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던가, 고등학생이던 딸이 새 바이올린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습용 바이올린이 자기 실력을 감당하지 못한다나 어쩐다나. 딸아이 손을 잡고 향한 곳은 복권 판매소였다. 두 장을 사서 한 장씩 나눠 가졌다. “당첨되면 이걸로 사줄게. 젤루 좋다는 그~ 스트라디 머시기, 열 개는 사줄게.”
“당첨되면”이란 가정법과 그에 딸린 빈 약속은 만국만인 공통인가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과 나는 야릇한 행복감에 빠졌다. “아빠, 혹시 이거 진짜 당첨되면 어쩌지? 난 아직 준비 안 돼 있는데.” “큰일이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감당하나….” 결코 오지 않을 대박의 상상은 우리 부녀의 30분을 행복하게 달궈줬다.
1달러짜리 복권의 효용은 달콤한 과대망상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찾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 비현실성과 비합리적 용도에 있으리라. ‘혹시’와 ‘만약’이란 성분의 희망풍선. 요지부동의 현실에 짓눌린 이들에겐 어쩌면 진통제일 수도 영양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 말로 최고의 가성비, ‘갓성비’도 갖추고 있지 않나.
복권은 뇌의 보상-기대 경로를 자극한다. 도파민이 솟구치면 비이성적인 동기부여를 경험한다. 이 강력한 감정 편향은 확률 같은 이성적 판단을 억제한다. 꽝이 나와도 ‘다음번’이라는 희망으로 재기할 수 있다. 통계는 감정의 적수가 될 수 없다. 복권 도파민 사용법
현실적으로 보자. 매주 수십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평균 1억분의 1도 안 되는 극단적 확률을 노리고 복권구매에 나선다. 전 세계적으로 복권에 지출되는 금액은 영화, 음악, 책, 스포츠 이벤트, 비디오게임 모두를 합친 것보다 크다.
한탄과 지탄은 진부하며, 계도와 규제로는 역부족이다. 과학적으로 규명 못 한 인간의 본원적 욕망과의 상관관계를 상정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 반갑게도 복권을 향한 비합리적 집착을 수용하고 그것을 사회 혁신의 도구로 활용하는 실험들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심장 전문의들은 처방된 심장 약을 정해진 시간에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100달러 상금을 매일 내걸었다. 그냥 지급한 것이 아니라 100분의 1 당첨 확률인 추첨을 통해서. 그 결과 약을 거르는 환자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아프리카 국가 레소토 (Lesotho)에서는 안전한 성관계를 장려하기 위해 복권 추첨을 도입했다. 대상자들은 4개월마다 성병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으면 일주일 평균 급여에 해당하는 50달러 추첨에 참여할 수 있었다.
2년 후 매독균 보유자군 중 신규 HIV 감염률이 21.4% 감소하고 치료 그룹에서 HIV 유병률이 3.4% 낮아지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 경제 취약계층이 성병에도 취약하다는 것을 고려한 스마트한 디자인이었다.
보건사업에 복권을 적용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시작은 1957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였다. 결핵 진단을 위한 X레이 캠페인에 복권추첨을 도입했다. 보건 당국이 목표로 한 25만 명의 세 배에 달하는 인원이 참가했다. 사람들은 매주 추첨하는 복권에 열광했고 2차 대전 후 유행했던 방사능 공포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중독치료센터의 복권실험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왔다. 중독환자가 아편성분 약물 음성 판정을 받을 때마다 회전판 복권 추첨기회를 제공했는데 지속성과 치료 효율에 있어 다른 어떤 치료법보다 우수한 결과가 도출됐다. 주기적 당첨을 기대하는 도파민 고조효과가 약물로 인한 ‘하이(high)’ 욕구를 상쇄 혹은 초과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센터는 이른바 ‘후회 복권’도 비슷한 효용을 지녔음을 밝혔다. 수많은 체중감량 연구에 따르면 감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사전에 제공했던 상금을 몰수하는 ‘후회 복권’이 전통적 다이어트의 개입보다 장기적 효과 면에서 탁월함을 입증했다. 안전 섹스 보건정책에 복권을 활용한 아프리카 레소토 (복스데브)
행정에 활용되는 복권
건강 관련 행동에만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카리브 국가 아이티의 경제학자들은 복권연계 저축계좌를 통해 빈곤층의 현금 저축률을 30% 이상 끌어 올렸다. 미국의 신용조합도 복권연계 저축에 적극적이다. 예컨대 매 50달러 저축마다 복권 1매 지급이고 매월 진행되는 추첨의 상금은 50~1000달러이다.
행정적 활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싱가포르는 복권 게임을 통해 대중교통 혼잡 시간대 이용객의 약 10%를 비혼잡 시간대로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웨덴은 과속 카메라 복권을 실험적으로 운영했다. 제한속도 준수 운전자에게 3000달러 상금이 걸린 보상 복권을 나눠준 것이다. 이 상금은 과속 운전으로 징수한 벌금에서 지불된다.
깜찍한 신상필벌 행정으로 30km/h 속도제한 지역 평균 속도가 32km에서 25km로 떨어졌다. 사망 사고는 32%나 감소했다. 하지만 실험을 종료되자 그 효과가 금세 사라졌다. 스웨덴 교통 당국은 속도준수 복권의 지속적 사용만이 효력을 지닌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LA에서는 복권을 통해 투표율을 제고했다. 보테리아 (Voteria)로 불리는 이 기획은 지구 교육위원회 선출에 상금 2만5000달러 (한화 약 3300만원) 복권을 내걸었다. 돈으로 유권자를 꼬드기는 술책이란 비난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끌어냈다. 어차피 각종 광고나 유세에 공적자금이 투여된다면 복권이 더 나쁜 선택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있겠는가.
바람직한 행위에 대한 보상은 윤리성 강화 대신 금전적 타산만 부추긴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게 따지면 여러 위법행위에 대한 벌금 부과도 똑같이 지탄받아야 하는 것일까? 무사고 운전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고 사고 빈번 운전자에게 할증 보험료를 부과하는 제도에 공감한다면 복권을 통한 동기부여에 유독 각을 세울 이유가 없지 않겠나. 스웨덴의 도로 중앙에 설치된 제한속도 준수 복권 표시 (리서치게이트)
복권은 게임이다
현찰, 할인쿠폰, 또는 상품권 무상 지급 대신 굳이 복권을 고집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차이는 게임에 있다. 게임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다. 이 불확실성은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적극적 참여를 유도한다. 뭔가 이미 결정되고 보장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흥미도 동기부여도 잃고 만다.
예를 들어보자. 병원은 노쇼(No Show) 환자들로 골머리를 앓는다. A 병원은 고심 끝에 노쇼 환자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 결과 노쇼 비율이 현격히 줄었다. 하지만 이 병원을 찾는 환자 고객 자체가 줄고 말았다. 벌금 징수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병원은 복권으로 선회했다.
후속예약이 필요한 환자를 회전판 복권 게임에 초대했다. 당첨은 확실했지만 10, 50, 150달러 상품권 중 어떤 것일지는 알 수 없었다. 상품권은 다음 방문 약속을 지켰을 때 지급했고 그 결과 노쇼율이 50%에서 30% 이하로 떨어졌다. 추첨 대신 그냥 최고 150달러 상품권을 약속했다면? 지정 금액의 상품권은 별로 매력 없다. 실제로 후속예약을 지킨 사람들은 10, 50, 150달러 상금 액수와 무관하게 유사한 분포를 보였다.
권위주의적 행정이 위험한 이유는 강제성에 대한 의존 때문이다. 인간의 자발성을 활용하지 못한다. 제재와 징벌이 주는 공포는 부정적 행위를 줄일 수는 있어도 긍정적 행위를 유도하지는 못한다. 포퓰리즘 정책이 후진 이유도 여기 있다. 수동성만 부추긴다.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대신 입 벌리고 기다리는 시민만 늘린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당첨 행운에 비관적이다. 그래서 역으로 ‘무언가’에 당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면 꽤나 적극적으로 변한다. 또 그 ‘무언가’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 참지 못한다. 99.99999%의 복권 구매자들이 반복되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습성은 불확실성-기대-예측이라는 게임 성분 때문이다. 인정하고 활용하자.
게임강국, 혁신강국
좋든 싫든 시대는 변한다. 관점도 개념도 변한다. 지난번 도쿄 하계 올림픽에서는 스케이트보드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불량’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놀이가 어엿한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았다.
‘농땡이’의 대명사 비디오게임 역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됐다. 얼마 전 열린 롤림픽(League of Legend) 챔피언전을 보라. 고척 스카이돔 전 좌석이 매진되고, 광화문광장에서 최초의 e-스포츠 응원전이 열렸으며 멀리 몰도바, 스웨덴, 칠레에서 직접관람을 위해 날아왔다.
인간은 게임에 열광한다. 복권도 일종의 게임이다. 그 특수형태의 게임이 의료, 경제, 행정과 복지에 접목되지 말라는 법 없다. 구린 관점과 태도만 버리면 된다. 한국은 이미 복권과 게임강국이다. 복권-게임 도파민을 활용한 사회혁신에서도 강국으로 나설 때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