 미국채 수요는 글로벌 외환 보유액과 연관성이 높다. 지난해 달러 가치가 급격하게 절상된 영향으로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 보유액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만 최근 신흥국을 중심으로 외환 보유액이 재차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의 긴축 기조가 완화되며 달러 강세가 제한적인 흐름을 고려한다면 외환 보유액의 회복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별로 보더라도 외환 보유액 감소 폭이 컸던 싱가포르나 인도 등 일본을 제외한 국가들의 미국채 수요는 올해 회복되고 있다. 이에 더해 통화 가치의 절하 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영국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견조한 미국채 수요가 지속됐다.

일본의 추가적인 미국채 매도세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환 헤지포지션을 청산하면서 미국채 투자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최근에는 높아진 미국채 금리의 매력을 활용하면서 환 헤지를 하지 않은 네이키드 포지션이 늘어나고 있다. 이 밖에 변동성이 일부 확대되는 부담이 있지만 헤지 포지션을 다양화하면서 미국채 매수세가 일부 회복되고 있다.

한편 미국 상업은행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예금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대출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며 미국채 투자를 크게 늘렸었다. 하지만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뱅크런 이슈가 불거지면서 여유 자금이 축소됐고 이는 부진한 미국채 투자로 이어졌다.

다만 은행의 미국채 매수 여력은 개선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미국 대형 은행을 중심으로 현금상 자산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대출 수요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SVB 사태 이후로 대출 태도가 긴축된 상황에서 은행의 미국채 수요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미국채 금리 급등 구간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주로 하는 레버리지 펀드의 쇼트 포지션 확대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미국채 금리의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는 요인이지만 쇼트 커버링의 영향력 또한 커지며 미국채 금리의 방향이 바뀌는 국면에서 하락 폭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시장의 우려보다는 제한적우려가 높았던 8월 미국 이표채 입찰에서 예상보다 견조한 시장의 수요를 확인했다. 이는 단기채 비율 발행이 높게 유지되며 올해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표채 발행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연간으로 봤을 때 올해 순발행 예정인 이표채 발행 물량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평년보다도 더 적은 수준이다.

미국채 30년 입찰도 부진했다기보다 평범한 수준의 입찰 결과를 기록했다. 응찰률은 6~7월보다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외국인 수요의 프록시(proxy : 대리)인 간접 낙찰률 또한 2022년 이후의 높아진 수준을 기록했다.

현재 시장이 반영하고 있는 발행 물량 부담은 2024년 이후의 우려가 선반영된 측면이 크다. 올해 양호한 입찰 성과를 확인하면서 미국의 늘어난 발행 물량 부담 우려는 점차 덜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미국채 금리 움직임을 구성 요소별로 살펴보면 단기 금리 경로와 텀 프리미엄으로 구성된다. 텀 프리미엄은 단순히 단기채를 긴 기간 동안 롤오버하는 대신 장기채에 투자해 발생하는 리스크의 프리미엄이다. 이는 주로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 수급적인 요인, 그 외 통화 정책의 급변 리스크를 반영한다.

최근 텀 프리미엄과 단기 금리 경로로 본 미국채 금리 상승세는 대부분 수급적인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플레이션 리스크 프리미엄은 최근 물가 둔화세를 확인하면서 낮은 수준을 유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 정책 불확실성도 9월을 끝으로 긴축 사이클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가 우세해졌기 때문에 추가적인 확대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 상향 조정과 맞물리며 시장의 수급 민감도가 높아졌지만 미국채 시장의 자금 유입 흐름을 고려할 때 발행 물량이 소화되기 어려운 환경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펀더멘털 둔화와 함께 금리의 상방 압력은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임제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