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각기 다른 조합을 꾸리고 있다. ‘지역농협’이 916개로 가장 많고 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지역축협’(116개), ‘품목농협’(45개), ‘품목축협’(23개), ‘인삼협’(11개)이 뒤를 잇는다. 이들 1111개 조합이 모여 ‘농협중앙회’를 꾸린다. 중앙회는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를 포함해 계열사 28곳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농협의 총자산은 중앙회 166조원, 경제지주 13조원, 금융지주 532조원을 합쳐 711조원에 달한다. 이 거대 조직은 일본의 ‘젠노’, 미국 ‘CHS’와 함께 세계 3대 농업협동조합으로 꼽힌다.
조직 구성의 기본은 중앙회 산하의 경제지주에는 하나로유통, 농협양곡, 농협목우촌 등이 있다. 금융지주에는 NH농협은행, NH농협생명, NH투자증권 등이 포함된다. 정리하면 농민들이 조합을 만들고, 조합이 중앙회를 구성하고, 중앙회 산하 금융지주에 농협은행이 있는 구조인 것이다. 농협이 어쩌다가 이렇게 복잡한 조직이 됐는지, 이로 인한 문제는 없을까.
①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은 뭐가 다르나?
‘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은 예금과 대출도 가능하고 ‘농협’이라는 뿌리도 같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다.
길을 걷다 간판에 ‘은행’ 표시 없이 ‘ㅇㅇ농협’으로 표시된 경우가 있다. 이들이 지역농협이다. 지역농협은 각 지역 농민들이 출자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대표적으로 상호금융 사업을 하는데 조합원이 맡긴 돈을 조합원에게 빌려주며 조합원 간 자금을 융통한다. 비조합원이나 준조합원도 계좌를 만들고 금융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조합원과 비교해 예·적금 및 대출 혜택이 다를 수 있다. 설립 취지 자체가 조합원을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주목적도 사익추구가 아니라 농업인의 지위 향상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다.
지역농협은 모두 다른 개별 법인이다. 예·적금 금리나 대출한도, 상품 등이 지역농협마다 다르다. 계좌를 만들고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지역농협은 조합이기 때문에 은행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반면 간판에 ‘NH농협은행 ㅇㅇ지점’이라고 표시돼 있으면 농협은행이다. 서울이든 제주도든 한 법인의 지점이기 때문에 고객의 예·적금 혜택 및 대출 관련 정책이 같다. 사익추구가 목적이며 금융당국의 금융·은행 정책에도 영향을 받는다.
농협은행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처럼 제1금융권으로 분류된다. 예금보험공사의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5000만원까지 예금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지역농협은 신협·새마을금고·상호저축은행 등과 함께 제2금융권에 포함된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호 대상은 아니다. 대신 농협상호금융예금자보호제도로 5000만원까지 보장된다.
계좌번호에도 차이가 있다. 계좌번호 앞자리 또는 중간에 01·02·12가 들어가면 농협은행, 51·52·56을 쓰면 지역농협이다.
세금도 다르다. 보통 은행에서 이자를 받으면 이자소득세 14%에 주민세 1.4%를 합해서 총 15.4%의 세금을 자동적으로 떼어간다. 농협은행에서 이자로 40만원을 받았다면 실제 통장에는 33만8400원만 들어온다는 얘기다.
지역농협의 경우 출자금(보통 1만원 내외)을 납입하고 조합에 가입하면 최대 3000만원까지 농어촌특별세 1.4%만 내면 된다. 이자 40만원에 대해 세금(5600원) 떼고 39만4400원을 실수령하게 된다는 것이다. ②인사권 쥔 농협중앙회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은 은행법에 따라 운영된다. 농협은행은 ‘농업협동조합법’에 근본을 뒀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농협은 ‘농업협동조합’의 줄임말이다. 농민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단체란 의미다. 1961년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합병되면서 농협중앙회가 설립됐다. 이때 구 농협법과 농업은행법이 폐기되고 ‘농업협동조합법’이 새롭게 제정됐다.
농협중앙회는 창립 이듬해인 1962년 서울에 농산물 공판장을 개장했다. 이후 전국 5대 도시에 공판장의 문을 열었고 1965년 농협중앙회에 공판 사업부를 설치했다. 농민들은 공판장을 통해 대량의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로클럽·마트’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 거래도 주선했다.
농협중앙회의 사업은 정부 시책과도 함께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협조하며 마을 시설 개량을 비롯한 농촌 시설 정비에 앞장섰다. 1980년대 농산물 수급 불균형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영농자금금리를 10%에서 8%로 인하했으며 낮은 이자로 농지 구입 자금까지 공급했다.
2000년대 들어서 농협은 구조적 전환점을 맞았다. 농협·축협·인삼협중앙회를 통합한 통합농협중앙회가 출범했다. 창립 50주년이 되던 2011년 농협중앙회는 농협협동조합법을 개정하며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했고 이듬해 기존 중앙회 체제에서 1중앙회, 2지주사(농협경제지주, 농협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했다. 하나의 조직 안에서 수행되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한 것이다(신경분리). 경제사업은 농업인이 영농활동에 안정적으로 전념할 수 있도록 생산, 유통, 가공, 소비 등 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농협경제지주가 맡았다. 농협의 자금줄인 금융업무(신용사업)는 농협금융지주가 가져갔다. 상호금융만 중앙회에 남겼다. 농협은행은 농협금융지주의 100% 자회사로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른 농업계 특수은행으로 설립됐다(2012년 3월 2일).
농협의 최고 권력은 농협중앙회다. 중앙회의 회장은 임기 4년 단임제에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농협중앙회 산하 계열사 대표 인사권과 예산권·감사권을 갖고 농업경제와 금융사업 등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에 최고경영자(CEO) 인사권이 있지만 농협은행도 중앙회장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농협중앙회의 현 사령탑은 강호동 회장이다. 강 회장은 경남 합천 출신 조합장으로 40여 년간 농협에 몸담아온 ‘농협맨’이다.
③400억원대 금융사고는 지배구조 탓?
요즘 농협은행에 긴장감이 맴돈다. 올해에만 11건의 금융사고가 있었으며 수시공시가 이뤄진 금융사고도 5건이다. 지난 3월 109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고가 적발됐으며 5월에는 51억원, 10억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등이 드러났다. 8월에는 영업점(명동)에서 횡령으로 의심되는 117억원 규모의 금융 사고가 발생했고 10월에는 140억원 규모의 부동산 담보대출 이상거래를 발견해 차주를 사기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수시공시가 이뤄진 금융사고의 총 규모는 430억원이다.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중 건수도 많고 금액도 큰 편이다.
금융감독원은 농협은행의 잇단 금융사고 발생 이유에 대해 농협금융 특유의 지배구조를 지목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농협금융에 대한 금감원 정기검사 당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구분돼 있다고는 하지만 농협 특성상 그것이 명확한가는 조금 더 고민할 지점이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금산분리원칙과 내부통제, 규율통제 같은 것들이 흔들릴 여지가 있어 챙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앙회와 농협금융 간 인사교류를 가장 큰 문제로 꼬집었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와 산하 계열사들의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 전문성이 없는 농협중앙회 출신 은행 직원을 시군지부장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관할 은행지점의 내부통제를 총괄하면서 내부통제 체계가 취약해질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8월 횡령이 발생한 농협은행 명동지점도 농협중앙회 출신 인사들의 관리감독 아래 있었다는 점은 금감원의 이러한 지적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농협은행 명동지점은 농협은행 서울본부에서 관리한다. 현 농협은행 서울본부장은 농협중앙회 출신이다.
농협 관계자는 “신경분리 한 시기가 올해로 12년째인 점을 고려하면 관리자급 인사는 농협중앙회 출신 인사가 임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들 대부분은 신경분리 전 영업점(은행업무)을 거쳤고 상호금융을 맡은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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