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계엄령 이후 한국 경제⑥]
주요 기업 본사가 있는 서울 테헤란로 오피스 빌딩들. 사진=한국경제신문
주요 기업 본사가 있는 서울 테헤란로 오피스 빌딩들. 사진=한국경제신문
“아직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에 재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12월 3일 밤 시작된 비상계엄 사태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당장 주요 일정을 앞둔 기업 관계자들은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긴급 연락망을 가동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당장 오늘 예정된 행사와 향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봐 새벽 내내 상황을 모니터링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하고 출근했다”고 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LG 등 주요 그룹은 전날 밤 비상계엄이 내려진 직후 수뇌부를 중심으로 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운 데 이어 4일 오전부터 긴급회의를 소집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비상계엄 선포에 원·달러 환율이 2년여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고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는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였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이날 오전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일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진 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그룹 경영활동에 미칠 영향 등을 논의했다.

LG는 이날 오전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해외 고객 문의에 대한 대응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에 사옥이 있는 LG는 이날 새벽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비상계엄 관련 여의도 상황이 좋지 않아 LG트윈타워(사옥) 동관, 서관 모두 재택근무를 권고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HD현대는 이날 오전 7시 30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향후 발생 가능한 경제 상황을 집중 점검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 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특히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포스코, 한화그룹도 금융시장 동향 점검에 나섰다.

기자회견 등 주요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개최하려던 상법 개정 토론회를 취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이날 오전 진행하려던 ‘AI 트랜스포메이션 위크’ 세션을 취소했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 관련해 이날 오전 예정돼 있던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회복’ 기자간담회를 잠정 연기했다.

일부 기업 임원들은 국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급히 취소했다. 대외활동 참석 자제령이 내려진 곳도 있다. 정부부처와 행사를 준비해온 기업 관계자는 “정부부처와 회사가 비상대응체제로 전환되면서 몇 달 전부터 준비해온 업계 토론회 일정을 미루게 됐다”고 전했다.

재계는 환율, 주가 등을 체크하며 이번 사태로 정국 불안 요소가 더 커진 만큼 향후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는 등 경영활동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당장 계약이 취소되는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로 국가 대외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해지면서 정부간 거래(G2G)로 대표되는 방산, 원전 등 수출기업들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