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로 살 수밖에 없은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주거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다. 집주인이라 할 수 있는 임대인에게는 비난을 받겠지만 세입자라 할 수 있는 임차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 법을 발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법은 주택시장을 혼란에 빠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입자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
2020년 7월 말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하는 임대차 보호 2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가장 큰 혼란은 같은 단지, 같은 평형이라도 전세가가 크게 차이 나게 된 것이다.
위 표에서 검은색 선은 전국 아파트 전세가를 KB국민은행에서 지수로 나타낸 것이다. 임대차 보호 2법이 발효되기 직전인 2020년 7월부터 2년 후인 2022년 7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평균적으로 19.9%나 올랐다.
예를 들어 전세가가 3억원인 아파트가 있었다면 2년 만에 6000만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그런데 계약갱신을 쓸 수 있는 세입자의 경우는 5%인 1500만원만 올려주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실거래가를 검색해보면 같은 단지라도 3억6000만원짜리 전세 거래도 있고 3억1500만원짜리 거래도 있었던 것이다.
이때 계약갱신권을 쓸 수 있었던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2년 동안 20% 가까이 전세가가 오른 배경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의 급작스러운 도입도 한 원인이다. '무제한 전세법'의 함정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세입자가 많아지면 그들이 살던 집이 임대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 시장에서 급속하게 임대 매물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임대 매물이 줄어드는 만큼 새 임대를 원하는 세입자도 줄어든다. 그런데 이는 모든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거나 사회에 처음 진출하여 임대를 새로 얻는 사람이 없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2016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지방의 인구는 92만 명이나 감소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수도권 인구는 45만 명이나 늘어났다. 최소 45만 명의 인구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소수의 매물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임대 수요가 많은 지역은 전세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2016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지방 소재 5개 광역시 아파트의 전세가는 1.0% 상승에 그친 반면, 수도권은 12.5%나 상승한 이유가 바로 수요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약에 계약갱신청구권이 없었다면 전세 시장은 어찌되었을까? 위 표에서 중간에 걸쳐 있는 초록색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무한정 쓸 수 있다면 시중에 신규로 나오는 물량은 40%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세를 새로 얻는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비싼 값에 전세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높은 가격으로 계약을 했더라도 2년 후에 더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역전세난이 닥쳐오는 것이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역전세난을 견디지 못한 임대인이 보증금 지급 불능이 되면서 전세금을 떼이는 이른바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임대 시장이 초록색 정도만 상승했다면 역전세난이나 전세사기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계약갱신청구권은 시장에 매물을 말려서 상승기에는 폭등시키고, 하락기에는 폭락시키는 일을 반복하게 한다. 한마디로 전세 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킨다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매매거래 제한할 수 있는 문제도두 번째 문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무한정 허용하면 전세가를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세가가 4억원인 집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법을 만든 사람들은 2년에 5% 이하로 올리면 전세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위 표에서 시뮬레이션 1이 그것이다. 2년마다 5%씩 올린다면 6년 후에는 4억6305만원이 되어 누적 상승률은 15.8%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당시 수요와 공급 상황, 그리고 경제 여건에 따라 전세가가 많이 오를 때도 있고 반대로 많이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시뮬레이션 2의 경우 2년 차에는10% 상승하다가 4년 차에는 20% 폭락을 하다가 6년 차 30% 반등을 하는 경우를 나타낸 것이다. 경제 위기 등으로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그 위기가 끝나면 시장의 기능에 따라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가가 급등락을 하여도 6년 차의 가격은 4억5760만원으로 시뮬레이션 1보다 낮거나 비슷하다.
그런데 만약 ‘무한전세법’이 통과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시뮬레이션 3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상승기에는 5%만 인상이 가능하고, 하락기에는 무한대로 전세가를 인하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법에서 하락 시의 인하 한도를 5%로 정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세입자가 연장을 거부하고 다른 집을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인하된 전세 계약은 나중에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상 상한선이 5%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6년 차의 가격은 3억6960만원에 불과하다. 6년 전 전세가에 비해 실제 시장가는 14.4%(시뮬레이션 2) 상승했지만 ‘무한전세법’이 발효되면 7.6%(시뮬레이션 3)나 하락한 가격에 계약해야 하는 것이다.
전세가가 내려가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 경제에서 인위적인 가격 조작은 문제를 가져온다.
‘무한전세법’의 가장 큰 폐해는 매매 거래 자체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실입주를 하려는 실소유자들이 집을 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 지역에서 4억원의 전세로 거주하던 사람이 B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무한전세법’으로 인해 전세 매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존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을 합해서 집을 사서 실입주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집을 사기 어렵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매물은 임대인, 다시 말해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이를 보장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집에 거주하려면 기존 임대차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실거주 의사를 통보해야 하는데, 이는 실입주 2개월 전까지는 잔금을 모두 지불하고 등기를 마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본인의 자금은 대부분 현재 거주하는 집의 전세보증금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집을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집값의 100%를 주택담보대출로 내어줄 리도 없다.
결국 집을 사서 입주를 원하는 실수요자가 있다면 최소 2달 정도는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옮겨놓고 본인은 호텔 생활을 해야 집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일까?
다행히 ‘무한전세법’과 같은 엉뚱한 법이 발의되었다는 것이 언론에 빠르게 보도되고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자 발의했던 의원들이 여론에 밀려 발의를 철회하면서 이 법은 폐기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앞으로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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