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리은행이야? 또 국민은행이야?” [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은행에는 ‘대체방’이란 게 있다. 사내 커플을 이르는 말이다. 같은 은행에서 거래를 할 때 현금을 주고 받는 대신 서류로 처리한뒤 ‘대체’라는 도장을 찍는 관행에서 유래했다. 다른 기업에 비해 은행에는 대체방이 유독 많다. 장점이 많아서겠지만 환경도 한몫했다.

다름아닌 시재점검이다. 현금거래가 대부분인 시절, 오후 4시30분에 문을 닫고도 시재를 맞추기 위해 몇시간을 더 일해야 했다. 시재가 1원이라도 맞지 않으면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미혼남녀 은행원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지점의 남녀 행원이 큰 금고에 들어가 돈을 세다가 금고문이 닫혀 대체방이 됐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은행들은 시재관리에 철저했다. 현금 횡령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현금거래가 거의 사라진 요즘 현금 횡령은 옛날 얘기다. 대신 인터넷 이용이나 서류 조작 등을 통한 횡령 및 배임행위는 여전하다. 마음먹고 사고를 치면 아무리 내부통제가 철저한 은행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더라도 특정 은행에서 사고가 줄줄이 터지는건 문제가 있다.

우리은행이 그렇다. 이 은행 김해지점 대리는 서류 조작을 통해 100억원 가량의 고객 대출금을 횡령했다. 암호화폐와 해외 선물 등에 투자해서 60억원 가량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은행 차장급 직원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707억원의 은행돈을 빼돌렸다가 2022년에야 적발됐다. 8년동안 은행은 낌새도 채지 못했다. “또 우리은행이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KB국민은행에서도 올해 사고가 많다. 올들어 적발된 100억원이상 대출 관련 배임 사고만 3건이다. 안양지역 A지점에선 104억원, 대구 B지점에선 111억원, 용인지역 C지점에선 272억원을 각각 대출해 주는 과정에서 담보가치를 부풀렸다가 적발됐다. 담보가치 이상으로 대출을 해줘 결과적으로 은행에 손해를 끼쳤다고 한다.

두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많지만, 사고의 결은 약간 다르다. 우리은행에서는 횡령사고가, 국민은행에서는 업무상 배임사고가 많다. 굳이 경중(輕重)을 따지자면 은행 돈을 빼돌리는 횡령이 배임보다 무겁다.

이유는 뭘까. 다름아닌 금융그룹 회장이나 은행장 등 CEO(최고경영자) 리더십과 관련돼 있다고 본다. 우리은행은 설립이후부터 CEO리스크에 시달려왔다. 낙하산 인사, 옛 상업은행 출신, 옛 한일은행 출신이 CEO자리를 두고 다퉈왔다. CEO가 바뀌면 중요 보직도 한꺼번에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직원들 사이엔 누가 CEO에 오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문화가 형성됐다. 내부통제는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이 5년이상(우리은행장 포함) CEO를 맡았지만, 그 자신이 DLF(파생결합펀드)관련 징계를 두고 3년 가까이 법적 다툼을 벌이다보니 내부통제에 신경쓸 여유가 아무래도 적었다. 임종룡 회장 취임이후 내부통제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횡령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민은행은 약간 다르다. 물론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불협화음을 빚던 시절엔 사고가 많았다. 윤종규 전 회장이 9년(3연임) 동안 재임하면서 사고는 사라졌다. 조직도 안정됐고 리딩뱅크도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실적 쌓기에 힘을 쏟다보니 대출부풀리기 등이 부산물로 남았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금융사고의 책임을 묻기 위해 7월부터 ‘책무구조도’를 도입키로 했다. 금융회사 임원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명기한 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는게 골자다. 금융그룹 회장이나 은행장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다.

진일보한 제도이지만,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키는 결국 금융그룹 회장이나 은행장이 쥐고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있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