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부동산도 실사용 만족도 높아야 거래돼
주차공간, 주택부터 근린생활·업무용 시세에도 반영

대형 업무, 상업시설과 고급 오피스텔이 자리한 강남역 일대 모습. 사진=서울시
대형 업무, 상업시설과 고급 오피스텔이 자리한 강남역 일대 모습. 사진=서울시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매수자 우위 시장이 본격화하고 있다. ‘불패’라던 강남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거래가 좀처럼 성사되지 않으면서 높은 호가를 부르며 버텼던 매도인들도 가격을 크게 조정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매수인이 줄을 서 기다리던 시절은 돌아오기 힘든 분위기다.
선택지가 많아진 매수인들은 꼼꼼히 따져가며 매물을 고르고 있다. 좋은 입지, 비교적 신축에 활용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땅값이 높은 도심에선 주차 가능 여부가 점차 거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슷한 입지일 때 ‘사용자 만족도’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주차 대수가 높은 곳을 매수인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세대당 주차 대수가 초고가 주택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면 불황기를 맞아 근린생활시설 및 오피스 매매 시장에서도 주차장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불경기에 집 사는 ‘하이엔드’ 입주민, 주차 2대도 부족해
'주차 몇대?' 부동산 시장의 떠오르는 가치 평가 기준[비즈니스 포커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아파트 실거래가 상위 20위권에 속한 거래 중 75%인 15건은 하반기에 거래됐다. 지난해 주택시장이 상고하저(上高下低) 흐름을 보인 것과는 딴판이다.

2023년 상반기에는 2022년 하반기 금리인상에 따른 가격 조정과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 시행 여파로 아파트 거래량이 살아나며 수도권 주택시장이 ‘반짝’ 반등했다. 그 후 불경기가 지속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시장은 다시 잠잠해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월 1413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6월 3850건까지 급증했고, 9월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상품판매 중단과 함께 가파르게 감소했다.

반대로 100억원 전후의 초고가 주택 거래는 상저하고 현상을 보인 셈이다. 워낙 가격대가 높은 데다 주택담보대출 또한 어려워 투자가 아닌 실거주 목적의 매수사례가 대부분이다. 아크로리버파크 110억원(전용면적 234㎡), 한남더힐 95억원(전용면적 235㎡), 갤러리아포레 88억원(전용면적 217㎡)을 비롯한 여러 건이 가을 이사철인 10월에서 11월 사이 거래됐다.

특히 고급 주상복합이나 일명 ‘하이엔드 주거상품’은 주차 대수와 면적에서 차별화된다. 재건축, 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조성되는 속칭 ‘일반 아파트’ 중 고급 단지 기준은 2대 내외에서 형성돼 있다. 이에 비해 최근 몇 년 사이 유명인이 입주하며 화제의 중심이 된 초고가 단지들은 세대당 5대 내외 주차 대수가 일반화하고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사실 초고가 주택은 워낙 사례 자체가 적어 실거래를 통해 통계적 의미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일반 아파트 시장 흐름과는 따로 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보유 차량이 많은 부유층 대상 주택은 건축비가 더 들더라도 지하주차장 면적을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아이유가 분양을 받아 화제가 된 ‘에테르노 청담’이 세대당 5대를 주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인근 ‘위너 청담’ 펜트하우스는 주차 대수가 총 8대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주차공간 넓어야 제값 받아
'주차 몇대?' 부동산 시장의 떠오르는 가치 평가 기준[비즈니스 포커스]
반면 주차가 불편한 상품은 시장에서 점차 외면받는 추세다.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 입주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이 바로 기계식 주차”라며 “아무리 고급 오피스텔이라고 홍보를 해도 자주식 주차 공간이 없으면 전기차나 슈퍼카를 주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현상은 상업·업무시설 거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차량을 이용해야 접근 가능한 신도시 초입에 위치한 건물의 경우에나 주차 공간의 쾌적성이 시세에 직접 반영되고는 했다. 임차업종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통상 병원이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주차 수요가 많다.

그런데 차량 이용이 많은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주차공간이 시세에 반영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논현동 골목에 위치한 한 신축 오피스 빌딩은 14대 자주식 주차가 가능하도록 지어져 부지 면적 3.3㎡(평)당 1억2500만원에 거래됐다. 건물주는 부동산 경기가 정점이던 2021년 10월 평당 약 9100만원에 사들여 오히려 더 비싸게 판 셈이다. 해당 건물은 토지 단차를 이용해 후면으로 지상에 노출된 지하 1층과 전면 지상 1층 공간 대부분을 주차장으로 쓰도록 설계됐다.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업무용 건물에 주차공간이 법정설계보다 훨씬 많이 나오도록 설계해 매물로 나오자마자 3일 만에 팔렸다”고 말했다.

강남 오피스 시장은 임차수요가 꾸준해 낮은 공실률을 유지하고 있다. 컬리어스코리아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꼬마빌딩을 포함한 프라임 등급 이하(subprime) 오피스 공실률은 1.1%에 그쳤다. 컬리어스코리아는 지난 1월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건축비 상승에 따른 공급부족 여파로 강남 업무지구(GBD) 오피스 임대료는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금리 영향으로 매매 시장은 전보다 눈에 띄게 침체한 상태다. 장현주 컬리어스코리아 이사는 “대형 오피스 빌딩의 주 매수인인 기관투자가들이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린생활시설을 거래할 때도 주차시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불황에 주차장이 있어야 그나마 손님을 끌기가 쉽기 때문이다. 최근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에서 거래된 건물 대부분이 규모에 비해 자주식 주차 대수가 많았다. 밸류맵에 따르면 신사동 소재 한 소형 근생 건물이 지난해 8월 거래됐다. 5층 규모인 이 건물은 중심 상권인 가로수길은 물론 신사역과도 거리가 있지만 부지 면적 기준 평당 1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2022년 준공한 신축인 데다 자주식 주차가 5대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부지 면적은 채 100평이 안 된다.

신사동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신사동 상권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방문객도 꽤 있는 편”이라며 “요즘 들어 경기가 급격히 나빠져 임차수요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주차 편의 등 건물 컨디션이 거래 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화하는 주차난 또한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음식점 중 주차가 가능한 곳은 44.7%에 불과했다. 서울에선 30.6%로 더 낮았다. 2023년 통계청이 ‘향후 늘려야 할 공공시설’에 대해 설문한 결과 응답자 14.4%는 ‘공영주차시설’을 꼽았다. 보건의료시설(27.9%), 공원·녹지(17.1%), 사회복지시설(14.8%)에 이은 4위였다. 생활체육시설(6.7%), 문화예술시설(5.2%)보다 응답률이 배 이상 많았다.

정부는 어린이보호구역 등 주정차 금지구역에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사용 가능한 주차장 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매년 주택가 건축물이나 학교 주차장을 인근 주민에게 개방하면 시설 개선비 등을 지원하는 ‘부설주차장 개방’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개방실적은 2021년 2091면, 2022년 2080면, 2023년 1832면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주택, 근생시설 부지 내 자투리땅을 주차장으로 조성하는 ‘그린파킹’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차량 보유 비용이 크고 주차 역시 유료화된 주변국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에선 1960년대부터 시행된 차고지 증명제로 인해 차량 구입 시 주차장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주차문화가 유료화하면서 ‘파크24’, ‘미쓰이부동산’ 같은 주차장 운영기업의 연간 매출은 ‘조 단위’를 기록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2022년 파크24 매출은 2317억 엔(약 2조원)에 달한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 홍콩 부촌에서 주차장 1면이 11억원에 팔리기도 했다”며 “이미 서울 번화가에 주차장 1면을 조성하려면 3억원가량이 드는 만큼 주차공간이 있는 부동산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