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매일이 다른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김한솔의 경영 전략]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그리고 박진영. 이름만 들어도 감탄사가 나오는 가요계의 ‘레전드’들이 모였다. ‘골든걸스’라는 프로그램 얘기다. K팝을 이끄는 메이저 기획사 중 하나의 대표인 박진영 씨가 누나들에 대한 ‘팬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최고령 걸그룹을 만드는 과정이 참 재밌다.

이들이 어떤 노래를 할까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그것보단 각자 조금씩 서로에게 적응하며 변해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바가 더 크다. 어제와 오늘이, 또 내일이,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는 이들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명확한 역할 인식이 중요한 이유그룹 ‘골든걸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인순이 씨가 제작 발표회에서 “아마 제가 박진영 씨에게 가장 크게 지적을 받았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이는 물론 데뷔에서도 까마득한 선배에게 박진영 씨가 노래에 대해 지적했다는 게 놀라웠다. 노래를 할 때 ‘발음을 뭉개라’, ‘입을 작게 벌려라’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는 것.

과거 인순이 씨가 왕성한 활동을 할 땐 정확한 가사 전달을 위해 연필을 입에 물고 연습하기도 했는데, 정반대의 요청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것이 ‘요즘 시대가 원하는 것’이어서다.

이 장면에서 배워야 할 것은 명확한 역할 인식이다. 인순이 씨와 박진영 씨, 두 사람은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듀서와 가수의 관계다. 프로듀서는 가수에게 가이드를 주고 피드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수의 나이가 많다고 프로듀서가 설렁설렁 넘어가선 안 된다. 나이를 떠나 각자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한 게 프로 조직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요즘 ‘리더인 나보다 나이 많은 구성원’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리더들을 많이 만난다. 쉽지 않은 상황임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조직에서 연차를 뛰어넘어 리더의 자리에 앉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걸 보여주는 것이, 비록 나이는 어리더라도 리더가 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다. 나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해 보자.

‘골든걸스’ 활동에서 배워야 할 둘째는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30년 이상 몸에 밴 습관, 창법을 어떻게 한 번에 바꿀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순이 씨는 ‘이마에 테이프를 붙여가며’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노래할 때 입을 크게 벌리고 힘이 들어가면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걸 스스로 느끼고 이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원래 하지 않았던 것은 힘들다.

늘 해 오던 게 있었는데 그걸 ‘변화’시키는 건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항’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나아질 수 없다. 사람들은 다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데 나만 왼쪽으로 달려가는 꼴이다.

물론 왼쪽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왜’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에서 박진영 씨가 가장 ‘말 안 듣는 멤버’로 꼽은 신효범 씨의 행동이 그렇다.

‘노래를 이렇게 불러달라’고 하는 프로듀서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맞선다. 안무를 알려 주면 ‘그걸 하면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냐’고 짜증도 낸다. 어떤 의미에선 저항이다. 하지만 결국은 해 낸다. 그것도 아주 잘.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하다 보니 ‘이걸 내가 배워야 했던 것이구나’라고 느꼈다”고. 무조건 과거를 버려야 하는 건 아니다. 저항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나와 반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용기도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걸 배울 수도 있어서다.

프로그램 초기에 가장 큰 저항을 보였던 이은미 씨의 인터뷰를 보자. 그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을”하고 있다면서 “K팝으로 활동하는 후배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란 걸 알게 됐다. 무척 숙연해졌다. 앞으로 후배들을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나아지는 과정 아닐까.

셋째는 리더의 자세다. 앞서 말한 ‘리더의 역할’이 제대로 통하려면, 구성원들이 피드백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우선 리더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이 우선이다.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리더이기에 결국 구성원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주느냐가 너무나 중요하다. 소위 ‘쎈 누나’ 네 명을 이끌어야 하는 박진영 씨의 접근 방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하라우선 섭외 장면. 한 명 한 명씩 만나 설득을 한다. 각자가 좋아하는 작은 선물과 함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우받고 싶어한다. 부담스러운 의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내가 진심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각자 중요시하는 포인트를 알고 그걸 공략하는 게 중요하다. 누구에겐 ‘당장의 보상’이 동기 요인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겐 ‘새로운 도전’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함께한다’는 것이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다. 리더가 개개인의 특성을 잘 아는 게 핵심이다.

합숙을 하며 연습을 이끄는 과정에서도 박진영 씨의 리더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멤버들이 평소에 부르지 않았던 템포와 리듬의 음악에 낯설어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각자의 스타일로 노래를 소화한다. 하지만 프로듀서 박진영 씨의 성에 차진 않는다.

껄끄러운 피드백을 해야 하는 상황, 그는 솔직하면서도 세련되게 전달한다. 우선 ‘인정’이다. 쉽지 않은 고음임에도, 어색한 템포임에도 능숙하게 소화한 부분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그다음 개선해야 할 부분을 짚어준다.

핵심은 두루뭉술한 피드백이 아니라 구체적인 부분을 하나씩 짚는다는 점이다. 노래와 춤을 동시에 보면서도 ‘이 부분 박자가 밀렸다’거나 ‘팔 동작이 틀렸다’는 걸 정확히 짚어낸다. 피드백이 ‘구체적’이어야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그다음에 하는 것이 ‘논의’다. 본인이 짚어낸 개선 포인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듣는다. 구성원에게 자기 변론의 기회를 주는 셈이다. 이를 통해 본인이 힘든 걸 하소연할 수도 있고, 진짜 자신의 문제를 깨닫기도 한다.

피드백의 마지막은 ‘대안 제시’다. 이 노래를 할 때 박자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 하는지, 자꾸 틀리는 동작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솔루션을 제시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좋다’고 하는 건 회피일 뿐이다. 그렇다고 A부터 Z까지 잘못된 것만 지적하면,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도 기분만 상할 뿐이다. 개개인을 파악하고 세련된 피드백을 하는 것,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박미경 씨의 인터뷰 내용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데뷔 무대를 앞두고 그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그 과정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음을 믿고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김한솔 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