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업 ‘드비어스(De beers)’는 지난 1월 최대 폭의 원석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의 상징과 같은 기업이다. 한때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90%를 유통했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라는 광고 캠페인과 함께 다이아몬드 링을 결혼의 징표로 굳힌 기업이다.
드비어스는 결혼반지에 주로 쓰이는 2~4캐럿 원석인 셀렉트메이커블(보석으로 가공할 수 있는 등급) 가격을 무려 25% 내렸다. 2022년까지 캐럿당 1400달러(약 185만원)였던 가격은 850달러(약 112만원)가 됐다. 원석 가격이 하락하면서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공급업체도 위기에 놓인 것이다. 출처: 다이아몬드서치엔진
단위: 캐럿당 가격(달러)
제목: 지난 10년간 캐럿당 다이아몬드 가격 추이
◆가격 추이 어떤가
다이아몬드 가격 지수는 올해 초부터 연일 하락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기가 높아지며 동기간 가격도 빠르게 올랐는데 거품이 꺼진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제다이아몬드거래소(IDEX)에 따르면 천연 원석 가격의 변화를 추종하는 가격 지수(2021년=100)는 올해 1월 3일 기준 110.19, 지난 4월에는 107.05로 하락했고 6월 12일 기준 105.28로 집계됐다.
2012년 2월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지지부진하던 다이아몬드 가격 지수는 2020년 7월 104.2까지 하락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꾸준히 올라 2022년 3월 158.3까지 치솟았다. 약 20개월 만에 60% 가까이 오른 것이다.
그러나 2023년 초부터 가격은 다시 하락하기 시작해 10월 107.4로 떨어졌다. 같은 해 12월 소폭 올라 110대로 회복했지만 올해 들어 가격 그래프는 줄곧 하락 중이다.
◆줄어든 중국 수요
지난 10년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다이아몬드 시장이었던 중국에서 다이아몬드 수요가 감소한 점이 꼽힌다. 시장조사 기관인 닥슈 컨설팅은 “중국의 결혼율 감소와 더불어 금, 실험실에서 만든 보석이 인기를 끌며 다이아몬드 수요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홍콩에 본사를 둔 주얼리 업체 룩북(Luk Fook)의 2023년도 도매 사업 매출은 다이아몬드 판매 감소 여파로 21.4% 줄었다. 중국 다이아몬드 반지 브랜드 아이두(I Do)는 2023년 1월 파산 구조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명품이나 주얼리 등 사치재로 소비자의 관심사가 옮겨간 것이 2020년 이후 가격 인상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중국의 봉쇄 조치가 종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올해 들어 주 소비국인 중국과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것도 한몫했다. 중국이 부동산 경기침체에 빠지고 인구 감소와 더불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미국은 높은 금리로 가처분소득이 감소한 것도 사치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또 금·은과 비교했을 때 ‘자산’으로서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있다. 금과 은은 금리 등 거시경제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아 일반적으로 ‘안전자산’으로 평가된다. 올해 들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지속되자 가격이 올랐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금이나 은처럼 제품을 만들어내기 전 원료인 ‘원자재’가 아닌 원석 그 자체를 의미하기에 재활용이 어렵고 감정 및 커팅 기술, 기자재의 발전에 따라 가격이 변동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보통 사치 용도로 구매하기에 투자자산으로서 인식이 적고 환금성이 떨어진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성장
공급의 측면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최대 85% 저렴하지만 물리·화학·광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성분으로 구성된 합성 다이아몬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랩다이아)의 등장이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랩다이아는 광산에서 채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은 다이아몬드 씨앗을 인공적으로 실험실에서 키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천연 원석이 지하 200km 맨틀에서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되지만 그 과정을 몇백 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CNBC는 폴 짐니스키 다이아몬드 전문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인용해 “2017년 전 세계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의 2%에 불과했던 랩다이아의 판매는 2023년 18.4%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대량생산이 어려웠던 랩다이아는 대부분 공업용으로 쓰였지만 연마와 세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주얼리 시장에서도 201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생산 비용이 줄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소비자 부담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고급 주얼리 소매업체 앙가라의 안쿠르 다가 CEO는 “다이아몬드 최대 소비국인 미국에선 앞으로 약혼반지의 다이아몬드 50%가 실험실에서 생산되고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은 향후 1년간 15~20% 더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적 주얼리 브랜드들도 손을 뻗고 있다. 프라다는 작년 11월 랩다이아를 사용한 주얼리 라인을 내놨고 스와로브스키도 지난 4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랩다이아 제품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다이아 수요가 높은 웨딩 시장을 중심으로 랩다이아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중저가 브랜드도 제품을 내놓으며 소비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랜드그룹의 로이드에 따르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제품 5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5% 늘었다”고 했다. 국내 랩다이아 전문 브랜드인 알로드도 같은 기간 500% 넘는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환경적·윤리적 비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1990년대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반군들이 강제 노역을 동원해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이아몬드의 윤리적 문제가 불거졌다. 다이아몬드 광산은 토양과 해양 등 환경을 파괴하고 주변 생태계를 교란하며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도 한다.
또 일부 국가에만 매장돼 있어 공급 측면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단점도 피해간다. 국제 인증기관 킴벌리 프로세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단 22개국이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이 가능한데 러시아에 30%, 캐나다와 보츠와나에 각각 16% 매장돼 있다.
◆시장 자체의 문제인가
가격은 수요과 공급에 따라 결정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다이아몬드 시장 자체의 부진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5월에는 드비어스의 모회사인 영국의 다국적 광산업체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이 보유지분 85%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분리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했다.
대규모 포트폴리오 개편의 일환인데 “미래 전망이 좋지 않고 수요가 줄어드는 다이아몬드 사업부는 내보내고 미래 성장 산업으로 꼽히는 구리를 중심으로 회사를 다시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CNBC는 드비어스의 위기를 보도하며 “다이아몬드는 드비어스가 남긴 강력한 유산이지만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사업이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과 ESG 경영이 필수 자질로 떠오른 현시점에 필요한 자원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임나영 인턴기자 ny92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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