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울산바위 위용에 빠진 와인 마니아가 스페인 동북부 프리오랏(Priorat)에 가면 위압감을 느낄 수 있다. 울산바위 규모의 돌산 수십 개가 온 사방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몬산트 산맥 영향이다.
주변 토양 역시 점판암(슬레이트) 투성이다. 바짝 마른 슬레이트 석을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부서진다. 이처럼 척박한 지역에서는 과연 어떤 포도품종이 자라고, 와인의 맛과 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페인 타라고나주 프리오랏. 이곳에는 모두 100여 개의 와이너리가 성업 중이며 적포도 식재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 토착품종인 가르나차(프랑스식 표기는 그르나슈) 재배면적이 전체의 40%를 넘는다.
껍질이 얇은 가르나차는 높은 알코올 도수와 낮은 산도가 특징. 더위와 가뭄에도 잘 견디는 등 생존력이 뛰어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을 좋아한다. 병충해에도 강해 프리오랏 농부들에게 인기가 높다.
거친 토양도 반전이다. 특히 슬레이트 석은 뜨거운 낮 태양 빛을 반사시키고 열기를 저장해두었다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밤에 발산, 포도나무를 보호한다. 그와 함께 포도나무는 암반 틈새를 파고들어 지하 20~30m까지 뿌리를 내린다.
그 덕분에 프리오랏 와인에서는 강렬한 미네랄 성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질감이 부드럽고 신선한 과일 향 등 포도 고유한 맛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특징. 1980년대 이후 품질이 향상되면서 최고 와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 프리오랏 와인은 1954년 지리적 표시인 DO를, 2000년에는 원산지 통제 명칭인 DOCa(카탈루냐 표기로는 DOQ) 등급을 부여받았다. 스페인 최고 등급인 DOCa는 리오하 지역과 더불어 딱 두 곳뿐이다.
국내에서 맛볼 수 있는 프리오랏 와인 3종류를 소개한다. 먼저 ‘로케르 드 포레라(Roquers de Porrera)’는 약 80년 된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양조했다. 첫잔을 따르면 수분에 젖은 바위 냄새가 강하게 나타난다. 가르나차 48%, 카리네나 37% 외 국제품종인 메를로 15%를 섞어 양조했다.
다음은 ‘마지 드 포레라(Marge de Porrera)’. 초반 약간 쓴맛이 강하다. 그러나 돼지고기 향과 섞이면서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두 번째 잔에서는 입속 느낌이 둥글고 목 넘김도 부드러워졌다.
이들 두 종류는 소규모 가족경영 와이너리인 ‘엔카스텔 셀러(Celler de l’Encastell)’에서 생산한 와인. 국내에서는 선바위역(지하철 4호선) 인근 스페니시 레스토랑 ‘엘 올리보’에서 만날 수 있다.
오너 겸 와인메이커 라이몬 카스텔비(Raimon Castellví)는 “프리오랏 포도로 만든 와인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과일 향과 미네랄 성분,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그의 포도밭에서 만났다.
끝으로 ‘마스 덴 질, 벨문트(Mas d’en Gil, Bellmunt)’. ‘지중해의 피노 누아’라는 별명답게 초반 신선한 과실 향이 다가온다. 시간이 좀 지나면 부드러운 타닌감이 맛을 더한다는 것이 수입사 하이트진로의 설명. 메인 품종은 가르나차 네그로(65%). 그 외 카리네나와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어 만들었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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