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결혼생활 종지부
천문학적 재산 분할 금액
그룹 지배력 약화 우려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 금액이 나왔다.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 후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 가능 부분만 해도 219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며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판단도 뒤집혔다. 앞서 1심은 최 회장 보유 SK(주) 주식은 '특유 재산'으로 인정해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이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노 관장 측이 주장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의 SK그룹 유입도 인정했다. 노 관장 측은 2심 과정에서 아버지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약 300억원이 1990년대 초 SK그룹에 전달됐고,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며 이 비자금이 SK그룹의 성장과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그룹에 들어온 적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보고 이같은 판단을 토대로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에 대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2월부터는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해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SK(주) 주식도 분할 대상이라는 항소심 판결에 이날 장 후반 SK(주) 주가가 급등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SK(주)는 장 중 한때 15.89%까지 올랐다가 전장보다 9.26% 오른 15만81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항소심 판결이어서 변동 가능성은 있지만, 주식이 재산 분할 대상이 될 경우 SK 경영권을 두고 지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에서 매수세가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9월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나 파경을 맞았다. 최 회장은 2015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내연 관계를 고백하며 이혼 소송을 냈고 노 관장은 이혼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해오다 2019년 입장을 바꿔 최 회장을 상대로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 1297만5472주의 절반(649만여주) 분할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665억원과 함께 위자료 명목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의 이혼 청구는 기각했지만, 노 관장이 요구한 최 회장 보유 SK(주) 주식 중 50%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양측 모두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준비 과정에서 위자료 30억원과 분할을 요구하는 재산의 형태를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 현물 50%에서 현금 2조원으로 청구 내용을 변경, 청구취지액이 2조30억원으로 상향된 상태다.

최 회장은 SK(주)지분 17.73%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29일 종가 기준 1조8780억원 상당이다. 지주사 SK(주)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밖에 최 회장이 보유한 SK 계열사 지분은 SK디스커버리 0.12%(2만1816주), SK디스커버리 우선주 3.11%(4만2200주), SK케미칼 우선주 3.21%(6만7971주), SK텔레콤 303주, SK스퀘어 196주 등이다.

이번 판결로 향후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 약화에 따른 SK 경영권 분쟁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금 마련 방법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계에선 최 회장이 1조4000억원 규모의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 지분을 14.99%까지 확대해 SK 최대주주에 올라 최 회장의 경영권을 공격한 '소버린 사태'를 겪은 만큼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