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조한 고용·불안한 중동 정세로 인플레이션 공포 커져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사진 AP=연합뉴스 제공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사진 AP=연합뉴스 제공
미국이 또다시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습으로 국제 유가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미국의 소비지표마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사실상 금리인하 시점을 연기한다는 뜻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미 국채금리는 급등했고 Fed가 금리를 오히려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미국의 강한 소비 여전
4월 15일(현지 시간) 소비지표 가운데 하나인 미국 소매판매의 3월 치가 전월보다 0.7% 증가한 7096억 달러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0.3% 증가를 예상한 다우존스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만큼 소매판매 수치는 미국 경제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앞서 4월 10일(현지 시간) 미국 노동부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한 달 전인 2월 CPI 상승률(3.2%) 대비 크게 오른 데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3.4%)도 웃돌았다. 전월 대비 상승률 역시 0.4%로 전문가 예상치(0.3%)를 웃돌았다. 주거비(전월 대비 0.4%)와 휘발유(전월 대비 1.7%) 가격 상승이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에 절반 이상 기여했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이날 물가 지표에 대해 “현재 시장은 Fed가 연내 기준금리를 2회 미만으로 내릴 것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경제지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Fed가 ‘더 늦게 더 조금’ 금리를 내리는 정책 변환을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고용시장·중동 긴장도 인플레 부채질
미국의 소비를 이끄는 것은 여전히 견조한 고용시장이다. 4월 5일(현지 시간) 미 노동부는 3월 비농업일자리가 전월 대비 30만3000건 증가했다고 밝혔다. 월가의 전망치(약 21만 건)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의료, 정부, 건설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신규 고용이 늘어난 것은 물론 평균 시간당 임금도 전달보다 0.3% 증가했다. 시장 예상에는 부합하지만 전달 0.2%보다 증가폭이 더 크다. 3월 실업률은 전문가 전망치(3.8%)와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한 것도 인플레이션 불안 요인이다. 이미 뉴욕 월가에선 국제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 래피던에너지의 밥 맥널리 대표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돼 호르무즈해협에 차질이 생기면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에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매일 1800만 배럴의 석유가 지나가는 핵심 수로다. 래피던에너지는 호르무즈해협에서 이 같은 혼란이 생길 가능성을 30%로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간 전쟁 초기였던 지난해 10월 충돌 확대에 따른 여파를 우려하면서 유가가 10% 상승 시 글로벌 생산이 0.15%포인트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은 0.4%포인트 오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금리 6.5%까지 가나
Fed가 내년에 금리를 연 6.5%까지 올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조너선 핑글과 바누 바웨자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이끄는 UBS 전략가들은 4월 15일(현지 시간) 투자자들을 향한 메모에서 “경기 확장세가 탄력적으로 유지되고 인플레이션이 2.5% 이상에서 굳어진다면 내년 초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인상을 재개해 내년 중반 연 6.5%까지 오를 수 있는 리스크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망은 9월 이후 금리인하 가능성을 점치던 최근 분위기에서 사뭇 달라진 것이다. UBS의 기본 시나리오는 여전히 올해 두 차례 금리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CPI가 올해 들어 3개월 연속 전망치를 웃돈 데다 이날 나온 미국 3월 소매판매도 예상치를 상회하면서 금리인상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UBS는 “투자자들이 경제가 너무 과열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며 “높은 인플레이션 시나리오에서는 국채 매도와 신용 스프레드 확대가 이뤄지면서 주식 평가가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증시에선 금리인하에 대한 예상 시점이 미뤄지고, 오히려 인상 가능성마저 나오자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선 추가 상승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서 국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는 것보다 주식 매력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특히 소형주의 리스크가 큰 것으로 분석했다. 대부분의 수익을 미국 내에서 창출하는 경향이 있는 소형주는 특히 경기 흐름에 민감하다는 설명이다.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3월 기준 소형주 중심의 S&P600 기업들의 이자 비용 대비 영업이익의 비율은 2.3배로, S&P500 기업의 7.6배보다 훨씬 낮았다. 또 다른 소형주 지수인 러셀2000에 속한 기업의 부채 가운데 약 44%는 지난해 말 기준 변동금리에 연동된 것으로 금리인상에 훨씬 더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S&P500의 경우 10%에 그쳤다. WSJ는 “S&P500의 IT 섹터도 위험하다”며 “실제 Fed가 2022년 금리인상을 시작했을 때 기술 부문은 30% 하락했다”고 전했다. 파월, 금리인하 지연 시사
인플레이션 우려가 계속해서 나오자 파월 Fed 의장은 4월 16일(현지 시간)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최근 석 달간 물가 지표마저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이에 따라 파월 의장도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기존 정책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또 “최근 지표는 견조한 성장과 지속해서 강한 노동시장을 보여준다”면서도 “동시에 올해 현재까지 2% 물가 목표로 복귀하는 데 추가적인 진전의 부족(lack of further progress)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진전을 보일 때까지 현 5.25∼5.50%인 기준금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미 국채금리는 급등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이날 장중 한때 연 5.01%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미국 국채 2년물 금리가 연 5% 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5개월 만이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