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광성 감정평가사(제일감정평가법인)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서울 명동 땅값이나 평당 수천 만 원이 뛰었다는 강남의 아파트 소식을 접할 때면 문득 궁금한 게 있다.‘과연 저 땅값과 아파트 가격은 누가 정할까?’
부동산을 비롯해 동산 등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격을 평가하고 매기는 직업, 바로 ‘감정평가사’다.
고소득 전문직으로 불리는 이 직업은 연간 200여명 남짓한 바늘구멍을 뚫고 현장경험을 두루 갖춰야 할 수 있는 ‘꿈의 직업’이다. 탄탄한 첫 번째 직장을 뒤로하고 6년 간의 엉덩이 힘으로 두 번째 직업을 일궈 낸 국광성 감정평가사를 만났다.
감정평가사를 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로 5년 차입니다.”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연간 200명 남짓 합격자가 나오고 있는데요.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 협회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올해 7월 기준으로 등록된 감정평가사는 4816명으로 집계돼 있습니다." 감정평가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감정평가사는 쉽게 말해, 여러 형태의 재산에 가치를 화폐의 가치로 기준을 정해주는 직업입니다. 동산(공장, 자동차, 항공기 등), 부동산(토지, 건물, 아파트, 임야 등)을 비롯해 무형의 자산까지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주는 역할이죠.”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겠군요. 평가사마다 전문분야가 있나요.
“사실 감정평가사는 모든 걸 다 평가할 수 있는데, 일부 평가사들 중에서는 특화된 분야를 살려 나가는 분들도 있어요. 미술을 전공한 분들 중에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평가사도 있고, 항공기·선박 같은 특수성이 있는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도 있어요. 전 재건축·재개발 분야에 관심이 있어 열심히 현장공부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보통 평가 의뢰는 어떻게 들어오나요.
“여러 루트로 들어옵니다. 담보 평가의 경우 감정평가법인과 금융기관(은행 등)이 협약기관으로 맺어져 있어요. 은행에서 담보를 걸고 대출이 필요한 고객이 올 경우 저희가 가서 담보 건물 등을 평가해주죠.”
금융권 등 협약을 맺기 위해서는 영업도 중요한 부분이겠군요.
“아무래도 영업이 중요하죠. 영업을 한 만큼 일이 들어오니까요.”
감정평가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각 평가 물건마다 감정 방식이나 기준이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담보로 들어 온 건물이 정해지면 현장으로 나갑니다. 나가기 전 담보의 소유자에게 연락을 해두죠. 왜냐하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꼼꼼하게 상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협조가 필요하거든요. 현장방문을 하면 도면과 대치를 통해 불법 건축물이 있는지, 용도 변경한 부분이 있는지 등등 체크를 합니다. 건물일 경우에는 건물의 내·외관을 비롯해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주변 부동산도 탐문을 통해 정보를 얻고요.” 감정평가사라고 하면 공인중개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부동산에서는 시세나 호가에 대해 말해주는 걸 조금 꺼리는 편이죠. 왜냐하면 그분들이 쌓은 정보이고, 평가금액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그 탐문정보에 의존하기보다 참고용으로만 활용합니다. 사실 평가사들은 실거래 및 평가 전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내부 사이트가 있어요. 그걸 많이 활용하죠.”
그 사이트는 평가사만 볼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그 사이트에는 과거 평가된 금액들이 모두 올라와 있는데, 전국 데이터를 한 눈에 볼 수 있거든요.”
감정평가 순서
기본 사항의 확정→처리계획 수립→대상물건 확인→자료수집 및 정리→자료검토 및 가격 형성요인 분석→감정방법 산정→감정가격 결정→감정평가액 표시
같은 매물이라도 감정평가사마다 평가금액이 달라질 수도 있나요.
“그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일반적인 평가 기준은 비슷하지만 개개인의 주관이 어느 정도 반영되기 때문에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편차가 그리 크진 않습니다.”
개인이 의뢰하는 경우도 있나요.
“간혹 본인이 소유한 재산권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개발 구역이 지정이 되면 보상이 나오는데, 그 보상금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 중에 의뢰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건물 등 부동산 외 평가한 것 중 특이한 건 없었나요.
“예전에 수목평가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저도 수목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한 기억이 있어요. 지인 중에는 벌통이나 새끼 돼지를 평가한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생소한 분야를 평가할 땐 좀 난감하기도 하겠어요.
“사실 평가 물품이 특이하거나 생소할 경우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하죠. 저희가 찾는 정보의 기준은 평가 물품의 값을 찾기 위한 거라 그 분야를 탐독하는 공부와는 조금 다를 순 있어요.”
평가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나요.
“보통 저희가 안내를 할 땐 3일 정도 걸린다고 말씀드려요. 현장답사를 하고, 평가해서 리포트를 제출하면 보통 그 정도 걸리거든요. 간혹 물건에 따라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것들이 좀 오래 걸리나요.
“예를 들어, 강남 한복판에 있는 고층 빌딩은 3일 안에 못해요.(웃음) 건물 전체를 다 봐야 하고 건물의 내·외장재, 구조 변경 등도 체크를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과거에 비해 감정평가 의뢰 건수 변동이 있나요.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들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코로나19 이후 금리도 많이 올라가고 부동산 경기도 침체다 보니 집이나 상가를 사고팔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부동산 경기에 따라 감정평가사의 업무량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웃음)”
한 번에 몇 건의 감정을 할 수 있나요.
“보통 의뢰가 들어오면 그것에만 집중해야 해요. 보통 하나를 처리하고 다음 건을 처리하는데 저희 일 특성상 지방 출장도 많거든요. 그래서 출장을 가더라도 스케줄을 잘 세워 일처리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의뢰 건이 많아야 수입도 늘어나는 구조겠군요.
“사실 평가사들 사이에서는 건수가 크게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법정 수수료로 책정돼서 평가액 대비 금액이 정해져 있거든요.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건을 하더라도 천억원이 넘는 빌딩을 평가하는 것과 지방의 1~2억 원 규모의 토지를 몇 건하는 것과 수입이 다르니까요.(웃음)”
감정평가수수료 계산법
감정평가액 | 하한 수수료(최저 수수료) | 상한 수수료(최대 수수료) |
5천만원 이하 | 20만원 | 20만원 |
5천만원~5억원 | 20만원+초과액의 0.11%X80% | 20만원+초과액의 0.11%X120% |
5억원~10억원 | 596,000원+초과액의 0.09%X80% | 794,000원+초과액의 0.09%X120% |
10억원~50억원 | 956,000원+초과액의 0.08%X80% | 1,334,000원+초과액의 0.08%X120% |
50억원~100억원 | 3,516,000원+초과액의 0.07%X80% | 5,174,000원+초과액의 0.07%X120% |
그럼 의뢰 건을 선택해서 받을 수 있겠네요.
“그렇게 하진 않습니다. 법인으로 들어오는 의뢰 중 저희가 할 수 있는 건은 모두 받는 편이죠.(웃음)” 자격증 시험의 난도는 어떻습니까.
“시험은 1·2차로 각각 3과목, 4과목으로 나눠져 있고, 감정평가와 관련된 과목과 더불어 법이나 회계 등을 모두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쉬운 시험은 아니죠. 전반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은 꼬박 공부했던 것 같아요.”
몇 년을 준비하셨어요.
“처음엔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했었어요. 나름 안정적인 직장이었는데,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루틴이 지겨워 감정평가사를 준비하게 됐어요. 초반 1년 정도는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다가 이듬해부터 그만두고 공부에만 몰두했죠.”
합격 노하우가 있다면요.
“요즘엔 학원 커리큘럼이 워낙 잘 돼 있어서 좋은 학원을 고르는 게 중요해 보여요. 전 합격까지 오래 걸렸는데, 빠른 분들은 1~2년 내 합격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합격한 후에는 보통 진로선택을 어떻게 하나요.
“합격자들은 무조건 전국 각 평가법인에서 수습기간을 거치게 돼 있어요. 국토교통부에서 배정을 해주는 거라 예외는 없어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실무를 배우기 위해서인데요. 6개월에서 1년 정도 수습기간을 거치면 해당 법인에 취업하거나, 기업 또는 금융권으로 가거나 개업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만큼 실무가 중요하군요.
“그래서 감정평가법인에 5년 이상 근무경력이 인정되는 분들은 1차 시험을 면제시켜주는 제도도 있어요. 경력을 인정해주는 제도인데, 그만큼 실무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죠.”
이 직업이 꼭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감정평가는 의뢰인의 재산권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다보니 감정평가의뢰인에게 신뢰를 주는 감정평가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평가를 할 때도 평가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꼼꼼함이 꼭 필요하고요. 특히 얼마 전에도 감정평가사가 브로커랑 연계해서 전세사기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 직업은 신뢰가 떨어지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반드시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을 거예요.”
직업의 장단점이 있다면.
“우선 이게 장점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정말 꿈도 꿀 수 없는 호화로운 펜트하우스같은 곳도 평가하러 가보기도 했어요. 입구부터 집안 곳곳이 으리으리한 곳을 보면 ‘부자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알게 되죠. 장점이자 단점은 평소 외근이나 출장이 많다보니 답답함은 덜 느끼는 반면에 갑작스런 출장에 약속이 펑크 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워라밸은 있나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라 매일이 야근이었죠. 근데 요즘엔 워라밸이 있습니다.(웃음)”
직업병은요.
“개인적으로는 어느 장소에 가던지 위치 파악이나 건물의 상태 등을 훑어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어요. 주차장 상태나 혹시 불법 증축한 건 없는지 스윽 살펴보죠.(웃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최근에 중계동 백사마을 재개발 영업보상 건으로 다녀 온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수십 년 간 구멍가게를 하신 분들이 있는데 사실상 사업자를 내고 장사를 한 게 아니라서 법적으론 보상을 못 받거든요. 현장에서 그분들의 사정을 들으니 너무 안타까워서 서울시 조례나 관련 법안 등을 다 찾아보면서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려고 했어요. 누군가에겐 재산을 불리는 기준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잖아요.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죠.”
감정평가사의 직업적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요즘 인공지능이 직업을 대체한다는 말이 많잖아요. 감정평가사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반드시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해야만 평가가 나올 수 있는 분야라 아직은 인공지능이라도 어림없지 않을까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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