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2’뿐만 아니라 재난 영화 ‘황야’도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로 많은 관객을 모은 마동석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본래는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으며,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을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극장 대신 넷플릭스행을 선택했다.
자발적으로 ‘극장 패싱(passing)’을 선택하고 OTT로 직행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됐던 2020~2021년, ‘사냥의 시간’, ‘승리호’ 등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긴 했다. 하지만 관객이 극장을 갈 수 없거나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점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번엔 전혀 다르다. 극장 개봉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화제성이 높은 영화들이라 관객들의 기대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OTT행을 잇달아 선택하고 있다. 영화계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리 내준 한국 박스오피스
현재 한국 영화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회복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마땅한 대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한국영화 매출액은 456억원에 그쳤다. 코로나 이전에 해당하는 2017~2019년 9월 평균 매출액(832억원)의 54.8%에 불과하다.
전 세계 영화 시장과 비교했을 때도 한국 시장이 좋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글로벌 박스오피스 분석 기관인 고워 스트리트에 따르면 지난 9월 세계 영화 매출액은 2017~2019년 같은 달에 비해 19% 감소한 데 그쳤다. 이 감소분엔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의 파업 여파 등이 일부 반영됐다. 즉 한국 영화의 위기가 유독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회복 탄력성도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성수기로 불리는 여름과 추석 명절에 개봉했던 작품들마저 흥행에 실패하며 한국 영화 시장은 더욱 침체됐다. 지난 7월 개봉한 ‘밀수’가 514만 명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관객 31만 명을 기록한 ‘거미집’을 포함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지 못한 영화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작사는 영화를 실컷 만들어 놓고도 극장 개봉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개봉을 했다가 자칫 흥행에 실패하면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위험 부담이 훨씬 커진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OTT는 하나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제작비를 보전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글로벌 OTT에 판매 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장기적으로는 좋은 대안이 되기 힘들다. OTT도 개별 영화에 대한 ‘리쿱 비율’(제작비 지원 비율)을 점점 줄여가고 있다. 이전까진 화제성을 높이고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높은 비율을 제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OTT 업계 상황도 팬데믹 때보다 좋지 않아 비율을 차차 줄이고 있다. 요즘처럼 자발적으로 OTT 직행을 선택한 영화가 늘어난다면, 리쿱 비율을 더욱 낮출 가능성이 있다.
결국엔 극장에 와서 한국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늘어나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1차적 원인은 극장을 찾는 관객 자체가 크게 줄어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OTT로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확산됐고, 많은 사람들의 콘텐츠 이용 패러다임이 크게 변했다. 동시에 영화 티켓 가격이 오르며 극장을 멀리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그렇다고 이 이유만으로는 한국 영화의 위기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국내 박스오피스를 살펴보자. 올해 박스오피스의 주인공은 단연 일본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11월 8일 기준 국내 박스오피스 1위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지난 1월 개봉한 ‘슬램덩크 더 퍼스트’, 3월 나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이 잇달아 국내 극장가를 점령했다. 결국 관객들은 ‘볼 만하다’라고 판단되는 영화가 있으면 극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그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일본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외화에 계속 밀리고 있다. 사라진 새로움 되찾고, 또 다른 ‘노란문’ 열어야
화려하게 오스카를 휩쓸었던 한국 영화의 기세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순 없는 것일까.
한국 영화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전을 거듭해 왔다. 위기도 많았지만 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극복해 왔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좀 다르다. 앞서 언급한 콘텐츠 이용 패러다임과 산업 구조의 변화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위기의 시작과 끝엔 또 다른 원인이 명백히 존재한다. 한국 영화에 사라져 버린 ‘새로움’이다.
물론 팬데믹 기간에 창고에 묵혀둔 작품들이 많아 기시감이 더욱 크게 든 탓도 있다. 그사이에 나온 다른 드라마 등에서 이미 본 듯한 대사나 설정들 때문에 식상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 차 탓만을 하기엔 더 큰 문제가 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들을 떠올려 보자. 어느 때보다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작품들이 골고루 나왔다. 스포츠 영화도 있었고, SF물도 있었고,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장르) 영화 등도 있었다. 장르의 다변화를 시도한 것 자체는 좋았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차별화 지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았다. 어떤 장르를 취했든 간에 그 안엔 신파적 요소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엔 대부분 비슷하게만 보였다. 그사이 관객들의 눈높이는 더욱 높아져 있었다. OTT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쏟아진 다양한 콘텐츠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관객들의 기준과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채 쓸쓸히 외면당했다.
영화의 본질은 무엇보다 이야기다. 이야기는 익숙한 듯 보여도 새로워야 하며, 쉽게 보여도 그 안에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국 영화는 가장 중요한 이 사실을 놓쳐버린 게 아닐까.
‘밀수’ 개봉을 앞두고 언론시사회가 열렸을 당시 류승완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위기 속에서 영화인들이 더 정신을 차리고 임해야 한다. 한국 영화가 산업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쉬리’라는 영화 덕분이었다. 지금도 위기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본을 충실하게 고민하면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기본에 충실한 작품들이 우선 만들어지고, 원활한 극장 개봉과 흥행까지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이 나온다면 한국 영화 시장은 충분히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1990년대 초 활동했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 회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노란문은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시네필(영화 애호가)들이 함께 만든 단체다. 이곳 멤버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영화를 열심히 감상하고 공부했다. OTT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오직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해냈던 일이다.
이 작품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날 이들처럼 한국 영화에 열렬히 빠져 탐닉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봉 감독 같은 거장의 탄생도, 한국 영화 시장을 떠받쳐온 시네필을 양산하는 것도 현재로선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리에게 또 다른 노란문이 생겨날 수 있도록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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