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이화여대 강당엔 2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영국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을 보러 온 팬들이었다. 유명한 가수의 공연을 보기도 힘들었고 해외 가수의 내한 공연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얼리 인 더 모닝(Early in the morning)’의 주인공 클리프 리처드가 실제 눈앞에 나타나자 팬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빠, 사랑해요”를 외치며 환호했고 곳곳에서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디어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한데 모여 열광하는 것을 무절제하고 미성숙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50여 년이 흘렀다. 세월만큼이나 분위기도 달라졌다. 팬들의 열정적인 사랑은 ‘팬덤’이란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팬들은 음악, 아티스트 관련 상품을 적극 소비하며 시장의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K팝과 한국 문화를 확대·재생산하며 한류 열풍을 이끈 숨은 주역으로도 평가받고 있다.짧지만 강한 K팝 팬덤의 역사 한국 팬덤의 역사는 짧다. 1970년대 팬덤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팬덤 시대는 가왕 조용필이 열었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정식 데뷔한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오빠 부대의 시작이었다. 요즘도 그의 콘서트장엔 그때 그 시절 팬들이 찾아온다. 조용필 이후엔 산울림·송골매·들국화·부활 등 한국형 밴드가 나오면서 음악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19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1992년 ‘난 알아요’로 데뷔한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고정된 틀을 깬 자유분방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팬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이때부터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이뤄졌고 오늘날 K팝의 기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0대 팬덤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한국형 팬덤의 확고한 틀이 마련된 것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였다.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 등 아이돌 1세대가 나오면서 팬덤은 전국적인 단위로 구축됐다. 오늘날 ‘팬클럽’의 형태도 이때 마련됐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별로 팬클럽이 형성됐고 이 조직 안에서 콘서트 관람부터 앨범과 굿즈 구매 등이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 진행됐다.
이후 한류 열풍이 일었다. 해외 팬이 생겨나자 팬덤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까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2010년대 이후엔 아시아를 넘어 중동·남미 지역 등으로 확산됐다. 2020년대부터는 미국·유럽 등 글로벌 중심 시장에서 K팝 열풍이 일어나며 국적·인종을 뛰어넘는 팬덤이 형성됐다.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뉴진스 등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거대하고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에서 팬덤은 갈수록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확장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발전하며 대중이 여러 장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쇼미더머니’, ‘미스터 트롯’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며 힙합·트로트처럼 이전에 소외됐던 장르에 눈뜨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임영웅·송가인 등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 스타도 탄생하게 됐다.
오디션을 통해 형성된 팬덤은 “내가 뽑은 아이는 내가 키운다”는 ‘육성형’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팬들은 한류 열풍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팬들의 활동은 훨씬 정교하고 치밀해졌다. 팬들이 직접 여러 가지 언어로 자막을 만들어 노래와 콘텐츠를 전 세계에 퍼뜨리기도 했다.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노래나 프로그램에 외국어 자막을 직접 입혔다. 생소한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엔 집단 지성까지 발휘했다. 누군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동남아에 있던 다른 팬이 영어를 동남아 지역 언어로 재번역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팬덤의 위력과 무게를 알면 승리한다 그렇게 형성된 K팝 팬덤의 산업 규모는 2020년 기준 약 8조원에 달한다. 그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 기획사들도 팬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사업 개발과 확장에 나서는 것이다. 아티스트·음원·공연 등 1차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하는 데서 나아가 영상 콘텐츠 제작과 굿즈 판매, 팬 플랫폼 등을 기반으로 한 2차 IP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팬 플랫폼은 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이들의 반응을 실시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팬 플랫폼으로는 하이브의 ‘위버스’,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디어유’가 운영하는 ‘버블’ 등이 있다. 팬 플랫폼에선 아티스트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받는 것은 물론 아티스트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도 감상할 수 있다. 음반과 굿즈 등 관련 상품도 이 플랫폼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아티스트의 향후 계획도 파악할 수 있다. 해당 아티스트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식의 채팅 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와 팬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나아가 팬 플랫폼 안에서 국내외 팬들끼리 서로 소통하며 새로운 화합의 장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팬 플랫폼은 팬덤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끄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팬들은 새로운 시장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들은 노래와 콘텐츠 소비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상당한 시간과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한다. 팬픽(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주인공으로 만든 소설 등 창작물)은 물론 주요 영상들을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열성적인 팬들은 색다른 놀이 문화를 만들고 다른 팬들의 움직임까지 이끌어 낸다.
팬덤 산업은 팬덤 자체가 가진 긴 생명력 덕분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커질 수밖에 없다. 팬덤은 특정 시간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 아티스트에 한번 빠지게 되면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 아티스트를 완전히 잊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자신이 좋아할 만한 아티스트를 발견하게 되면 뇌에서 극도의 흥분을 느끼는 쾌감 중추가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반응들이 자주 일어나면 아티스트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믿음이 형성된다. 이 사랑과 믿음은 마치 하나의 종교처럼 작동, 자발적으로 종료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더라도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은 남아 있게 된다.
아이돌 1~2세대들이 다시 TV에 나오거나 콘서트를 열면 과거 팬들이 반가워하며 막강한 결집력을 보여주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각자 흩어져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을 다시 떠올리며 과거의 추억까지 같이 회상한다.
하지만 팬덤의 형성은 갈수록 쉽지 않은 환경이 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 소비자들이 시시각각 많은 아티스트와 콘텐츠에 노출되면서 팬들의 시선이 다양하게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와 기획사들이 팬들의 마음을 더욱 강렬하게 오랫동안 붙잡아 두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경이다.
이 같은 양상은 급속도로 변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던 영상도 다른 영상에 의해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접목된 제품도 잠깐 관심을 끌었다가 금방 잊힌다. 하루에도 수많은 노래와 영상이 나오는 K팝 팬덤 시장도 앞으로 이런 변화에 일부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누가, 어떤 콘텐츠가 국내외 대중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하게 될까. 팬덤이 가진 폭발적인 에너지의 위력과 무게를 잘 알고 적극 활용하는 자가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팬덤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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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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