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 특유의 소수 지배주주가 기업 경영을 좌우하는 ‘오너 일가’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일본식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효과를 내지 못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금융위원회는 유관기관과 함께 여의도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1차 세미나’를 열고 초미의 관심사인 밸류업 프로그램의 윤곽을 공개했다.
오는 7월부터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세워 공시하도록 하고, 기업가치 우수 기업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관련 지수 및 상장지수펀드(ETF)를 연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큰 손’ 연기금 등의 투자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행동 지침)도 개정한다.
‘기업 밸류업’은 금융위가 연초 도입 방침을 밝힌 뒤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들이 급등하는 등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자본시장 선진화를 향한 첫 걸음이 될 것이란 입장이다.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단어가 없어질 때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상반기 이른 시일 내에 추가 세미나 등을 통해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세제지원 방안은 준비되는 것부터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에 의문을 드러낸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안이 공개되기 전인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의 조너선 파인즈 일본 제외 아시아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홈페이지에 “한국에서는 가족이 지배하는 상장기업이 훨씬 더 많고 지배권을 가진 이들은 현재의 규제 환경에서 대단히 많은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며 “단순히 한국의 지배 패밀리들에게 소액주주를 '착하게' 대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설득이 불가능한(한국 기업들)?(The unpersuadables?)’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한국은 지배주주가 합법적으로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데 어떻게 이들 패밀리를 설득할 수 있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정책 대응은 실망스러웠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시행된 정부 정책은 마치 지배주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한 외국인 투자자 등록 요건 완화, 배당기준일 변경, 온라인 주총 도입 등에 대해서도 “이런 것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을 다루지 못했으며 처음부터 효과가 없을 것은 너무나 명백했다”고 비판했다.
파인즈는 “아직도 (한국의) 금융당국은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악용하는 권한을 줄이지 않고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확실하고 효과적인 거버넌스 개혁은 간단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한국 자본시장 법과 제도를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조건으로 희석 효과가 있는 주식발행·교환 시 별도의 소액주주 승인 의무화, 기업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특수관계자 거래에 있어 소액주주 별도 승인 요구 등을 제시했다.
파인즈는 지난해 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한국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에서 찾고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그만하면 됐다(Enough is enough)’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주목받은 인물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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