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금융과 기아의 경우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메리츠금융그룹은 미꾸라지다. 업계에선 그렇다. 돈 되는 것만 콕 찍어 장사한다. 그런데도 각종 사고에서는 한발짝 비껴나 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엄청나게 취급하고도 95% 이상을 선순위 담보로 잡아 당장 큰 손실을 보지 않고 있다. 경쟁 회사로선 얄밉기 짝이 없다. 투자자에겐 다르다. 메기다. 기존 업계와는 색다른 영업방식을 구사한다. 증권업계와 보험업계의 판 자체를 바꾸고 있다.

증시가 바닥을 헤매고 있어도 메리츠금융 주가는 상승일로다. 2022년만 해도 1만원대에 맴돌던 주가가 2월 1일엔 7만원까지 올라섰다. 사상 최고다. 2023년 말(5만9100원)보다 18%, 통합 메리츠금융이 상장된 2023년 4월 25일(4만5600원)보다는 53% 올랐다. 시가총액은 14조원을 넘었다.

메리츠금융 주가가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실적이 좋아서다. 여기에 최근 화두로 등장한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이 한몫했다. 메리츠금융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지분 100%를 확보했다. 두 회사를 상장폐지하고 통합 메리츠금융을 상장했다. ‘쪼개기 상장’을 남발하는 다른 기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뿐만 아니다. 2022년엔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최소 3년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에게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약속도 지키고 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5602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전량 소각했다. 2023년 3월과 9월엔 각각 4000억원과 2400억원의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역시 전량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업들과는 다르다.

메리츠금융 못지않게 최근 주목받는 게 기아다. 기아 주가도 2월1일 10만6300원까지올랐다. 시가총액도 42조원을 넘어섰다. 역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호재로 작용했다. 기아는 올해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이 중 50%를 상반기 내 소각하고 3분기까지 가이던스를 달성하면 50%를 추가 소각하기로 했다. 100% 소각 시 주주 환원율(순이익을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쓴 비율)은 30%에 달한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메리츠금융과 기아처럼 할 수는 없다. 강요할 수도 없다.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으면 쉽게 움직일 수 없다. 투자재원까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사용한다면 미래 기업가치를 갉아먹을 수 있어서다. 적대적 M&A(인수합병)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경영권 지분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사주를 소각하면 오히려 경영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정부가 자사주제도를 개편하면서도 자사주 의무소각 규정을 배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른바 ‘징벌적 상속세’도 걸림돌이다. 최대주주의 경우 상속세율이 60%에 이른다. 주가가 오를 경우 상속세도 많아진다. 자칫하면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힘들게 이룬 기업인들에게 상속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세율을 조정하든지, 일본처럼 특례규정을 도입해 상속세 및 증여세를 확정한 뒤 원하는 때에 납부토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메리츠금융이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조정호 회장이 상속을 포기한 영향이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논의가 깊어질수록 메리츠금융과 기아의 움직임은 단연 돋보인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