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반드시 완전 전기차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완전 전기차 시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다.
전기차 판매량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들었다. 빠르게 질주하던 시장 성장세는 휘청했다. 몇몇 전기차 관련 기업들의 위기설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잘나가던 전기차의 속도를 확 떨어뜨리게 만들었을까.
“올해 전기차 기업들이 최초의 불황을 맞이할 수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CNBC가 내놓은 전기차 시장 전망이다. CNBC는 전기차 업체들이 올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침체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는 내연기관차 대비 값이 비싼 전기차 판매량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고 전기차 관련 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 당시 수없이 사라졌던 정보기술(IT) 기업들과 비슷한 길을 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CNBC가 제기했던 예상은 맞아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뒤따라 전기차 기업들이 직면한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테슬라를 좇던 리비안·루시드·피스커 등 미국의 떠오르던 신생 전기차 업체들은 위기설에 시달리며 주가가 급락 중이다.
리비안만 보더라도 100달러를 웃돌았던 주가가 최근 20달러 선으로 주저앉았다. 해당 기업들은 현지에서 파산 가능성까지 거론될 만큼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촉망받던 전기 버스 회사 프로테라가 실적 부진을 견디지 못해 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전기차 ‘위기설’ 수면 위로 한동안 급속도로 팽창했던 전기 자동차 시장에 ‘급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판매량이 예전만 못한 흐름을 보이고 있고 관련 기업들도 주춤해진 수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방 올 줄 알았던 ‘전기차 시대’의 도래가 미뤄지는 모양새다.
전기차 시장의 확산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은 숫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 조사 업체 마크라인즈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총 434만2487대로 지난해 상반기 307만9746대와 견줘 41.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판매량은 늘었지만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기차 시장이 ‘위기’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성장세는 크게 떨어진 것이다. 2021년 115.5%였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61.2%로 급감했는데 올해는 50%대 아래를 기록했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판매 감소세가 눈에 띈다. 시장 조사 업체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총 55만7330대였다. 전년 동기 대비 50% 늘었다. 하지만 증가율은 지난해 상반기(71%)에 한참 못 미친다.
중국도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전기차 판매량이 3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109% 증가) 대비 성장세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 각국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다. 한국만 보더라도 전기차 내수 판매량은 총 7만8977대로 전년 대비 16.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 한국에서 전기차 6만7848대가 팔리면서 전년(3만9686대)보다 71.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성장세가 둔화했다.
이렇게 된 배경으로는 세계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자동차는 경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대표적인 소비재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소비자들이 큰 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는 가솔린과 디젤로 대표되는 내연기관차보다 가격이 비싸게 형성됐기 때문에 더욱 구매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세계 각국은 그간 보조금을 통해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며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잇따라 보조금마저 축소하고 있어 판매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전기차 판매량이 나름 본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해 각국 정부에서 이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과 중국은 전기차 보조금 자체를 아예 없앴다. 한국도 올해 전기차 보조금 한도를 기존 최대 20% 줄였다.
하지만 이는 ‘시기상조’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보조금 축소는 전기차의 진입 장벽을 다시 높였고 결국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서서히 외면하는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부족한 충전 인프라, 배터리 성능 개선 등 아직 전기차를 운행하기 위해선 여러 불편들을 감수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보상 성격이 강한 보조금이 축소되면서 굳이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 전기차를 선택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반값’ 전기차 등장이 관건 그의 말처럼 최근 분위기만 보면 전기차 대세론은 한풀 꺾였다. 그 자리를 연비가 좋으면서 가격도 전기차보다 저렴한 하이브리드가 꿰차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현대차·기아의 지난 7월 기준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8.5% 줄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32.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다 보니 아예 전기차로의 방향 전환을 미룬 완성차 업계도 나타났다. 미국 ‘빅3’ 자동차 기업인 포드가 대표적이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7월 28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하이브리드차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포드는 미국 완성차 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 전환을 추진한 업체다. 2026년까지 연 20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이랬던 포드가 갑자기 전기차로 향하는 과정에 ‘가교’ 역할을 할 하이브리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보더라도 전기차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연비는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도 당분간 하이브리드 대세론을 예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시점에서 가장 친환경적이면서도 불편함 없이 주행할 수 있는 차량이 하이브리드”라며 “전기차는 현재의 높은 가격으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이른바 ‘반값 전기차’가 시대가 온다면 상황이 급반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테슬라는 연초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며 ‘반값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폭스바겐과 볼보 등도 내연기관차의 가격과 비슷한 전기차 출시를 예고하고 나선 상태다.
김 교수는 “전기차가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가격 부분에서 매력도가 생기면 다시 빠르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며 “언제가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현재의 절반 수준 정도의 전기차를 내놓는 순간부터 다시 시장이 빠르게 팽창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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