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Q&A(上)

[스페셜리포트 : 2024 부채 리포트]
날아온 '6000조 빚' 청구서…곳간마저 비어간다(上) [2024 부채리포트②]
‘개와 늑대의 시간’.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늦은 오후다. 한국의 부채 위기도 그 즈음에 놓여 있다. 분초를 다투는 부채의 위기를 잘 다루면 빛의 시간으로, 그렇지 못한다면 어둠의 시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부채는 자본주의를 움직이게 하는 혈류에 해당한다. 너무 많이 흐르면 무리가 가고, 너무 적게 흐르면 활력이 떨어진다. 선악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국가, 기업, 가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빚을 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상환능력 대비 과한 빚을 져서 아무런 성과 없이 소진해버린다면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숫자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Q. 한국 부채, 진짜 심각한가한국이 짊어진 빚을 들여다보자. 지난해 한국의 총부채는 6000조원을 돌파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추산한 값이다. 가계·기업·정부 부채를 더한 부채 규모가 6000조원을 돌파한 건 사상 처음이다.
날아온 '6000조 빚' 청구서…곳간마저 비어간다(上) [2024 부채리포트②]
더 중요한 숫자가 있다. 한국은 202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이 전년보다 4.9%포인트 높아졌다.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이 늘어난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이 유일했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각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와중에 한국만 역행했다. 경제 규모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부채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제 비교 땐 GDP 대비 부채비율을 주로 따진다. 31개 OECD 회원국의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이 기간 243.5%에서 229.4%로 평균 14%포인트 축소됐다. 이 와중에 한국만 5%포인트 가까이 빚이 불어난 것이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2분기까지 가계부채가 2218조3851억원, 기업부채가 2703조3842억원, 정부부채는 1035조2149억원으로 나타났다.

액수나 비율로만 보면 한국 ‘정부’의 건전성은 높은 편이다. 지난해 한국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8.9%였다. 주요국 가운데 22위로 비교적 안전한 편에 속한다. 가계부채나 기업부채 대비 안심할 수 있는 수치다.

간혹 국내 미디어에서는 정부부채가 2000조원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채무와 부채를 구분 짓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국가 재무제표상 총부채는 2021년에 이미 2000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채무가 아닌 공무원, 군인, 사학 등 연금충당부채(국민연금 제외)가 포함돼 있다. 정부의 직접채무가 아니라 정부가 ‘미래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보증채무까지 들어 있다는 뜻이다. 국제기관에서 집계하는 국가별 부채비율은 모두 보증채무를 제외한 일반정부 부채만 집계한다.

결국 지금 찍힌 숫자로만 보면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속도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1년 전인 지난해 3분기(44.2%)에 비해 4.7%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홍콩, 아르헨티나,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Q. 곳간은 비어가는데, 채우진 않는다고?
날아온 '6000조 빚' 청구서…곳간마저 비어간다(上) [2024 부채리포트②]
정부부채 비율이 안정적 수준이라고 하지만 불안한 요인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세수가 줄었다. 지출과 빚은 늘어나는데, 정부의 수입이 줄어든 것이다. 결국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지난해 1~11월 6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실제 지난해 11월까지 기금수입은 늘었지만 국세수입이 쪼그라들었다. 부동산 거래 위축 등으로 소득세가 13조7000억원 줄고, 기업 실적 부진과 법인세 인하로 법인세가 23조4000억원 감소했다.

정부는 세수 확충이 절실한 상황에서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완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약 한 달 새 총 20여 건의 감세와 현금성 지원,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세금이 줄면 정부는 채권을 더 발행할 수밖에 없다. 빚을 메우기 위해 빚을 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전 세계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표심을 잡으려는 정책이 남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을 비롯해 올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크고 작은 선거가 열린다. 각국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공약을 남발할 수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감세 카드를 꺼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올 하반기 예상되는 총선을 앞두고 ‘40% 상속세 폐지’ 검토 등 감세 추진 방침을 밝혔다. 감세로 인한 부채 급증이라는 청구서를 전 세계가 동시에 받게 될 수 있는 것이다. Q. 가계부채 1위가 의미하는 것
날아온 '6000조 빚' 청구서…곳간마저 비어간다(上) [2024 부채리포트②]
한국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국민소득보다 가계 빚이 더 많은 나라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었다는 말이다. IIF에 따르면 지난해 이 숫자가 100을 넘긴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가계부채는 가계가 진 빚이다. 정확히는 ‘가계신용’이라고 한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가계대출과 대금을 납부하지 않은 외상거래, 즉 신용카드로 거래한 판매신용을 포함한 말이다.

2023년 9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875조6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14조3000억원이 늘었다. ‘역대 최대’ 기록을 1분기 만에 또 갈아치웠다. 이미 늑대의 시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부동산 매매 관련 가계의 자금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가계대출의 약 59.64%는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다. 가계대출의 절반이상을 주담대가 차지하고 있다. 주담대는 17조3000억원 급증하며 직전 분기에 이어 최대 잔액 기록을 또 경신했다. 증가폭도 2분기(14조1000억원)보다 더 컸다.

판매신용은 가계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로 큰 편은 아니다. 문제는 고금리에 움츠러들었던 소비심리가 여행과 여가를 중심으로 되살아나면서 신용카드 이용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3분기 만에 오름세다. 서정석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주택 경기 회복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판매신용도 세 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되면서 전체 가계신용 규모가 커졌다”고 했다.

가계부채·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나 월세의 보증금도 나중에 세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이므로, 사실상 가계부채다. 하지만 셈하지 않는다. 이것까지 가계부채로 포함한다면 가계부채의 규모는 훨씬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개인기업이 진 부채도 가계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1인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진 빚이다. 가계부채에 자영업 등 개인기업의 부채까지 더한 개념을 개인부문 금융부채라고 한다. 자영업자대출을 포함한 실질 가계부채(개인사업자대출+가계부채)는 2019년 2049조원에서 2023년 3분기 2573조원으로 늘어났다.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 부채만 무려 524조원에 달한다. 위험한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윤소희·임나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