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부자가 사모펀드 운용사 오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에서 사모펀드가 가진 영향력과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사모펀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실생활과 가장 밀접해 있는 유통기업들만 보더라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사모펀드들이 운영 중인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토종 사모펀드 역사장을 보는 대형마트(홈플러스)부터 레스토랑(아웃백·버거킹 등), 커피숍(투썸플레이스·공차 등)이 알고보면 모두 사모펀드 소유다. 심지어는 이런 점포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신용카드(롯데카드)도 마찬가지로 사모펀드가 경영하고 있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팔아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모펀드는 자신들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사모펀드를 자본시장을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큰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막강한 파워와 영향력을 가졌지만 한국에서 토종 사모펀드가 국내 자본시장에 뿌리내린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90년부터 사모펀드가 활약했던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은 훨씬 늦은 2005년이 돼서야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에 등장하며 뿌리를 내렸다.
2000년대 들어서며 평가절하된 국내 기업들을 해외 사모펀드들이 싼 가격에 인수한 뒤 비싼 가격에 되파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 배경이었다.
이때마다 ‘먹튀’, ‘국부 유출’ 등의 논란이 일자 결국 정부가 내놓은 방침이 ‘토종 사모펀드’ 육성이었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펀드’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부터 토종 사모펀드가 매년 우후죽순 생겨나며 자본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 투자업계(IB) 관계자는 “이런 태생 때문인지 토종 사모펀드는 돈 되는 것이면 물불 가리지 않는 해외 사모펀드와 달리 바이아웃 전략에 주력하며 성장해왔다”고 말했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알짜 매물을 놓고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빠른 성장을 이어왔다. 냉혈한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해외 사모펀드와는 결이 달랐다. ‘한국형 사모펀드’의 등장이다.
특히 이런 사모펀드들은 한국 기업들의 성장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모펀드의 손을 거쳐 실적을 더욱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기업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웨이를 꼽을 수 있다. 웅진그룹이 경영악화로 인해 2012년 MBK파트너스에 매각한 코웨이는 사모펀드 체제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실적 상승과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그 결과 몸값도 계속 높아졌다. 결국 MBK는 코웨이를 인수한 지 약 6년 만에 1조원가량의 차익을 거두며 되팔았다.
골판지 업계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태림포장도 빼놓을 수 없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이 회사를 2015년 3500억원에 인수해 2019년 7300억원에 팔았다. 비핵심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인수 당시 20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을 350억원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밖에 오렌지라이프(MBK), 웅진식품(한앤컴퍼니), 공차코리아(UCK파트너스) 등도 사모펀드들의 성공적인 엑시트로 회자되는 거래들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수많은 기업들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수익성만을 강조하는 경영방식, 대규모 구조조정 등이 도마에 오르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이나 특정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흥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사모펀드들도 투자에 실패한 아픈 기억도 많다. 최초의 토종 사모펀드인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인수로 수익은커녕 큰 손실을 입으며 업계 최초로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부도를 낸 전력이 있다. 제화전문기업 에스콰이아도 H&Q아시아퍼시픽에 인수됐지만 계속해서 실적이 고꾸라지며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최악의 결말을 맞았다.
업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MBK도 무려 7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해 약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지금처럼 어려워질 것을 예상하지 못해 빚어진 투자 실패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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