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압박 및 각국 성장 전망에 위험 요소로 떠올라
국제 유가 4% 급등 마감
미국 등 주요 국 ‘기준금리 딜레마’ 가능성 제기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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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세계 경제에 새로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의 경우 국제유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의 물가 상승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각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10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세계정세 불안정성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이다.
실제 이스라엘과 하마스와 충돌하면서 9일 국제유가는 4% 이상 급등하며 장을 마쳤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4.53% 상승한 배럴당 88.41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69% 오른 88.67달러에 거래됐다.

경기침체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 우려로 최근 하락세를 보였던 브렌트유와 WTI 선물 가격이 이스라엘 전쟁의 여파로 다시 강세로 돌아선 것이다.

국제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배경은 이렇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석유 생산국이 아니다. 하지만 인근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밀집해있다. 즉, 주요 수송 통로가 인근에 위치한 것.

게다가 이번 전쟁이 다른 중동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주요 외신 등은 이번 전쟁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이란이 미국이 추진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에 앙심을 품고 지난 8월부터 하마스와 함께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란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 공격이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를 방해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만약 이번 사태로 인해 미국이 대(對)이란 제재를 강화하게 되면 원유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이란이 이번 하마스 공격에 관여했다고 판단할 경우 이란 제재를 강화해 이란 원유 수출 축소가 이어질 수 있다.” 캐롤린 베인 캐피털 이코노믹스 수석 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진단했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결국 미국 등 주요국을 ‘기준금리 인상 딜레마’에 빠뜨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유가 상승에 따라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다만, 경기가 침체하면 반대로 기준금리를 낮춰야 한다.

카림 바스타 트리플아이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은 인플레이션과 성장 전망에 모두 큰 위험요소로 작용한다”며 “미 연준(Fed)에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중 어느 쪽이 더 큰 골칫거리인지 선별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쟁의 지속 기간과 확전 여부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석유와 주식시장이 즉각적인 영향을 볼 수 있지만, (본격적인 영향을)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쟁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이날 유럽증시는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으며, 뉴욕증시는 상승세로 장을 마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