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람 독립기념관 전시해설사

김보람 독립기념관 전시해설사.
김보람 독립기념관 전시해설사.
1919년 3월 1일 일본의 부당한 침략에 항거해 전국으로 퍼진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끈질기고 강한 독립투쟁정신을 보여준 역사적인 날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각지 그리고 중국, 만주, 미국 등 해외에서도 독립을 향한 바람이 일었던 그날의 역사를 우리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올해로 105주년을 맞은 3·1절을 기념해 역사적 그날을 오롯이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는 김보람 독립기념관 전시해설가를 만났다.


독립기념관을 들어설 때 굉장히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 오시는 분들은 큰 규모에 다들 놀라시죠.(웃음) 독립기념관은 1987년 국민들의 성금을 바탕으로 건립된 곳으로 3,936,998m2 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인데요. 독립운동의 역사를 전시, 연구, 교육하고 독립운동 정신을 보존·계승 그리고 가치를 전달하는 이곳에는 대략 900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기도 합니다.”

전체 규모만큼 전시관의 규모도 상당하군요.
“총 6개의 전시관으로 나눠져 있어요. 1전시관은 고대사부터 조선 후기까지를 다루고, 2~3관은 일제 침략사를 시작으로 식민지배, 3·1운동으로 이어집니다. 5관은 독립전쟁, 6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전시로 이뤄져 있습니다. 4관은 감성관으로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관람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어요.”

각 전시관별로 담당하는 해설사가 나눠져 있나요.
“해설은 2,3,5,6관 네 개 관만 진행하는데, 모든 해설사가 다 맡고 있어요. 관람객의 신청마다 해설시간은 달라져요. 한 전시관마다 집중적으로 40분 간 해설하는 경우도 있고, 전체 관을 묶어 1시간 정도 해설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눠져 있어요. 삼일절이나 광복절이 다가올 경우 그 날에 맞게 특별해설을 준비하기도 하죠.”

보통 삼일절의 경우엔 어떤 주제로 해설을 준비하시나요.
“아무래도 삼일절의 경우 가장 상징적인 태극기를 주제로 많이 하는 편이에요.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였는데, 당시에도 100주년 기념 해설을 준비했죠.”

“독립기념관 내 7명의 전시해설사들이 해설 시나리오 구성부터 각색까지 맡아···어린이, 학생, 군인, 성인 등 연령대별로 각기 해설 수준 달라”

해설내용은 해설사들이 직접 준비하는 건가요.
“그렇죠. 7명의 해설사들이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준비해요. 파트를 담당한 해설사가 대략의 내용을 구성하면 각자 자신의 스타일대로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방식이죠. 스토리의 내용은 정해져 있지만 어떻게 전개를 해나갈지는 해설사들의 몫인 셈이죠.”

관람객들의 연령대별로 해설버전이 나뉠 수 있겠군요.
“맞아요. 어린이와 성인은 역사를 바라보는 수준이 달라 버전도 바꾸고 동선도 달리 가야해요.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거나 좀 더 친숙한 인물 또는 사건을 부각시켜 해설을 해야 집중을 잘 할 수 있거든요.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 전시가 어떤 기획이고, 의도인지를 해설에 드러나게 해야 하는 건 해설사의 역량이에요. 최근에는 역사 연구에 대한 접근도 굉장히 다양해져서 단순히 매뉴얼을 외우는 것보다 대상에 따라 적절히 제공해주는 능력이 해설사의 필수덕목으로 꼽히고 있어요.”
365일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그녀 [강홍민의 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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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을 비롯해 각 전시·박물관 등의 해설사들의 역할은 비슷한가요.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고용방식이에요. 공무직으로 채용하는 기관은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전국에 손꼽히죠. 보통 자원봉사자를 선발해 운영하거든요. 저희는 해설 프로그램 개발을 비롯해 해설예약관리, 고객지원센터 내에서 고객응대 등의 서비스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요.”

하루 평균 몇 회 정도 해설을 하나요.
“보통 오전·오후로 나눠서 2~3회 정도 하는데, 성수기 땐 4회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전시관을 둘러보니 외국인 관람객들도 보이더군요. 외국인들도 종종 방문을 하나요.
“코로나19 전에는 하루에 한 번 꼴로 외국인 대상 해설을 하기도 했어요. 펜데믹 이후 최근 들어 일본, 중국 관광객들의 단체관람 예약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예요. 최근에는 베트남, 태국 등에서도 많이 오는 편이에요.”

일본 관람객들도 많이 오는 편인가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정말 꾸준히 방문했죠. 의외로 일본인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아요. 수학여행으로, 역사 소모임을 하는 일본인들이 꾸준히 찾고 있습니다.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사와 학생들이 이곳 천안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일본인 관람객들 대다수가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고 있어···‘죄책감이 든다’는 日관람객이 있는 반면 불편해하는 부류도 있어”

독립운동의 해설을 들은 일본인들의 반응도 궁금하네요.
“일본인 관람객들을 대상을 해설을 할 땐 꼭 처음에 하는 말이 있어요. “이곳은 일본인들의 악행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확인하고 공유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제가 설명하는 내용들이 일본인들을 공격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잖아요. 막상 해설을 들은 일본인 대다수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 많이들 놀라는 분위기죠.”

기억에 남는 관람객도 있을 것 같아요.
“해설을 듣고 관람후기를 작성한 일본인 관람객 중에선 ‘너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등의 후기가 기억에 남기도 해요. 예전에 다른 해설사분께 들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의 해설을 들은 한 일본 학생이 너무 충격적인 내용에 기절을 한 적도 있었어요.”

전시 내용을 두고 반감을 가지는 일본인은 없었나요.
“꽤 오래전 이야기인데, 한국으로 골프여행을 온 일본여행객을 여행사 가이드가 대동해 오게 됐죠. 평소대로 일본어로 해설을 시작했는데, 제가 하는 해설의 내용이 불쾌하셨나 봐요. 처음엔 제 일본어 발음을 지적하다가 나중에는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하지 않았으면 러시아가 지배를 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더군요. 당연히 논리적으로 답을 할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해설이 끝나지도 않고 기념관의 매뉴얼도 아니었죠. 그래서 시간이 되시면 끝나고 안내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해설을 마친 적이 있었어요. 많진 않지만 간혹 그런 상황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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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나요.
“한 번도 없었어요.(웃음) 생각해보면 당시 기분이 나빴다는 걸 표현하셨던 것 같아요. 해설사를 처음 할 당시 무례한 관람객들을 마주하면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컸었는데, 지금은 ‘이 해설을 잘 마무리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되뇌이면서 극복해내죠.”

예전에 비해 관람문화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예전에는 단체 관람객들이 많아 한 번 해설을 하면 30~40명의 관람객은 기본이었어요. 그래서 집중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였어요. 코로나19 이후부터 소그룹 관람 신청이 늘면서 관람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일본 유학시절,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결심···전시해설사, 한국사 전공보다 역사에 대한 애정과 관심 많아야 가능한 직업”


독립기념관에서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로 15년차예요. 일본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역사와 관련이 있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죠.”

어떤 계기였나요.
“제가 유학했던 지역이 일본의 돗토리현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는데, 그곳이 일본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시마네현 바로 옆 동네였어요. 독도와 관련돼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네였죠. 유독 토론수업이 많았는데, 어느 날 토론의 주제가 ‘독도의 날 제정’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나름 역사를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독도가 왜 한국의 영토인지 이 수업시간에 얘길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발표가 제대로 되질 않았던 거예요.”

발표가 잘 안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때 깨달았어요. 독도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아는 것과 잘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요. 당시 한국유학생은 저 혼자라 제가 못한 설명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때의 기억이 계속 떠올라 힘들었어요.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계속할거면 한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관련 직업을 찾아보다가 독립기념관의 채용공고를 보게 된 거죠.(웃음)”

어떻게 보면 타지, 그것도 일본에서 애국심이 끌어올라 전시해설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거군요.
“물론 애국심도 있었겠죠.(웃음) 그때 당시 수업의 분위기는 서로 논쟁을 한다기보다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그조차 설명을 제대로 못한 게 분했던 것 같아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역사에 관심이 없던 관람객들이 해설을 다 듣곤 역사가 이렇게나 재미있는 건줄 몰랐다고 하실 때가 있어요. 그리고 간혹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오셔서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되살려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 ‘해설사를 선택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독립기념관 해설사를 준비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전공이 중요한가요.
“저희는 공공기관이다 보니 블라인드 채용으로 되는데요. 연령이나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한국사를 전공하거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응시자에겐 가산점이 주어지긴 하지만 필수는 아닙니다. 반면, 외국어는 필수예요. 영어, 일본어, 중국어 3개국 가능자가 대상이고, 채용전형에서도 직무수행능력으로 외국어시험을 치르고 있어요.”

필수 자격증은 있나요.
“해설사와 관련한 국가공인자격증은 별도로 없어요. 대신 문화재청이나 국공립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도슨트 양성프로그램을 통해 해설사로서의 기본소양 등을 교육받으면 도움이 됩니다.”

입사 이후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보통 해설사를 비롯해 독립기념관 입사자들은 한 달 간 교육을 받습니다. 독립운동에 대한 강의부터 관내 시설 등에 관한 교육을 받게 되죠. 그리고 해설사들은 고객응대 업무도 해야 하기 때문에 CS교육도 별도로 받습니다. 해설을 위한 교육은 선배들에게 받아요. 선배들을 따라 다니면서 시나리오는 어떻게 만들고, 실제 해설은 어떻게 하는지 도제식으로 교육을 받는 방식이죠.”

해설사로서 갖춰야할 덕목은 뭐가 있을까요.
“독립기념관 해설사는 기본적으로 한국사 그리고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도 늘 역사공부를 하는데, 하면 할수록 독립운동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깨달아요. 제가 느낀 이런 감정들을 관람객들에게 좀 더 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해설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해설사만의 직업병이 있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해설사들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요. 매일 목을 써야하는 직업이라 목 관리를 위해 작은 소리로 말해요. 저희 사무실에 가보면 다들 조용조용히 말하는 걸 느끼실 거에요.(웃음)”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를 안 지르나요.
“이 일을 15년 정도 하니까 큰소리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되게 답답해하는 단점은 있죠.(웃음)”

전시해설사라는 직업으로 비춰볼 때 향후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최근에 요구되는 문화 서비스 수준이 상당히 발전하고 있어요. 관람을 넘어 개인의 경험이 중요시 되고 관람객들이 박물관 등에서 갖는 관심 분야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요. 이러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해설서비스라 생각해요. 역사뿐만 아니라 미술, 생태, 자연환경, 과학 등의 분야에 해설영역이 커지는 만큼 직업적으로도 수요가 증가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365일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그녀 [강홍민의 굿잡]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