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웅의 경제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5060대 오팔세대로 일컬어지는 신중년 팬덤의 소비를 이끌어 낸다. 2020년 쌍용차(현 KG모빌리티)가 임영웅을 모델로 내세워 단일 모델의 판매량이 53%나 증가한 사례는 유명하다. 임영웅의 팬들은 기꺼이 임영웅 1호 딱지가 붙은 차량을 구매했다. 자동차는 물론 치킨·피자·샴푸·남성복·의약품·정수기·임플란트 등 분야를 막론하고 임영웅이 떴다 하면 ‘완판’ 행렬이 이어졌다. 임영웅의 팬 카페에는 “정수기 광고 모델 끝났나요. 재계약하면 저도 교체하려고요”, “간장에 영웅님 얼굴이 있어 바로 사왔습니다”, “본죽 쇼핑백에 영웅님 사진이 있어 버리지도 않고 간직합니다” 등의 소비 인증 글이 가득하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애정하는 스타를 지원하며 산업계에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과거 팬덤은 그저 공동체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팬덤이 문화적 영향을 넘어 경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 활동을 ‘팬덤 경제(이코노미)’, ‘팬덤 경영(비즈니스)’으로 부른다. 팬과 산업을 더한 팬코노미(팬+이코노미)라는 조어도 있다.
팬덤이 ‘오빠(누나) 부대’라고 불릴 1970~1990년대만 해도 팬들의 소비는 앨범·콘서트·신문·잡지 등 아티스트의 오리지널 IP에 그쳤다. 하지만 팬덤의 규모가 초국적 한류 팬덤과 만나면서 소속사와 아티스트들이 오리지널 IP를 넘어 MD·라이선싱·출판·웹툰·게임·캐릭터 등 간접 참여형 사업에까지 나서면서 팬덤 경제는 그 덩치를 점점 더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단순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인 참여 주체의 지위를 얻었다. 팬덤 경제의 본질이다.

2001년 JYP엔터테인먼트의 간판 프로듀서 박진영은 직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온라인 음악 파일 공유 서비스인 ‘냅스터’와 같은 서비스가 나와 한국의 CD 기반 음반 시장의 90%가 무너졌을 때다. 박진영은 음악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때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것은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비자들은 영원히 스타를 원할 것이란 믿음이었다. 그때부터 JYP엔터테인먼트는 인재를 찾아 나섰다. 가수 비와 그룹 원더걸스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후 아시아·미국의 로드맵을 그렸다. 해외에서의 성공 여부를 떠나 박진영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스타는 팬과 초국적 팬덤을 가져왔다.
그즈음부터 한국에서는 팬덤과 팬덤 경제라는 말이 미디어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연 배우를 맡은 배용준이 일본에서 문화를 넘어 경제·산업 부문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자 ‘주식회사 욘사마의 경제 효과’를 분석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잘나가던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지자 일본 중년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그 결핍을 욘사마가 채운 시절이었다.
팬덤이 경제의 영역으로 더욱 확장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와 같은 걸그룹, 빅뱅과 동방신기와 같은 보이그룹들이 일본·중국 등 아시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자 ‘9인 기업 소시의 경제학’, ‘동방신기 1000억 대박…아이돌 해외 콘서트의 경제학’ 등 경제 관점에서 아이돌을 조명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8조원대 BTS 팬덤 경제, 왜 지금 팬덤을 주목하나 [21세기 경영학의 키워드 ‘팬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9/AD.34608555.1.png)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팬덤은 ‘(오)빠’라는 멸칭을 들을 때였다.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10대 소년소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사회 부적응자. 팬덤에 대한 고정 관념은 사회 깊숙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팬덤 경제의 중흥

BTS의 데뷔 초 다른 이름은 ‘중소돌(중소아이돌)’이었다. 소속사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보니 공중파보다는 음악 케이블 TV 위주로 활동을 펼쳤다. BTS는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일찍부터 트위터·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로 눈을 돌렸다. 데뷔 전부터 무대 밖 일상을 소셜 미디어로 공유하고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그들이 공유하는 모든 일상은 팬들에게 ‘덕질’할 맛나게 하는 ‘떡밥’이 됐다.
콘텐츠는 그 자체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팬들을 통해 재생산됐다. 팬들은 스스로 BTS의 영상을 각국 언어로 번역하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만 모아 재가공했다. 팬들이 만들어 낸 번역 영상은 BTS가 언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국적을 초월한 세계적 팬을 거느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정치사회연구소는 “BTS와 팬 사이는 흔한 권력 관계 대신 팬덤이 곧 해당 세력의 주체가 되는 상호 관계성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분석은 정확했다. 스타와 팬덤의 상호 관계성이 BTS의 제작자인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의 성공 전략이기도 했다. “BTS가 팬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쌓은 충성심이 미국에서의 성공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사한 전략을 펼친 디즈니·애플을 인용했죠.” 방 의장은 2019년 10월 10일 미국 시사 주간지인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주류 공식과 다른 공식을 통해 BTS가 미국 가요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팬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 당시 가요계가 갖고 있던 음반 판매 부진이라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말했다. 18년 전 박진영의 ‘스타’ 제작 선언에서 더 나아가 스타 뒤에 있던 ‘팬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음반 시장이 음원·디지털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2000~2010년대만 하더라도 앨범 판매량의 규모가 감소했지만 BTS의 팬덤은 조직적으로 앨범을 구매하고 스트리밍을 하며 아티스트를 홍보함으로써 앨범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음원·스트리밍 위주의 시장이 아이돌 팬덤에 따라 앨범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8조원대 BTS 팬덤 경제, 왜 지금 팬덤을 주목하나 [21세기 경영학의 키워드 ‘팬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9/AD.34581403.1.jpg)
BTS가 빌보드 핫 100에 최초로 오른 해, 2020년에 하이브(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BTS의 시장성을 내다봤다. 당시 이들이 바라본 팬덤 경제의 시장 규모는 총 7조9000억원으로 추정됐다. 하이브는 아티스트·음원·공연 등 1차 IP를 활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영상 콘텐츠 제작과 굿즈 판매, 캐릭터 산업, 팬 플랫폼 등을 기반으로 한 2차 IP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간접 참여형 매출을 통해 규모의 확장을 꾀했다.

실제 삼일회계법인(PWC)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콘서트, 사인회 등의 대면 엔터테인먼트가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2021년 한 해 6.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8조원대 BTS 팬덤 경제, 왜 지금 팬덤을 주목하나 [21세기 경영학의 키워드 ‘팬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9/AD.34608715.1.jpg)
세계 경제를 녹다운시킨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산업이 주춤할 때 대면 사업이 중심인 엔터테인먼트가 타격 받지 않은 것은 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지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팬덤 소비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설명되지 않는 비이성적 소비에 가깝다”며 “따라서 팬덤 소비는 경기 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금리 인상, 물가 상승률에 따라 소비 감소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기업과 경제 주체들도 팬덤을 구축하고 충성심과 소비력을 바탕으로 혁신과 브랜드 확장을 이어 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많은 기업과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의 팬덤을 키우기도 하고 다른 팬덤 주체와의 협력을 통해 다른 팬덤을 새로운 소비자군으로 이끌어 내기도 한다. 충실한 팬덤만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성공 열쇠가 됐기 때문이다. ‘팬덤 경제학’을 쓴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인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은 “불황 때 고객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며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을 넘어 브랜드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가진 ‘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등하는 물가, 경제 불황 우려에 지갑을 닫는 요즘 ‘팬덤 경제학’을 다시 새겨야 할 때가 왔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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