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기원인 유럽에서도 커피하우스 전성시대가 있었다.
17~18세기다. 커피하우스가 첫선을 보인 것은 1652년. 영국 런던의 파스쿠아로제 커피하우스가 효시로 꼽힌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으로 불렸다. 단돈 1페니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던 데다 그곳에 비치된 최신 정보지를 읽을 수 있었으며 토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커피하우스는 빠르게 확산됐다. 고고한 귀족부터 관리, 예술인과 학자, 상인 및 평민과 하층민까지 커피하우스를 찾았다(여성은 제외).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학자와 예술가, 금융인은 물론 매춘업 종사자, 성직자와 의사들이 주로 출입하는 커피하우스도 있었다.
이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관심사에 대해 토론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 보험의 기원으로 꼽히는 로이드(Lloyd’s 커피하우스)와 런던증권거래소(Jonathan 커피하우스), 발틱해운거래소(Virginia and Baltic 커피하우스)가 탄생했다. 세계적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물론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학회’도 커피하우스에서 시작했다. 아이작 뉴턴의 중력이론이 나온 데도 사과의 낙하보다 케임브리지 커피하우스의 공이 더 컸다는 주장도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상당 부분을 브리티시 커피하우스에서 토론하면서 썼다고 한다.
당시 커피하우스에는 ‘카페 이용 수칙’이 걸려 있었다. ‘누구나 출입할 수 있다. 높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다. 욕설을 하면 벌금 12펜스를 내야 한다. 싸움을 일으킨 사람은 커피 한 잔씩 돌려야 한다. 큰소리를 자제한다. 활발하게 대화하되 과하지 않도록 한다. 타인을 조롱하는 농담은 삼간다. 카드, 주사위 등 모든 도박을 금지한다. 성스러운 토론은 허용하지 않는다’ 등이었다고 한다.
이 수칙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 국회가 떠올랐다. 많이 비약한다면 본회의가 있고 전문 사안을 다루는 상임위가 있다는 점에서 영국 커피하우스와 닮았다. 그런데 이용 규칙은 정반대다. ‘선택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당직과 선수에 따라 자리가 정해진다. 욕설을 하거나 싸움을 걸어도 상관없다(오히려 소속 당에서 칭송을 받는다). 큰소리와 상대방 조롱은 권장한다. 상임위 중에도 얼마든지 코인 투자 등을 할 수 있다. 당론으로 정해진 것 외에 전문 분야에 대한 토론은 금지된다’ 등이다.
이렇다보니 국회에서 나오는 뉴스라곤 뻔하다. 싸움질과 조롱, 가짜뉴스 시비, 단독 통과와 거부권 건의가 쳇바퀴 돌 듯 한다. 본회의가 열려도 상임위가 열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세법개정안, 연금개혁안 등을 넘겼지만 국회에서 논의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9월 26일 마지못해 민생법안 70개를 처리했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정치권 뉴스가 없는 추석 연휴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는 사람이 많을까 싶다.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하는 건전한 토론의 장이었다.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싹텄다. 이유야 어떻든 토론문화라곤 아예 자취를 감춘 우리 국회에 뭘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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