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글로벌 무역의 중추, 4대 해상무역이 흔들린다
홍해가 ‘화약고’가 됐다. 홍해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다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홍해를 지나가는 민간 선박들이 공격을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물류대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 외에도 글로벌 주요 해상 무역 요충지들에서 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안정적인 바닷길’은 지난 40여 년간 세계화를 주도해 온 주요 동력이었다. 현재 교역의 80%가 이 ‘바닷길’을 통해 이뤄진다. 지정학적 갈등과 환경 위험으로 바닷길이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주요 해상무역 통로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은 1878년 무렵이다. 당시 해양 물류길의 패권을 지니고 있었던 영국이 공해(해양) 자유의 원칙을 채택했다.

코로나19 당시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가 불거지긴 했지만 지금처럼 글로벌 해상무역 전체가 흔들린 경우는 1,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없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어느 나라의 선박이든 공해를 항해할 수 있다’는 오랜 글로벌 무역의 기본 규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으로 흔들리는 바닷길

지난 2월 18일 영국 벌크화물선 루비마르호가 홍해를 지나가던 중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았다. 선원들은 선박을 버리고 탈출했다.

홍해 지역에서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부터다. 지난해 10월 초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전쟁이 시작된 뒤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민간 선박들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는 전 세계 해상무역의 12%를 차지한다. 유럽 국가들이 중동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중요한 경로인 데다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거리 바닷길이다. 물동량이 많아짐에 따라 수에즈운하를 지나가는 선박들의 수가 늘었다. 운하의 좁은 수로 때문에 사고 우려가 높아지자 2015년 운하를 확장했다.

당시 운하 개통식에서 이집트의 엘시시 대통령이 “전 세계인을 위한 선물”이라고 자랑했다. 이후 2019년 무렵에만 해도 약 1만9000척의 선박과 10억 톤의 화물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했을 정도로 물동량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수에즈운하는 ‘개점 휴업’ 상태다. 초반 후티 반군은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을 주로 겨냥했다. 이후 홍해와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민간 선박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최근에는 미국 함대를 직접 공격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더 이상 수에즈운하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게 된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선택을 하면서 수에즈운하를 지나가는 선박이 크게 줄었다. 실제 세계 최대 해운사인 스위스 MSC와 덴마크 머스크, 독일 하팍로이 등이 수에즈운하를 운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에즈운하청(SCA)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선박 통행량이 30%가량 줄었으며 용적톤수 또한 41%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운송비용이 크게 늘었다.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할 경우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데 필요한 운항 일수 또한 7~9일 정도 더 소요된다. 한 달 동안 운송비가 70% 넘게 급등했다. 지난 2월 16일 발표된 관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2월 기준 유럽연합(EU)으로 향하는 해상 수출 컨테이너의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당 운송 평균 비용은 434만5000원으로, 전월 대비 72% 상승했다. 2019년 이후 역대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수에즈운하 위기는 유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류 정보업체 케이플러는 지난 2월 기준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유조선 숫자가 홍해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23%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대형 해운사와 메이저 석유업체들이 수에즈운하를 포기하고 있다. 덴마크의 세계 최대 유조선사 가운데 한 곳인 머스크탱커와 영국계 석유업체인 BP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수에즈운하의 위기로 인한 유가 급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무역의 중추, 4대 해상무역이 흔들린다
가뭄으로 위기에 처한 파나마운하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운하는 전 세계 컨테이너 무역의 5%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 동부 해안에서 동아시아로 향하는 무역의 46%를 차지할 만큼 미국발 해상 물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미국이 파나마운하를 완성한 건 1914년이다. 이 운하가 건설되기 전만 해도 선박들은 멀리 남미 끝에 있는 드레이크 해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 운하를 건설함으로써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바닷길을 확보할 수 있었고 미국 내 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빠른 경제성장의 발판을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파나마운하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충분한 강우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파나마운하의 중간에는 160m가 넘는 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선박들이 이 운하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은 꽤 ‘혁신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파나마운하를 해수면보다 최대 26m 높이로 조정해 ‘배가 산으로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바다에 있는 배가 독에 들어오면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로 올려 보내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인공호수인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독으로 들어가 물을 빼면 배가 내려가는 식이다.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배가 계단식으로 대륙을 관통하는 갑문식 시스템인데, 물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물의 양이 필요한 것이다. 선박 한 대가 운하를 통과할 때마다 약 5200만 갤런의 담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봄 엘니뇨가 중남미를 덮쳤다.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면서 파나마운하 또한 말라붙기 시작했다. 특히 파나마운하를 위해 만든 인공호수인 가툰 호수가 역대 최저 수위를 기록하면서 파나마운하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파나마의 우기는 보통 4월 말부터 11월까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강수량은 예년 평균보다 41%가량 적었다. 올해 우기까지 낮은 강수량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파나마운하청은 운하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통과 선박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루 38~40척 운하를 통과하던 배들이 현재는 24척 수준에 그치고 있다. 파나마운하청은 우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는 통항 제한이 이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5월 우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상황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가 ‘안전한 바닷길’을 위협하는 최대의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파나마운하 통행 제한으로 글로벌 해운사들은 파나마운하 대신 수에즈운하, 칠레의 마젤란 해협, 혹은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봉 우회로로 변경해 운항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에즈 운하 또한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지면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비교해 칠레의 마젤란해협과 아프리카의 희망봉은 훨씬 더 안정적인 바닷길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여정이 훨씬 길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물류 흐름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은 파나마운하의 대안으로 지협 횡단 철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새로운 육로의 개발이 파나마운하의 대안 역할을 하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미·중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른 믈라카해협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잇는 믈라카해협은 동아시아에서 중동, 유럽을 잇는 최단 해상 항로로 세계 3대 원유 수송로 중 하나다. 전 세계 해상무역의 30%를 차지하는 전통적인 해상 요충지다. 연간 평균 10만 척의 선박이 믈라카를 운항한다.

매년 중국 무역의 3분의 2가 믈라카해협을 통과하며 중국 에너지 수입량의 4분의 3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믈라카해협이 ‘경제적 생명선’인 셈이다. 특히 믈라카해협의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도 원유 수송의 9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그 중요성이 높다.

이곳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해적이다. 사실 믈라카해협에서 해적의 역사는 오래됐다. 하지만 한동안 소탕이 되면서 보이지 않던 해적이 최근 들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제기구인 아시아해적퇴치협정(ReCAAP)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에서 발생한 해적 건수는 55건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56%가량 증가했다.

믈라카해협은 수마트라와 말레이반도 사이의 약 800km 길이의 바다로, 가장 좁은 곳의 폭은 38km에 불과할 정도다. 물류가 집중되고 길이가 긴 데다 물살 또한 빠르다. 해적들이 창궐하기 쉬운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믈라카해협에 그 무엇보다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지정학적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믈라카해협은 중국, 인도,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 경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과 대만의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믈라카해협을 봉쇄하는 전략을 고려 중이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입 통로’를 끊어놓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우 일본, 한국 그리고 인도까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은 미 해군이 암묵적으로 믈라카해협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믈라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시작한 것 또한 이와 같은 믈라카해협으로 인한 위협을 완화하기 위한 이유가 컸다.

현재 태국은 믈라카해협의 대안으로 운하 또는 육교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육상에 기반을 둔 이와 같은 대안들은 비용과 편의성 측면에서 해상 통로를 따라가기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걸프만 석유의 대동맥 호르무즈해협

전 세계 석유 교역량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해협은 ‘걸프만 석유의 대동맥’으로 불린다. 페르시아만(걸프만)에서 인도양으로 나오는 출구 역할을 한다. 북쪽으로는 이란, 남쪽으로는 UAE와 오만 사이에 위치해 있는 해협이다.

가장 좁은 구간의 폭이 50km에 불과한 데다 빙하기 때 수심은 더 얕았다. 이 때문에 수만 년 전 아프리카의 현생 인류가 이곳을 거쳐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갔을 만큼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이동하는 데 중요한 길목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도 에너지와 상품 운송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상 통로다. 한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믈라카해협과 함께 ‘양대 황금 해상 통로’ 중 하나다.

호르무즈해협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특히 이란이 이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경우 그 위험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실제 최근 들어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항해하는 미국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선박 운항 위기가 발생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의 반관영 통신인 타스님은 지난 1월 미국 유조선이 이란 석유를 훔쳐 미국에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의 명령에 따라 ‘세인트 니컬러스호’를 나포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란이 관리 중인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최대의 석유 운송 요충지인 만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나서게 될 경우 그 영향력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난 2년간 이란이 미 해군이 순찰하는 지역에서 약 20척의 국제 선박을 공격하거나 나포하려고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좁은 해협인 호르무즈해협은 민간 선박뿐 아니라 군용 선박으로도 붐비는 곳이다. 다른 중동 지역의 미국과 이란 갈등이 각 지역 동맹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호르무즈해협에서의 해전 가능성은 이란과 미국을 직접 대치하게 만들 위험성이 높다.

최근 이 지역에서 늘어나고 있는 무력 충돌 상황에 전 세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에즈운하에 이어 호르무즈해협까지 폐쇄될 경우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물류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제유가에도 ‘최대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

세계 해상무역의 주요 통로들이 지정학적 갈등과 환경적 위기로 인해 위험에 처하면서 전 세계 해운산업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기존의 항로 대신 새로운 항로를 발굴하는 등 ‘배송 경로’와 ‘운송 수단’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북극항로가 특히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은 기후로 인해 활용이 어려웠던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시기가 늘어나면서 ‘바닷길’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선박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북극항로를 이용한다면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 대비 거리를 약 32%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북극항로 또한 새로운 해운 항로로는 적합하지 않은 요인이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북극항로 운항을 위해서는 특수선박이 필요한 데다 특정 계절에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단점이다. 만약 북극항로가 연중 내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얼음이 녹는다면 해안 항구의 대부분이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높다.

라스 랑게 국제해상보험연합 사무총장은 “글로벌 공급망이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그 취약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40여 년간 해상무역로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었고 또 글로벌 무역량의 상당 부분이 그에 의존하고 있던 상황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해협, 운하 등 화물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운항하던 해상 길목들이 막힌다면 지역적인 피해를 넘어 필수 상품의 수출 등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며 “세계 경제를 흔드는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