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뷰브, 넷플릭스 등 OTT 등장으로 TV의 '힘' 약해져
TV에 의존해 '황금알 낳는 거위'로 불렸던 IPTV, 홈쇼핑 등도 '미운 오리' 전락

[비즈니스 포커스]
스마트폰과 OTT의 등장으로 집에서 TV를 켜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마트폰과 OTT의 등장으로 집에서 TV를 켜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반기별로 유료방송 가입자 수를 집계해 공개한다. 과기부가 지난해 말 공개한 2023년 상반기 통계는 충격적이었다. 가입자 수 증가율이 ‘0%’대로 사상 최소 수준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과기부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3634만7495명이었다. 전년(3600만5812명) 대비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가입자 수가 역성장을 기록하는 날이 오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TV홈쇼핑 업계도 해를 거듭할수록 위기감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GS샵·CJ온스타일·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 등 홈쇼핑 4사는 지난해 나란히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들의 지난해 합계 영업이익은 2404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무려 40.4% 감소한 수치다. 홈쇼핑의 전성기라고 불렸던 2017년 CJ온스타일(당시 CJ오쇼핑)이 거둔 영업이익만 2245억원이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작년 홈쇼핑 업계의 수익성이 얼마나 악화했는지 엿볼 수 있다.

TV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관련 산업의 패러다임도 급변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TV는 더 이상 필수가전이라고 보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이를 대체하면서 ‘집에 TV가 없어도 된다’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TV의 영향력에 기대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유료방송과 홈쇼핑 시장은 순식간에 ‘미운 오리’ 신세로 전락한 배경이다. TV를 앞세워 글로벌 가전 시장을 제패했던 삼성전자, LG전자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캐시카우’였던 TV 부문이 ‘적자 사업’으로 전락하며 골치를 앓고 있다.

TV가 가졌던 힘이 크게 꺾였다는 사실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마다 발표하고 있는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를 보자. 방통위는 매년 조사 때마다 6000명이 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의 필수 매체’가 무엇인지를 물어왔다.
빠르게 저무는 TV 시대2013년까지는 TV가 늘 압도적인 1위였다. 그러나 2014년부터 결과가 달라진다. 스마트폰이 TV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이후 스마트폰은 매년 격차를 벌리며 TV의 시대가 빠르게 저물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필수 매체로 TV를 선택한 응답자는 27.2%에 불과했다. 반면 스마트폰은 70%였다. 또 많은 조사에서 사람들이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 TV는 없어도 괜찮아요"...흔들리는 TV 위상에 관련 산업도 위기
가전 섹터 담당인 이종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TV의 영향력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TV 시대가 저물 줄은 몰랐다”며 “예상치 못한 속도로 콘텐츠·미디어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한 것이 TV의 급격한 몰락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게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광폭 행보다. OTT 업체들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콘텐츠·미디어 산업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 놓았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는 이른바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서다. 이런 콘텐츠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끌며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는 빠르게 콘텐츠·미디어 시장의 포식자가 됐다.

특히 이들은 콘텐츠로 벌어들인 돈을 다시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해 빠르게 신작을 선보이는 구조를 만들며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OTT에 많은 이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TV 방송국 대신 OTT의 문을 두드려 콘텐츠를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쿠팡, CJ 등을 비롯해 수많은 OTT 사업자가 생겨나며 영화, 드라마, 최근에는 화제성 높은 예능까지 OTT가 섭렵하는 등 TV가 가졌던 영향력을 대거 흡수했다.

한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투자로 대부분의 OTT가 수익성 악화를 기록 중이지만 시청자들에게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TV가 아닌 OTT에 몰린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만큼은 성공했다”며 많은 이들이 더 이상 TV를 켜지 않는 이유를 진단했다.
OTT가 일으킨 나비효과
이런 흐름이 미친 파장은 결국 TV의 영향력에 기대 성장해온 산업들의 위기로 이어졌다. OTT가 몰고 온 나비효과인 셈이다.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한 산업은 단연 유료방송 사업자들이다.

특히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이 일제히 발을 뻗은 인터넷TV(IPTV) 시장은 더 이상 성장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를테면 국내 최대 규모의 IPTV 사업자인 KT의 현재(2024년 1월 기준) 가입자 수는 941만2000명이다. 25%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계속해서 이탈하는 고객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월(943만6000명)과 비교하면 가입자가 0.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PTV 사업 특성상 가입자 수 증가가 성장과 직결되는 만큼 내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마이너스까지는 아니지만 가입자 증가세가 사실상 정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PTV 외 유료방송사업자는 상황이 더 어렵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보면 위성방송을 송출하는 KT스카이라이프는 2.5%,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14개 업체는 전년 동기 대비 1.5% 가입자가 줄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전략을 내놔도 고객들을 신규 가입시키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경영악화는 또 다른 산업에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패러다임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와 마찬가지로 TV를 외면하는 소비자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홈쇼핑 업계다. 홈쇼핑 업계는 이들에게 불만이 많다. 안 그래도 TV 시청률이 감소해서 사정이 어려운데 유료방송사업자들이 계속해서 송출수수료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성장이 어려워진 유료방송사업자가 홈쇼핑을 상대로 계속 수수료를 올려 이를 만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홈쇼핑이 유료방송사에게 떼어주는 송출수수료는 2018년 47%에서 지난해 약 65%로 상승했다. 물건을 팔아 100원을 벌면 65원을 수수료로 내는 상황이다.
"이제 TV는 없어도 괜찮아요"...흔들리는 TV 위상에 관련 산업도 위기
상황이 이렇자 홈쇼핑 업계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체질개선을 외치며 ‘탈TV’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더 이상 TV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브라운관에서 벗어나 모바일 앱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라이브 커머스, 유튜브 등에 역량을 더욱 집중하고 나섰다.

만약 계속해서 송출수수료가 오를 경우 머지않아 실제로 방송을 중단하는 TV홈쇼핑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TV 방송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과거만큼 크지 않은 만큼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TV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고민이 많다. TV의 인기 하락은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추세다. 작년 4분기 TV 사업에서 삼성전자는 500억원, LG전자는 72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두 기업이 글로벌 가전 시장의 강자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줬던 TV에서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망도 어둡다. 올해 1분기에도 TV 시장의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당분간 실적 개선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