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언론, K-민주주의 집중 조명
"한국 민주주의, 순탄치 않지만 대중의 헌신이 보호" 평가
K팝 응원봉 앞세운 시위 문화, 글로벌 롤모델로

[신년기획 커버스토리 : 2025 위기극복 키워드 '한국인'⑨]
'K-민주주의'는 세계의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을까[2025키워드, 한국인⑨]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의 상황은 심란하면서도 희망차게 느껴진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순탄치 않지만 대중의 헌신이 수십 년간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있다.”
“한국의 시위는 정치가 아닌 조국을 지키기 위한 K팝 콘서트다.”


세계 곳곳의 민주주의가 신뢰를 잃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체제에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1962년 조르주 퐁피두 정부 이후 62년 만에 정부 기능이 마비됐고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세르비아 역시 지하철역 붕괴 참사 이후 8주째 길거리로 쏟아지고 있으며 대만에서는 국회가 의원 파면과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요건을 까다롭게 바꾸려 하자 반기를 든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와중에 민주주의가 완벽히 자리 잡았다고 세계인들이 알고 있던 한국의 12·3 비상계엄 사태는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 파괴를 시도했을 뿐 아니라 미국 등 동맹과 공유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파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기 충분했다. 전쟁을 유도하려 했던 증거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계엄과 계엄해제, 탄핵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 세계에 또 다른 ‘희망’을 보여줬다. K팝 응원봉을 앞세운 시위문화를 통해 ‘K-민주주의’는 글로벌 롤모델로 부상했다. 이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2024년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간절함과 헌신으로 지킨 민주주의전 세계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노력을 주목하고 있다. 6시간 만에 계엄령을 해제하고 11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해외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회복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도채널인 MSNBC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집중 조명하면서 한국의 상황이 미국과 큰 연관성이 있다고 전했다. 오는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식 취임한다.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민주주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때문이다.

뉴스 진행자이자 정치평론가인 크리스 헤이스는 한국의 상황은 심란하면서도 희망차게 느껴진다”며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의원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담 넘는 것을 도왔다. 한국인의 모습은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이고 우리에게 힘을 준다”고 말했다.

매체는 국민들이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인들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의했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남녀노소 모두 영하의 날씨에 거리로 나왔다고 전했다. 헤이스는 한국은 미국에 교훈을 줬다”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국민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옳은 일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강조했다.

영국 가디언은 ‘대중의 헌신’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한국 대통령의 기괴하고 끔찍한 시도는 혼란을 일으켰다”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은 순탄치도 선형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한국은 민주주의를 지켰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공통된 철학’이 계엄령을 무산시키고 나라를 지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트럼프 시대 등 전 세계가 심각하게 양극화된 사회에서 한국의 행보는 민주주의를 지킨 ‘승리’라고 표현했다. AP통신은 권위주의가 고조되던 상황에도 민주주의를 유지한 것은 대중의 힘”이라며 힘겹게 이룬 승리다. 서울에서 펼쳐진 드라마(계엄령)로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흔들렸다. 민주주의 틀에서 태어난 지도자가 계엄령으로 상황을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거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글로벌로 퍼지는 K-민주주의아울러 이번 ‘응원봉 시위’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새로운 방법으로 떠올랐다. AP통신은 충격적인 계엄령 선포 이후 윤석열 대통령 축출을 요구하는 시위에 K팝 응원봉, 크리스마스 조명, 심지어 산타클로스 복장까지 등장했다”며 윤 대통령의 12·3 계엄령은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 독특한 시위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아이를 동반한 부모나 연인, 노인 주민단체,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흔드는 등 시위는 정치 시위가 아니나 K팝 콘서트처럼 느껴졌다”며 탄핵 촉구 집회에 모인 군중은 최근 몇 년간 전형적인 정치 시위보다 젊어졌다. 10대 후반과 20대 한국인들은 K팝 콘서트에서 응원봉을 가져와 중장년층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고 전했다.

미 코네티컷주 조앤 조 웨슬리언대 동아시아학 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응원봉 시위 문화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참여하지 않는다는 선입견과는 상반된다”며 “젊은 세대의 민주주의 참여와 헌신은 한국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신호이며 주목할 점이고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의 시위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자 대만에서도 K팝 아이돌의 응원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만 입법원은 2024년 12월 2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건을 과반 찬성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강화하는 개정안과 선출직 공무원 소환 요구에 서명할 때 신분증 사본 제출을 의무화하는 공직자소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만 여당은 개정안이 헌재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의 권리를 제한한다고 지적했으나 개정안 통과를 막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2만여 명의 대만 시민들이 개정안에 반대하기 위해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인피니트, 세븐틴, NCT 등 한국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현지 언론들은 이 같은 분위기가 한국에서 발생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촉구 시위의 영향이라고 보도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