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국내 대형 제약사인 유한양행이 실제로 그걸 해냈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한국 제품명 ‘렉라자’)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비록 글로벌 임상 및 인허가를 위해 글로벌 빅파마인 존슨앤드존슨의 힘을 빌렸지만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항암 신약 최초로 미국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즉시 환영 논평을 냈다. 협회는 “국내에서 개발한 항암신약으로서는 최초로 FDA 관문을 통과한 것은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역사적인 쾌거”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사례는 처음이 아니지만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제약 시장에서 연매출 1조원이 넘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해외 진출은 의미가 깊다.
주가 역시 역대급 호재에 부응했다. 통상 호재는 선반영되므로 그것이 실현된 직후에는 외려 주가가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유한양행 주가는 FDA 승인 사실이 알려지고도 약 일주일간 올랐다.
그 후 조정 흐름에 진입한 주가의 향방은 묘연하다. 렉라자가 연 매출 1조원 이상을 달성하는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 유력한 만큼 유한양행의 실적 증가는 이미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주가가 언제나 실적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FDA 호재로 단기간에 오른 만큼 상당 기간 조정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번 렉라자의 해외진출 성공을 계기로 유한양행뿐 아니라 한국 제약바이오주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선도 업체가 드디어 ‘글로벌 신약 개발’이라는 테마의 실체를 만들어내면서 관련 투자가 늘며 선순환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급등한 주가, 고점서 조정 중 유한양행 주가는 올해 들어 급등하기 시작했다. FDA가 유한양행이 기술수출한 렉라자와 얀센바이오테크의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 정맥주사(IV) 제형 간 비소세포폐암 치료 병용요법을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렉라자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의 돌연변이 활성을 억제해 암 신호 전달을 막는 기전이다.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 유형의 80%가량을 차지한다. 그만큼 시장성이 넓다. 게다가 기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보다 효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 같은 정보에 따라 유한양행 주가는 연초 6만원대에서 FDA 품목허가 승인이 임박하며 10만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8월 20일(현지 시간) FDA 승인 소식이 알려지자 9월 3일 14만9800원에 최고점을 기록하기까지 파죽지세로 올랐다. 뉴스가 알려진 초기에는 차익을 보려는 매물들이 나오면서 오름세가 주춤했으나 기관과 외국인이 순매수를 기록하며 상승흐름을 이어갔다.
주가는 9월 4일을 기점으로 전반적인 매도세가 우세해지며 조정장에 진입한 상태다. 호재 실현 뒤 단기간에 약 50% 급등한 뒤 숨 고르기를 하는 모양새다. 9월 5일 종가 13만600원을 기록한 뒤 9일에는 11만9900원, 11일에는 12만200원에 거래를 마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도 일단 ‘홀드(HOLD)’를 외치고 있다. 서근희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목표주가를 14만원으로 상향하면서도 “지난 2주 동안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 기반으로 책정된 신약 가치가 빠르게 주가에 반영됐다”며 “추가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기대 이상의 Lazcluze(렉라자의 미국 상품명) 성과 및 기타 파이프라인에서 추가적인 기술이전 성과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약 R&D 선순환…장기 전망 좋아
그럼에도 시장에선 장기투자 종목으로서 유한양행을 눈여겨보고 있다. 실적 성장이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9월 11일 유한양행은 이번 렉라자 상업화를 통해 해당 약품을 기술수출한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얀센바이오테크로부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6000만 달러를 6개월 내로 수령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판매를 통한 로열티를 매년 최대 3000억원가량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연매출이 1조8590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규모다.
이처럼 증가한 수익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한다면 제2, 제3의 렉라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유한양행은 올해 2500억원, 내년에는 매출의 20%를 R&D에 투자할 계획이다.
현재 공개된 유한양행 신약 파이프라인은 다양하다. 렉라자를 포함한 항암 신약 16종, 심혈관·신장·대사(CVRM) 7종, 면역·염증 3종, 신경계 5종, 기타 2종까지 총 33종에 달한다. 그중 주요 파이프라인은 임상 1상 단계인 고셔병 치료제(후보물질 YH35995), 알레르기질환 치료제(YH35324), 대사이상 지방간염 치료제(BI3006337) 등이다. 이 중 대사이상 지방간염 치료제는 바이오 신약으로 독일의 다국적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됐다.
조욱제 대표는 8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것이 우리 손으로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서 ‘글로벌 신약 독자 개발’의 포부를 밝혔지만 갈 길은 멀다. 세계적인 신약 개발을 위해선 10년의 기간과 글로벌 임상 등 개발비용 1조원이 투입돼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성장성은 뚜렷하다. 유한양행뿐 아니라 R&D 및 기술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경쟁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일반의약품과 복제약을 내세워 내수 시장에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지속하며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수출, 신약 개발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면서 최근 들어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 파이프라인 및 플랫폼 기술수출 사례는 20건, 계약규모는 총 7조9450억원에 달했다. 이는 2022년 6조2559억원보다 27% 증가한 것이다. 기술수출을 통해 임상 및 대형 시장 인허가 노하우를 축적해야 장기적으로 ‘독자 개발’ 역시 가능해진다.
최근 몇 년 들어 세계 제약시장도 국내 제약업계도 급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와 함께 제약산업의 신흥시장인 파머징(Pharmemerging) 국가도 확대되고 있다. 저성장 시기에 흔치 않은 성장 산업인 셈이다.
국내에서 ‘개방형 혁신’을 통해 경쟁사나 바이오테크로부터 후보물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렉라자 역시 바이오테크인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초기물질을 도입해 최적화와 임상을 거치던 중 2018년 기술수출을 하게 됐다. 합성신약인 고셔병 치료제는 2018년 GC녹십자와 업무협약(MOU)을 통해 확보한 물질이다.
바이오테크→국내 대형 제약사→글로벌 빅파마로 이어지는 기술수출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렉라자 승인을 통해 유한양행은 물론 오스코텍 역시 약 320억원의 마일스톤을 분배받으며 새로운 신약 물질 개발을 위한 마중물을 얻게 됐다.
렉라자 사례가 신약 개발의 펀더멘털을 입증하게 되면서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제약바이오주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김용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바이오산업단장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대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후보물질과 기술을 라이선싱하여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하고 있어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라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보고서에서 밝혔다. 김 단장은 “국내 기업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과의 다양한 파트너십의 형성은 이 같은 시기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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