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의 깜작 금리인상으로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커진 가운데 미국 제조업 경기 심리 지표인 ISM 제조업지수의 부진이 심화되면서 미국 경기에 대한 불안이 높아져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용지표가 빠르게 악화된 것으로 나오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주식시장의 공포지수인 VIX지수는 장중 위기 수준인 65.73까지 급등했다. 연내 50~75bp 정도의 금리인하를 반영해온 시장이 100~125bp 이상 인하를 반영하면서 국채금리도 일제히 급락했다. 현시점에서 경기침체 공포는 다소 과도미국 경제는 정말 침체에 빠지는 걸까? 답은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겠지만 지금 미국 경제 환경만을 놓고 보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에 발표된 고용지표부터 다시 보자. 미국 비농업 고용 증가세가 예상치 17만6000명 증가를 크게 하회하는 11만4000명 증가에 그쳤다. 실업률도 4.3%를 기록해 2021년 10월 이래 가장 높다. 5월부터 7월까지 실업률이 계속 올라 최근 3개월 동안의 이동평균 실업률이 지난 12개월 최저 실업률 대비 0.5%포인트 이상 증가하면 이후에 경기침체가 뒤따른다는 삼(Sahm)의 법칙의 기준치도 초과했다. 삼의 법칙은 과거에 단 한번을 제외하고 미국의 모든 경기침체를 예측해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로 침체가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고용시장은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7월 FOMC 회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삼의 법칙은 경제학적 이론이나 법칙이 아니라 통계적 패턴(statistical regularity)에 가깝다.
이 법칙을 고안해낸 클라우디아 삼(전 Fed 이코노미스트) 본인도 노동시장이 약화되고 있지만 침체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 노동시장은 과열 국면에서 점차 균형에 근접하고 있다. 팬데믹 회복 과정에서 노동수요가 노동공급을 큰 폭으로 상회하다가 이민자 유입과 여성 및 다양한 계층의 노동참여 증가로 노동공급이 늘어나면서 노동시장은 균형을 찾고 있다.
물론 노동시장이 균형에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실업률이 상승할 위험도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적어도 7월 고용지표에 나타난 실업률 증가는 노동수요 감소로 인한 해고 증가가 아니라 노동공급 증가로 인한 마찰적 실업에 더 가깝다.
또한 실업률이 4.3%를 기록했지만 역사적인 수준에서 볼 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Fed는 미국 경제의 자연실업률을 4.2%로 보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는 2024년 2분기 자연실업률 수준을 4.4%로 추정하고 있다. 7월 실업률 수준은 자연실업률과 큰 차이가 없다.
더욱이 이번 7월 지표에는 일시적인 요인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7월에 일시적 해고자가 급증했는데 자연재해 등 일회적 요인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용통계 작성을 위한 조사가 실시되는 기간에 텍사스 지역에 허리케인 ‘베릴’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 텍사스주 비농업무문 고용자 수는 1420만 명에 달해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 다음으로 고용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같은 기간에 텍사스 지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평소보다 크게 증가한 것도 7월 고용지표에 이례적인 날씨 영향이 일부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고용을 제외하면 ISM 제조업지수가 예상보다 악화됐으나 미국 제조업 경기는 지난 2년간 대부분의 기간 중에 위축 국면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놀랍지 않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의 강한 성장을 소비와 서비스업 호황이 견인해 왔고, 서비스업 업황이 여전히 양호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시점에서 경기침체 우려는 다소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연착륙은 좁은 길이나 Fed의 대응 여력은 충분그렇다면 시장의 경기침체 포비아는 근거가 없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시점에서 침체를 반영하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판단되나 시장의 우려도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고용지표는 후행적인 성격이 큰 지표다. 비교적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라고 해도 해고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Fed의 긴축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제약적인 통화정책이 경기를 짓누르는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이 소진된 것으로 추정되고 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높은 고정금리 비중으로 인해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처럼 크지는 않지만 높아진 물가와 소비성향을 감당하는 것은 점차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Fed의 베이지북을 보면 최근 미국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고 판매자의 할인이 증가하는 등 고물가와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견조하지만 작년 하반기와 비교했을 때 올해 상반기부터 성장 모멘텀은 둔화되고 있다. 하반기에 Fed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견조한 고용 상황을 유지해 연착륙을 달성하는 길은 좁은 길이다. 결국 향후 나타날 경기침체(필자는 둔화라고 생각)를 막기 위해서는 Fed가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에 가해지는 중력을 낮춰줘야 할 것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미 Fed의 금리인하 시점에서 인하 속도로 옮겨갔다. 7월 고용지표 발표 이후 시장은 보다 가파른 금리인하 속도를 예상하고 있다. Fed 역시 초점이 인플레이션에서 고용으로 옮겨가고 있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과거의 경험을 고려하면 Fed는 비교적 신중한 접근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미국 경제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유지하고자 한다. 경기침체 내러티브의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성격과 고용 약화가 가져올 부정적 연쇄효과가 우려스럽지만 견조한 소비와 재정지출, 인플레이션 둔화에 따른 실질임금 상승, 금리인하 기대에 따른 시중금리 하락이 경기 하방 압력을 일부 상쇄할 것으로 예상한다.
더욱이 Fed의 기준금리가 5.25~5.5%에 위치해 있으므로 경기 하방 압력이 강해질 때 금리인하로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 또한 금리인하에 걸림돌이 되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고용 약화로 인한 경기 둔화세가 강해질 경우 낮아질 공산이 크다.
Fed가 통화정책 목표로 활용하는 근원 PCE물가에 남아 있는 인플레이션의 상당 부분이 경기순환적인(cyclical) 물가 항목임을 감안할 때 고용지표의 추가적인 악화나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질 경우 인플레이션 둔화도 가팔라질 공산이 크다. 이는 결국 Fed가 금리인하 속도를 높여 경기 둔화에 대응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향후 중동전쟁 확산 등 공급 측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높아지지 않는다면 Fed의 연착륙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시점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이코노미스트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