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시공사 간 공사비 논쟁, 조합원 간 갈등으로도 번저
합리적인 공사비 인상 기준·조합 임원 전문성 강화 방안 필요해
그 결과 아파트 입주는 늦어지고 각종 비용이 조합원들에게 추가 분담금으로 돌아와 조합원 상호 간에도 불신과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심지어는 추가 공사비에 대해 조합과 시공사가 합의하더라도 늘어나는 분담금 때문에 조합원들이 조합 임원들을 믿지 못해 해임을 추진하는 등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6월 3일 부동산R114 발표에 따르면 계획 확정 단계인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69곳 중 27곳이 2년 이상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공사비 문제가 사업 지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곳은 19곳이다. 표면적인 원인은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 외에도 조합 측에서 시공사에 고급 자재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공비 상승과 공사 지연 등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포구 C재정비사업조합은 2022년 하반기부터 마감재 선정을 놓고 시공사와 갈등을 빚어 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됐다. 조합에서 이탈리아산 아트월(대형 타일)과 원목마루, 독일산 주방가구와 수전 등 고급 마감재를 요구한 것이다. 시공사는 조합의 제안대로라면 분양가를 높여야 한다고 했지만 조합은 공사비 인상을 거부해 계약 해지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 마루, 주방가구는 국산으로 변경하는 대신 공사비는 처음 시공사 요구보다 일부 낮아진 가격으로 결정됐다. 아파트 고급화를 지향하는 조합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시공사의 기준 없는 공사비 인상 요구로 인한 갈등도 늘고 있다. 일례로 성남시 소재 A재건축 조합은 시공사로부터 공사비 증액 요구와 함께 인상 금액이 적힌 A4용지 3장을 받았다고 한다. 시공사는 조합에 기존 공사비의 50%에 달하는 수천만원을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구체적인 내역 없이 고작 몇 장의 청구서를 제출했다. 시공사가 이처럼 무성의한 행위를 하면 조합 입장에서 신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조합은 여러 차례 상세 내역을 요구했지만 시공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계약을 해지했다.
또한 높아진 공사비로 인한 조합원 부담을 일반분양가에 전가하는 사례도 있다. 광주광역시의 D재개발 조합은 시공사에 최상급 브랜드를 요구해 내외장재, 마감재를 고급화했다. 그런데 그 결과 늘어난 조합원 분담금을 낮추기 위해 일반분양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에 대해 반대하는 시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수원의 E재건축 조합의 경우 2023년 2월에 이주를 완료한 상태에서 지방공공기관과 진입로 문제로 몸살을 앓다가 이번에는 사업구역 한가운데 위치한 초등학교 이전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초등학교를 기존 위치에서 가장자리로 이전해야 아파트 배치를 효율화할 수 있는데 당장은 관할 교육청의 협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돌연 일부 조합원들이 초등학교 이전 지연 책임과 공사비 인상, 그리고 무이자 사업비의 조합원 부담 등을 지적하면서 조합 임원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는 외부 환경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미 이주를 한 상태에서 시공사가 권위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공사비 인상과 깜깜이 공사 진행 등이 대표적이다. 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정비사업을 책임지는 조합장과 조합 임원들의 자질도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공사비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표준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공사비 인상 시 건설물가 상승률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공사비 검증도 한국부동산원만 할 것이 아니라 검증 전문기관을 더 선정해 분쟁이 있는 경우 언제든지 검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 재건축·재개발조합의 임원이 되려는 자는 일정 기간 정비사업 관련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 앞으로도 점점 늙어가는 도심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거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함은 물론 주택 공급을 늘리는 차원에서 제도를 현실화하고 관계인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조치는 꼭 필요하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