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 시범단지 내 시범우성, 시범삼성한신 아파트 등이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도 성남시 분당 시범단지 내 시범우성, 시범삼성한신 아파트 등이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분당 재건축은 상위권 학생들끼리의 경쟁에 가깝다. 누가 더 잘났나를 두고 다수의 단지가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한 재건축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의 내용이 드디어 현실화한다.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각 지자체는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 5곳 소재 아파트 단지에 대해 재건축 선도지구(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공모신청을 받았다.

선도지구는 일종의 지역 내 재건축 시범단지로서 가장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정부 계획은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을 거친 뒤 2027년 착공 뒤 2030년까지 입주하는 것이다.

지난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논의되던 당시부터 가장 참여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 지역은 누가 뭐래도 ‘분당’이다. 기존 용적률(184%)과 입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사업성이 좋고 제일 먼저 입주한 신도시인 만큼 노후화도 그만큼 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당은 1기 신도시 중 신청 단지가 가장 많을 전망이다. 현재 25~30개 단지가 거론되고 있다. 재건축 기대감만큼이나 집값도 빠르게 뛰고 있다. 강남, 판교 등 주요 업무지구가 가깝고 신분당선, 수인분당선이 개통돼 교통인프라도 좋은 지역에 ‘미래의 새 아파트’가 생긴다면 수요자들의 구미가 당길 만하다.

이렇게 과열되는 만큼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어떻게든 선도지구로 뽑히기 위해 단기간에 동의서를 걷는 등 무리를 하면서 향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나온 윤곽…집값↑
"여기 재건축은 우등생들의 1등 전쟁이다" 선도지구 공모에 달아오른 분당[비즈니스 포커스]
마이너스를 그리던 성남 분당구 집값은 선도지구 공모지침이 나온 6월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집값 상승폭이 경기도 평균보다 몇 배나 컸다.

특히 선도지구 지정 가능성이 높은 단지가 인기다. 서현동 수인분당선 역세권에 위치한 ‘시범 삼성·한신’ 전용면적 84㎡는 지난 8월 전고점을 돌파했다. 금리인상이 단행되기 전인 2022년 3월 17억1000만원을 기록했던 해당 타입은 8월 17억2500만원에 손바뀜됐다. 올해 1월 14억5000만원에 거래된 뒤 불과 몇 달 만에 3억원가량 오른 것이다.

수내동 양지마을 한양 역시 전고점에 다다르고 있다. 2022년 3월 16억3500만원에 거래됐던 한양5단지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2월 11억9000만원에 바닥을 다진 뒤 올해 6월에는 15억5000만원에 팔렸다. 양지마을 한양은 수내역 수인분당선 역세권으로 시범 삼성·한신과 마찬가지로 교통과 학군, 생활편의를 다 잡은 곳이다.

하나감정평가법인은 분당에서 재건축 시 사업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아파트 단지로 수내동 한양과 인접한 파크타운을 꼽기도 했다. 하나감정평가에 따르면 파크타운은 주민 동의율이 90%를 상회하고 대형 단지가 강점으로 재건축이 완료되면 인근 대장주 아파트가 될 가능성이 높아 큰 시세차익이 기대되는 곳이다. 재건축 추진 시 현재 3.3㎡(평)당 4900만원대에 형성된 시세는 5800만원까지 오를 수 있을 전망이다.

한 분당 주민은 “현재 선도지구 지정이 유력한 단지는 대부분 입지가 좋은 선호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재건축 열기가 더욱 뜨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신탁방식에 유리해 논란

그럼에도 분당의 이번 선도지구 지정 규모는 8000가구가 될 예정이다. 5개 신도시 중 가장 많지만 분당 전체 정비 대상 물량 중 10% 수준에 불과하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상 통합재건축을 추진해야 용적률 완화, 안전진단 면제 같은 인센티브를 받는다. 분당에서도 여러 단지가 2000~4000여 가구 규모로 함께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두어 개 통합재건축만 선도지구 지정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 통합재건축 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공모신청 단지 입장에선 1점이 아쉬운 상황이다. 성남시가 6월 25일 공고한 ‘분당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공모지침’에 따르면 총 100점 중 ‘주민동의 여부’가 60점으로 가장 배점이 높다. 60점 만점은 동의율 95%를 넘겨야 받을 수 있다. 이에 각 단지는 95% 동의를 넘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민 동의서를 받고 있다. 최대한 동의율을 채운 뒤 27일이 돼서야 신청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정주환경 개선의 시급성(6점)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15점) ▲정비사업 추진의 파급효과(19점) ▲사업의 실현 가능성(가점 2점) 등 총 5가지로 항목이 나뉜다.

‘정주환경 개선의 시급성’은 세대당 주차대수, 소방활동 불편성, 평균건령 등 주거환경의 열악성 정도에 대해 평가한다.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 항목은 주민대표가 주민 동의서 징구 시 제공하는 개발구상안(10쪽 이내)을 바탕으로 평가하는데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용 주택 확보, 소규모 단지 결합, 장수명 인증 주택 등 세부 항목에 따라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정비사업 추진의 파급효과’는 단지 수, 세대수 점수 등이 포함되며 동의율 확보의 난이도 보정이 가능하다. ‘사업의 실현 가능성’ 항목은 시공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신탁사 또는 공공이 참여하는 경우 가점 최대 2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임원을 뽑아 사업을 진행하는 조합방식보다 전문기관인 신탁사나 공공이 재건축 사업을 시행하는 게 안정적이라는 취지에서다.

일각에선 이 같은 조건 중 통합재건축 여부와 신탁사, 공공참여 여부 등이 향후 선도지구 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일 내에 선도지구 공모신청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아파트 소유주들에게 제대로 된 검토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재건축은 효율적인 국토 관리를 위해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강남구 개포동 소재 ‘경우현’(경남·우성3차·현대1차) 사례처럼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통합재건축이 일관되게 추진되기는 쉽지 않다. 2022년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대상 지구로 지정된 경우현 통합재건축은 단지마다 각기 다른 용적률로 사업성 역시 다르다. 이 때문에 독립정산제를 주장하는 경남1차 주민들과 통합정산을 지지하는 조합 간에 분쟁이 발생했다.

한 재건축 업계 전문가는 “통합재건축을 해서 대단지를 꾸리면 좋은 것이 결과적으로 당연하다”면서도 “현실에선 각기 사업성과 입지, 이해관계가 달라 단지별 논쟁 없이 통합이 추진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탁방식 재건축에 대한 가점 역시 논란거리다. 현재 분당 내 통합재건축 추진단지 다수는 빠른 동의율 달성과 가점 획득을 위해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등 대형 부동산신탁사와 MOU(업무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그러나 여의도를 비롯해 신탁방식을 채택했던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에서 수수료율 등 계약 조건을 두고 잡음이 일면서 공모지침 내에 신탁사 참여 항목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마음이 급한 일부 단지에서 계약 조건은 물론 신탁방식 재건축에 대한 제대로된 검토나 논의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우식 1기신도시범재건축연합회 회장은 “선도지구를 뽑는 5개 1기 신도시 중 신탁사가 참여하면 가점을 주는 곳은 분당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해당 항목에 대해 이미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반영되지 않고 그대로 공모신청을 받게 됐다”며 “지금 분당에서는 주민들도 건설사도 아닌 신탁사가 가장 웃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