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2월 6일 업무용 차량인 제네시스 G90을 타고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출국을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월 6일 업무용 차량인 제네시스 G90을 타고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출국을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주요 기업들이 해외출장 시 이코노미석 의무화에 이어 근무 중 담배 타임 금지령까지 내려가며 ‘짠물 경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업무용 자료를 출력할 때도 이면지 활용과 양면 인쇄를 하지 않으면 눈치를 준다.

임원도 예외는 아니다. 법인카드 사용 한도 축소는 물론이고 삼성, SK, 포스코에서는 임원들이 이미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주 6일제 근무를 하고 있다. 재계 총수들도 하반기 위기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대부분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있다.

임원부터 죈다…삼성 부사장 G90→G80으로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를 시작으로 해외출장 인원을 최소화하고 있다. 7월 10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행사에도 필수 인력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갤럭시 언팩은 삼성전자의 새 폴더블폰인 갤럭시Z폴드·플립6와 첫 스마트 반지 ‘갤릭시 링’ 등을 공개하는 행사다.

삼성전자는 2022년 말부터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며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고금리, 고환율 등 경영환경에 따라 금융비용과 재고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미래 투자 재원 확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임원 승진을 축소한데 이어 혜택도 대폭 줄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부사장 승진 시 제공하는 업무용 차량을 기존 제네시스 G90에서 G80으로 낮췄다. 제네시스 G90은 기본 가격이 9445만원으로 제네시스 G80(5548만원)보다 4000만원가량 비싸다. G90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평소 업무용 차량으로 자주 이용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퇴직을 앞둔 고위 임원에게 제공되는 상근 고문역 대우 연한도 축소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최창원 등판 후 수입차 줄어든 SK 주차장

SK그룹도 고강도 쇄신에 돌입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취임 이후 본격적인 조직 쇄신과 함께 리밸런싱 작업이 진행 중이다. 주요 계열사에 ‘내실 경영’을 주문한 최 의장은 방만한 투자에 따른 손실, 사업 비효율, 기강 해이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정기 인사철도 아닌데 최 의장 주도로 이례적인 수시 인사가 이뤄지며 일부 계열사에선 벌써 짐을 싼 임원도 나왔다. 최 의장은 올해 말까지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성과를 평가해 임기를 1년씩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임원의 경우 의전 차량으로 마이바흐 등 수입 차종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최 의장 취임 이후 국산차로 변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6월 28~29일 최 의장 주재로 열린 SK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한 SK그룹 경영진들은 G90, 카니발 등 국산차를 타고 온 것으로 전해진다.

최 의장은 평소 수입차 대신 국산 미니밴을 타고 출퇴근하며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사원들과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임원들의 경우 월 2회 금요일 휴무 반납, 토요 사장단 회의 부활에 이어 법인카드 예산도 기존보다 20~30% 삭감됐다. 최 의장은 219개에 달하는 계열사 수도 줄이기로 했다.

최 의장의 전사적인 비용 절감 주문에 따라 SK그룹은 모든 계열사의 사무실 임대차 계약 현황도 살펴보고 있다. SK그룹이 보유한 사옥 외에 입주한 SKC, SK네트웍스, SK머티리얼즈 등이 SK디앤디가 보유한 빌딩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더 줄일 것도 없는데…담배 타임 금지령

불황의 늪에 빠진 석화업계는 일찍부터 비상경영을 선언한 상태에서 최근 들어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국내외 출장비 예산을 20% 줄이고 임원 항공권 등급을 한 단계 하향했다.

오전 10~12시, 오후 2~4시를 집중 근무 시간으로 정하고 이 시간에 흡연과 업무 외 메신저 사용도 자제하도록 했다. 지난해 3477억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35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롯데케미칼은 2분기에도 334억원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LG화학은 지난 4월 첨단소재사업본부 생산기술직을 대상으로 특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지난해 첨단소재사업본부 내 편광판 소재 사업을 중국 기업에 매각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금호석유화학은 올해도 희망퇴직을 시행할 방침이다.

LG디스플레이는 구미공장과 파주공장에서 근무하는 MZ세대 직원들에게도 희망퇴직을 받았다.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의 사업 구조로 재편하며 인력 재배치를 통한 비용 효율화 필요성이 커지며 희망퇴직 신청 대상을 기존 만 35세 이상에서 만 28세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발 물량 공세와 글로벌 수요 침체로 2022년 2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근무하는 본사 직원들의 근무지를 마곡과 파주 사업장으로 이동시키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서울 종로구 SK그룹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종로구 SK그룹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미국 대선·지정학적 갈등 변수…위기의식 높아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성장세가 주춤해진 배터리업계도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여념이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조직 슬림화를 위해 조직을 개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7월 4일 임직원에 보낸 CEO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 공격적인 수주와 사업 확장을 추진하며 인력, 설비, 구매 등 분야에서 많은 비효율이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은 투자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힌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4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착공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전용 생산 공장 건설을 최근 일시 중단했다.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자 공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유럽과 미국 미시간주 공장 EV용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ESS 전용 공장의 필요성이 시급하지 않다고 보고 투자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애리조나주 ESS 공장 건설을 잠시 중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SK온은 7월 1일부터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흑자전환 달성 때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또 CEO를 비롯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했다.

SK온은 2021년 출범 이후 올해 1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으며 2분기에도 3000억원대 영업손실이 전망된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임원들부터 위기 극복을 위해 솔선수범하자는 취지다.

기업들의 긴축 경영 기조는 경기 부진 속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실적은 개선되고 있지만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내수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며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둔화하고 있다.

지난 5월 산업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줄며 10개월 만에 ‘트리플 감소’ 현상을 보였다. 기업들은 미국·중국의 갈등, 전쟁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와 오는 11월 미국 대선 등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하반기에도 비용 절감 등 비상경영 태세를 유지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불안정한 경영환경 속에서 임원 혜택 축소 등 보수적인 비용정책으로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실적 부진을 타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