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서울시 공무원 임용된 제보자, 적응 돕던 멘토 선배에 괴롭힘 당해
"너 때문에 다들 힘들다" 부서장의 2차 괴롭힘도
서울시 괴롭힘 조사 30일 정책 지켜지지 않아...조사 중 신고인 면담 없어
익명 제보자 "시 특성상 직장 내 괴롭힘 만연...피해자들 신고 꺼리는 분위기"
이 과정에서 시가 운영 중인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매뉴얼’인 피해자 중심 조사를 비롯해 ‘부서장 책임제’, ‘처리기간’ 등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월 서울시 서울아리수본부 ㅇ센터에 발령받은 제보자 ㄱ씨는 입사 이후 10개월 여간 상급자인 ㄴ씨로부터 상습적인 폭언과 모욕 등의 괴롭힘을 받아왔다. ㄱ씨가 입사 3일차 되던 날 업무 매뉴얼에 관한 질문을 하자 ㄴ씨는 “매뉴얼 줬잖아. 매뉴얼 볼 줄 몰라”라고 다른 직원들이 있는 가운데 면박을 주고 “이래서 내가 신규 받지 말자고 했잖아”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또 ㄴ씨는 ㄱ씨의 연차 사용도 제한했다. 8월경 연차 신청한 ㄱ씨에게 ㄴ씨는 “야, 너 눈치 없어? 휴가 많이 썼잖아”라며 “너 연차 취소해”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괴롭힘과 동시에 따돌림도 있었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ㄱ씨는 “회식장소에서 대놓고 ‘쟤 옆에 앉지 마라’던가 다 같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저만 빼놓고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가는 식이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ㄱ씨가 o센터 입사 당시 적응을 돕도록 시에서 정해준 멘토였다. 제보자는 “다른 직원들이 있는데서 소리를 지르고 면박을 주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이곳에 잘 적응하라고 센터에서 정해준 멘토 선배의 괴롭힘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ㄴ씨 외 부서장의 2차 가해도 있었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ㄱ씨는 “(괴롭힘 신고한 것을 두고)저한테 괴롭힘 원인 제공이 있다거나, “아직도 가해자(ㄴ씨) 보기 힘드냐? 니가 괴롭힘 신고해서 다른 부서원들이 힘들다”라며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입사 10개월 만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ㄱ씨는 올 1월 1일 서울시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시는 신고 후 2주가 지난 1월 16일자로 신고 사건 조사를 통보했다. 시의 내부 매뉴얼 상 내부 괴롭힘 사건 처리기간은 30일이다. 빠른 조사로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재발방지를 막기 위해 2019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단축 시행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조사기간은 6개월이 넘게 소요됐다. 시 감사위원회는 사건조사 3개월이 지난 4월 15일경 추가자료 검토 등의 이유로 조사기간을 6월 15일까지 연기했다.
괴롭힘 신고일로부터 사건조사까지 161일이 소요된 셈이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신고 당사자인 ㄱ씨는 담당 조사관과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사연장의 구체적 사유나 괴롭힘이 인정된 가해자에게 어떤 징계가 내려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은 “자료가 충분해서 연락하지 않았다”면서 “내부 규정상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2차 가해 대상자인 부서장에 대한 조사 및 징계도 이뤄지지 않았다.
ㄱ씨는 “1차 신고 이후 조사관님께 부서장에게 2차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했다”면서 “2차 피해에 관한 자료도 다 넘겼고 조사관이 검토해본다고 했는데, 내부규정에 따라 혐의 없음으로 처리됐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의 매뉴얼대로라면 괴롭힘이 발생한 부서의 장도 책임지게 되어 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신입만 골라 괴롭히는 멘토제보자 ㄱ씨는 지난해 ㄴ씨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심적으로 힘든 상황을 동료에게 털어놨다. 그 과정에서 ㄴ씨의 전 근무지에서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피해자와 연락이 닿았다.
ㄱ씨는 “저 말고도 괴롭힘을 겪은 분들이 더 있었다. 그 분들에게 제 사정을 말하니 돕고 싶다면서 예전에 자신들이 겪은 괴롭힘에 대한 진술확인서를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ㄴ씨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이들 모두 ㄱ씨와 마찬가지로 신입공무원이었다. 이들이 보내 온 진술확인서에는 ㄴ씨와 근무 당시 폭언과 성희롱 발언 등이 담겨져 있었다.
ㄱ씨는 괴롭힘 조사 결과가 나온 6월 10일 이후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와 저를 어떻게 하겠다거나 분리시키겠다는 아무런 말이 없어 너무 두려웠다”면서 “기약 없이 계속 근무를 해야 하나 싶은 걱정에 다른 근무지로 이동하겠다고 고충 신청을 했다.
현재 ㄱ씨는 고충신청이 받아들여져 다른 근무지로 배치돼 근무 중이다.
오세훈표 예방 매뉴얼, 현장에선 ‘먹통’202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오세훈 시장이 이듬해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발생 시 피해자 중심으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구제 방안’ 등이 담긴 매뉴얼을 발표했다.
이 매뉴얼에는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대응 체계 ▲사건처리 상세 절차 ▲예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우선 괴롭힘 사건 발생 시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지원방안으로 처리기간을 90일에서 30일로 단축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각 분리조치하고, 피해자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반영해 상황을 조정 및 정리한다. 또 괴롭힘 가해자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 처벌수위도 강화한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도 가해범위와 불이익 정의 등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2차 피해 방지 규칙’을 제정하고, 2차 가해자에 대해서도 제재 및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부서장 책임제’도 운영된다. 부서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괴롭힘 사건 발생 시 부서장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시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전 서울시 공무원 ㅅ씨는 “(서울시는) 폐쇄적이고 위계가 강한 시청 조직 특성상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해 있다”면서 “조사 결과가 가해자로 나오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기 때문에 괴롭힘을 입은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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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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