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약사 머크, 아태지역 최대 규모 원부자재 생산센터 투자
급성장한 국내 CDMO와 ‘산학연 생태계 완성’ 기대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1캠퍼스와 2캠퍼스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1캠퍼스와 2캠퍼스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독일 과학기술 선도기업이자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인 머크 라이프사이언스(이하 머크)가 국내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대전시와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머크는 지난 2월 열린 이사회에서 바이오프로세싱 생산센터 건립을 위해 약 4300억원(3억 유로)을 투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생산센터는 대전 유성구 둔곡지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내에 4만3000㎡(약 1만3000평) 규모로 건립된다. 생산센터는 5월 착공해 2025년 준공 예정이며 제품 생산은 2026년 시작할 계획이다.

생산센터에는 머크의 건조분말 세포배양 배지, 공정 용액, 사전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Pre-GMP) 소규모 제조, 멸균 샘플링 시스템 등 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생산에 필수적인 제품과 솔루션이 공급된다. 머크는 해당 센터를 전진기지로 아태 지역 전역의 제약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바이오의약품 원부자재를 공급할 뿐 아니라 공정 개발, 임상 개발, 생산도 지원할 계획이다.

이처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배경으로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국내 CDMO(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및 CMO(의약품 위탁생산)의 역량 및 규모가 꼽힌다. 2011년 선도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에서 첫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시작한 이래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머크의 이번 투자는 국내 바이오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다시 한번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빅파마(세계적인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선호하는 국내 CDMO는 안정적으로 원재료를 공급받게 된 동시에 머크 등 국내외 원부자재 기업은 마르지 않는 대형 공급처를 확보하며 한국에 ‘글로벌 밸류체인’이 형성된 셈이다. 생산능력 압도적 1위, ‘바이오 허브’로 성장한 송도
도시별 바이오 생산능력 규모.
도시별 바이오 생산능력 규모.
‘규모의 경제’를 갖춘 곳으로 빅파마의 일감과 세계 바이오 기업들의 투자 수요가 모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인천광역시에 따르면 인천은 116만 리터(L)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규모를 갖춰 단일 도시로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65만 L), 캘리포니아 일원(51만 L), 싱가포르(32만 L)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준이다.

역시 단일 기업으로서 압도적 1위로 자리매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시설 규모만 60.4만 L에 달한다. 창립 당시 임직원 50명으로 출발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3년 기준 4500명으로 인력을 늘리며 인천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 밖에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내로라하는 국내 CDMO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는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점차 글로벌 바이오 생산기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송도가 바이오 허브로 성장하며 지금에 이른 것은 불과 10여 년 전 이곳에서 제약바이오 시장에 첫발을 뗐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삼성은 과감한 투자와 함께 시장 전체를 보는 전략적 접근을 병행했다. 세계 최대 CDMO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송도 중심의 원부자재 집적화를 추진했다. 국내외 원부자재 업체들이 송도에 자리 잡도록 지원함으로써 신속하고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한 것이다.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제약바이오 기업은 원부자재를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원부자재를 공급받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으며 코로나19 확산 당시처럼 긴급한 상황에서는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머크, 싸토리우스, 싸이티바, 써모피셔, 생고뱅 등 주요 글로벌 공급사 및 협력사의 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적극 지원한 바 있다. 연간 20%의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바이오제약 산업과 아시아 허브 지역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피력해 글로벌 기업들이 최종적으로 한국 투자 결정을 하도록 노력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업체들은 불안정한 대외 여건 속에서도 세포배양 배지 등 핵심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7.5조 추가 투자하는 삼성바이오, 두 번째 ‘퀀텀점프’ 기대
‘삼바’가 이뤄낸 바이오 생산기지의 꿈…10년 만에 ‘글로벌 밸류체인’ 완성[비즈니스 포커스]
창립 11년 만인 2022년 매출 3조원 돌파에 성공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7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토지매매 계약을 통해 인천 송도에 약 36만㎡ 규모의 ‘제2 바이오캠퍼스’ 부지를 확보했다. 이곳에 2032년까지 7조5000억원을 투자해 공장 4개를 추가로 건설해 바이오 분야에서 ‘초격차’를 완성할 계획이다.

이에 발맞춰 머크와 싸토리우스 등 글로벌 기업들도 국내 생산 시설을 통해 국내 바이오기업에 바이오의약품 원부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나아가 아시아 바이오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향후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장에 첨단 고부가 공정 제품을 수출하는 기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송도국제도시 내 삼성바이오로직스 캠퍼스와 인접한 위치에 오피스 및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결국 인천에 산학연 바이오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 인천에는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K-바이오 랩허브가 구축될 예정이다. 송도 연세대 캠퍼스에도 바이오공정인력 양성센터(K-NIBRT)가 설치돼 매년 바이오 전문 산업인력 2000명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로 인해 송도를 중심으로 국내 바이오 밸류체인이 비로소 완성 단계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세계 최고의 CDMO 회사로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 및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